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한 마음을 달랠 겸 버스를 탔다. 목적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계획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실은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먼저 돈을 바꾸어야 하는데 바꿀 데가 없었다. 오락 한 판하고 오면 되겠지. 오락실에 들어갔다. "달나라 여행"이라는 걸 하는데, 내가 너무 못하니까 비웃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데는 관심이 없었다.
금방 죽어 버려서 나오는데, 76번이 오고 있었다. 나는 잽싸게 올라탔다.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빈자리는 없었다.
조금 후, 자리를 차지. 창가에 -- 제일 뒷좌석의-- 앉았다. 내 옆에는 남녀가 앉았는데, 그들은 동화사로 가는 것 같아 보였다. 내 직감이 거의 확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내가 내릴 때까지 내리지 않았으니까. 아양교를 지날 때, 작년 여름에 수영장에 가던 생각이 났다.
나는 거기를 못 찾을까봐 정신을 집중해 밖을 보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 나는 산을 돌아갔는데, 그 산에는 무수히 많은 -- 20개 가까이 되는 것 같았다 -- 동굴이 있었다. 625 때 피난한 곳이 아닌가 생각했다.
못둑 밑에 와서는 가슴이 (약간) 벅차옴을 느꼈다. 그때 맛본 그 기분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못둑에 올라섰을 때, 그 기쁨.
하지만, 기대만큼은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금방 물에 뛰어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물은 가뭄으로 깨끗해져 있었다. 원래 깨끗한 물이지만.
나는 못 전체를 둘러보고 싶었다. 사실은 이 물의 수원지를 알고 싶었다고나 할까? 못은 일정한 형태가 아니고 계곡을 따라서 물이 모여있었기 때문에 두르는 데는 꽤 오래 걸렸다. 나는 돌을 하나 들어 물 위에 던졌다. 쉽게 얼음이 언 부분까지 -- 아직 약간 얼음이 녹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 닿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약간 약이 올랐다.
오랜 가뭄으로 물이 줄어서 나는 길로 안 가고 물이 줄어서 된 곳을 걸었다. 갑자기 저쯤에 2사람이 나타났다. 난 약간 두려워졌다.
그 사람들 곁을 지날 땐 정말. 못을 반쯤 돌았을 때 하늘은 놀로 물이 들고, 하늘의 해와 못 위의 해는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가는 막대기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 막대기를 지팡이로 삼고, 또 나를 보호해 줄 -- 이 물에 사는 귀신이나, 산 귀신으로부터. 어느 정도 왔을 때 더 이상 들어가지 말라는 듯이 나무가 길을 막고 (베어져) 있었다. 못둑 쪽을 보니 사람들이 몇 명 올라와 있었다. 못을 다 돌아갈 무렵에 나는 이 못에다 3가지 소원을 빌었다. 동전을 하나하나 던지면서. 나는 3번째 소원을 똑바로 말하지 못했다. => 산에서.
못을 다 돌고 나니 해도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 사실 벌써 해는 산 뒤에 숨은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갈 곳이 어딘지 몰라서 나는 내렸던 곳으로 갔다. 그런데, 버스는 세워 주지 않고 그냥 가고 있었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세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두 대를 그냥 보내고 뛰기 시작했다. 앞서 가던 여학생을 제쳐냈다. 그리고 걸었다. 또 그 학생이 나를 제쳤다. 자전거 뒤에 타고서.
겨우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차는 만원이었고 주위는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깜깜했다.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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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물이 내려오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물의 공급이 끊어졌는데도 이만큼 물이 남아 있다는 게 이상스럽게 생각될 정도였다.
(19840219)
40년 전 대구의 단산지를 찾았을 때의 소감을 적은 일기를 옮겨본다. 고3으로 올라가기 직전의 일요일 혼자 떠난 나들이. 버스를 타고 동화사로 가고 올 때 논 너머로 꽤 먼 곳에 자리한 저수지의 길고 높은 제방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현재 이 단산지는 봉무공원의 중심 공간으로 둘레길이 잘 가꾸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나비생태원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625 때 피난처라고 생각했던 동굴은 일제강점기에 동촌비행장을 방어할 목적으로 만든 동굴진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