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에 영광이 형 병문안을 다녀왔다. 형은 영문과 1년 선배로, 대학 시절 문예창작반에 있을 때 가깝게 알고 지낸 사이였다. 형의 진지한 시작 태도, 그리고 형의 시는 참 좋아했지만, 형의 다소 흐트러진 생활 태도는 나로서는 못마땅했다. 형이 국문과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내가 영문과 대학원으로 진학해 서로 다른 문학을 전공하며, 바쁘게 지내다 보니까, 대학원 도서관에서 서로 눈인사나 하고, 일 년에 한두 번 모임이 있을 때 여럿이서 같이 만나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형이 다쳐서 고대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래서 후배 경동이와 월요일에 잠시 들렀다. 수요일 수업 준비 때문에 원래는 수요일이 지난 다음에 찾을까 했지만 잠시나마 들르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날은 시간도 많았고 그냥 형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해서 부담 없이 찾았다.
형이 다친 것은 순전히 형 자신의 실수였기 때문에 나는 사고의 경위를 캐묻진 않았다. 경동이로부터 들은 바로는 혼자서 술을 마시다 출입구와 혼돈하여 유리문을 밀었고 유리가 깨어지면서 그 조각이 겨드랑이 근처의 왼팔을 상당히 찢어 놓았다는 것이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렇게 오래 있을 예정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까 저녁까지 같이 먹게 되었다. 형이 대학원 총학생회에 몸담고 있을 때 알게 된 후배 변영학 씨와 내가 밖으로 나가 도시락 종류를 사가지고 오기로 했다.
내가 “형이 몸이 부실할 텐데 뭔가 영양 보충할 만한 걸로 없을까요”라고 묻자, 영학 씨가 “형이 피를 상당히 많이 흘렸죠. 그래서 첫날에 애인인 영란 씨가 개고기를 삶아 가지고 큰 그릇에 담아왔더라고요. 두 끼를 계속해서 그걸 먹었으니까 아마 괜찮을 겁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먹을 만한 걸로 때우면 될 듯했다. 우리는 “코코”로 가서 도시락을 주문했다. 형은 특별대우, 비싼 “코코 정식”을 주문해 주었다.
우리 네 사람(또 다른 후배가 한 명 있었다)은 병원 뒤편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형이 갑자기, “요즘에는 어디 변두리에 조그만 비디오 가게나 차려 놓고 고만고만하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알기로는 시인이 되려는 꿈을 한시도 늦춘 적이 없는 형이었는데, 몸이 약해지니까 저런 생각까지 하는구나. 갑자기 우울해졌다.
형이 또 갑자기 새가 축대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고 했다. 사실은 밥을 먹던 벤치 옆에 축대가 있었는데 그 축대에 균열이 가서 약간의 빈 공간이 생겼고, 그 공간이 새에게는 훌륭한 보금자리 노릇을 했던 것이다. 나와 변영학 씨는 그쪽으로 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컴컴하니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지만 새끼들이 짹짹거리는 소리가 꽤나 힘찼다. 어미에게 먹이라도 조르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어미 새가 다시 밖으로 나와서 날아다니다가 나뭇가지에 앉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그만 새였다.
형이 “사람들이 자기 집 주변에 있으니까 들어가질 못하고 있는 거야”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 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형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나 때문이었다. 사랑을 주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내가 만일 사고라도 당해 누워있게 된다면, 그것도 나 자신의 실수로, 아니 더 나아가 나 자신의 악행 때문에 형처럼 병원 신세를 지거나 혹 영어의 몸이 된다면, 누가 나를 나의 죄과를 따지기에 앞서 끌어안아 줄까? 어머니와 동생들이 떠올랐다. 삶을 견디게 하는 커다란 힘이었다. 하지만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더 있다면 나는 꿋꿋이 삶을 견디어 내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 때문에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1998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