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버리는 길
김광규
4차선 국도 길가에 줄지어 선 갈잎나무들
드문드문 새로 생긴 주유소
비닐하우스 널려진 들판 저쪽으로 연립 주택 짓는 마을과
젖소 기르는 목장
언덕과 숲을 지나
고가도로 밑을 통과하면
바른쪽으로 우뚝 솟은 크낙산
햇빛 눈부신 아침나절이나
저녁 어스름 속에
쫓기듯 오고 가는 길
흙 한번 내발로 밟지 않은 채
다가왔다 멀어지는 땅
길 막히면 자동차 속에서
교통방송 다이얼 돌리다가
무심코 지나가버리는 길
먼빛으로 눈익은 경치
한번도 걸어가보지 못한 세상
빨리 달려갈수록 내게서 멀어진다
언젠가 덤불로 뻗어 기어가서
닿고 싶은 곳
김광규.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문지. 1998. 72.
- 우리의 근원인 자연과 유리된 삶을 반성하고 있는 시. 시집 제목에도 등장하는 ‘크낙산’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도 김광규의 시에 다가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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