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와 고구려는 서로 왕까지 죽이면서 싸웠던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었다. 반면에 백제와 왜는 단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 왜는 가야의 철기문화를 받아 비약적인 문명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야와 함께 신라에 쳐들어가기도 했다. 백제는 왜에 문명을 전해주었고, 그 대신 수시로 군사적 지원을 받은 맹방이었다.
일본을 답사하면서 백제 무령왕이 규슈 가카라시마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663년 백촌강 전투 때 일본이 백제 부흥군을 돕기 위해 무려 2만 7천명의 병력을 지원했다는 사실, 나당연합군에 패한 일본과 백제 망명인들이 다자이후에 수성과 대야성을 백제식으로 쌓은 것이 지금도 남아 있는 사실을 보면 그때 그런 일이 다 있었던가 스스로 놀라게 된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I, 규슈 -- 빛은 한반도로부터]. 창비. 2013. 7.
- [삼국사기]에 무령왕이 동성왕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이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아 오류이고, 오히려 [일본서기]에 무령왕이 개로왕 혹은 그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이라는 기록이 맞는 듯하다고 역사학계는 말하고 있다. 또 [일본서기]는 무령왕의 탄생지를 규슈 사가현 가카라시마로 말하고 있는데 국내 학계 다수가 이 설을 따르고 있다고. 정재윤은 [무령왕, 신화에서 역사로](푸른역사)는 [일본서기]를 중심으로 무령왕의 탄생을 추적하고 있다. 이 일련의 이야기들은 백제와 왜가 상당히 가까웠다는 사실과 함께 예전에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고대사의 흥미로운 부분을 상상하게 한다.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는 개로왕의 아기를 임신한 형수와 함께 배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는 기사가 있는데, 실제로는 이 형수의 친부가 개로왕이 아니라 곤지였을 확률이 높다고. 무령왕은 동성왕이 죽고 난 뒤 즉위했는데, 동성왕이 곤지의 둘 째 아들이므로, 동성왕의 이복형으로 보인다고.)
고대사는 구멍이 너무 많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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