어딘가 달라졌다
김광규
어딘가 달라졌다 그는
두 팔로 운전대를 감싸안고
고개를 잔뜩 앞으로 내민 채
전후좌우로 쉴새없이 눈을 돌리다가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쪼르르 달라나가고
교통경찰이 없으면 종로 한가운데서도
날쌔게 왼족 골목길로 꺾어들어간다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바깥 세상을 살피는
생쥐처럼 반짝이는 눈
재빠른 움직임
그렇구나 운전을 시작한 뒤부터
그의 눈빛과 몸놀림이 달라졌구나
착하고 맑은 사슴의 눈으로 한때
어릿거리며 천천히 걸어오던 명륜동 길로
보행인들을 헤치고 자동차를 몰면서 그는
변해야 산다고 말했다
그는 젊어진 것 같았다
*어릿거리다 말과 행동이 활발하지 못하고 생기 없이 움직이다.
(어렴풋하게 자꾸 눈앞에 어려 오다.)
김광규.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문지. 1998. 85.
- 운전으로 대변되는 기계 문명이 인간에게 끼치는 변화(주로 나쁜 쪽으로)를 비판하고 있는 시. 이러한 이분법이, 그러니까 운전을 하기 이전의 그를 ‘착하고 맑은 사슴의 눈’이라고 못 박고 있는 것은, 자칫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불러오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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