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기 폭포에서 다카치호 협곡으로 향하는 도중에 두 번째로 기름을 넣었다. 전날 아침 오이타 시를 벗어나면서 기름을 넣긴 했으나, 셀프 주유소에서 일어를 몰라 혼돈이 있었다. 그 때문에 가득 넣지도 못한데다, 하라지리 폭포를 들렀다가, 아소산으로, 또 거기서 이사 시까지 거의 왼 종일 운전을 했으니, 혹시 무동력이 아닌가 할 정도로 연비가 좋은 경차여도, 기름 표시 레벨이 많이 내려간 상태였다.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기름을 넣었는지는 기억을 떠올릴 수가 없고, 구글 지도로 확인해 보아도 내 어렴풋한 기억과 일치하는 주유소를 찾을 수는 없었다. 소기 폭포를 떠난 다음 삼사십 분 이상 달린 어느 좁은 현도의 오르막에 위치한 작고 외딴 ENEOS 주유소였던 듯하다.
아마도 셀프 주유소를 이용하는 것이 겁이 나 직원이 밖에 있는 것을 보고는 차를 꺾어 들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60대 중반 정도의 키가 작은 분이 나를 맞아주면서, 일어로 뭐라고 말했다. 신용카드로 할 거냐, 아니면 현금으로 할 거냐? 그런 말이었을까? 다행스럽게도 '오카네'(돈)이라는 말을 알아들어서, "오카네"라고 말했다. 자의적인 추측이지만, 그 분이 현금을 더 원하는 듯했고, 또 현금을 쓸 일이 별로 없어서 환전해 온 엔화를 탕진(?)할 필요도 있었다. 그 다음 '얼마를 넣을까'라는 질문이 나왔을 것인데, 영어로 'full'이라고 했다가, 다행히도 '이빠이'(가득)라는 말이 떠올라 이 말도 덧붙였다. 의사소통이 어쨌든 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기름을 다 넣고 나니 4085엔이 나왔다(이 금액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계부에 그렇게 적혀 있다). 나는 천 엔 지폐 4장에다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백 엔 하나를 건넸는데, 그 분은 잔돈이 없었는지, 또 뭐라고 했다. 그 분이 내게 십 엔 동전 두 개를 건네면서 '오 엔이 있냐'라는 의미의 말을 한 듯했다. 내가 호주머니를 뒤져 5엔 동전을 준다는 것이 50엔 동전을 건네자, 그 분은 50엔 동전을 다시 돌려준 뒤 내 손에서 5엔 동전을 찾아 가지고 갔다. 이 상황은 금액을 참고해 볼 때 정황상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이 당시에도 상황이 정확히 이해가 안 되어 순간적으로 이 분이 나에게서 편취(?)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기까지 했다.
예전에 영국에 여행을 갔을 때 나는 소매치기 등이 굉장히 두려웠다. 그러다가, 문득 영국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동양인인 내가 오히려 더 두려울 수 있는 존재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헛웃음이 나오던 것이 떠오른다. 우리의 현대사는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뒤를 쫓아왔다. 현재는 일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하여 경제적으로 우위에 섰다는 말도 들리고, 엔저 현상으로 구원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우리 나라의 최애 관광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 사소한 에피소드는 일본인의 높은 직업 윤리 의식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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