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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재인폭포에서 -- 재인의 말

by 길철현 2024. 12. 23.

 
간밤 내리던 비 그쳐
하늘은 높푸르고
폭포는 맑고 힘차게 흰빛으로 부서진다
줄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
허나, 줄 위에 한 번이라도 올라본 이라면
이 수십 길 협곡에 줄을 건다는 건
미친 짓거리라 주저 없이 말하리라
형방은 무슨 도깨비 바람이 불었는지
사또의 생신 축하연이랍시고
이곳을 건너라 하는구나
아니 되오, 아니 되오, 아니 되오
입안에 맴도는 말을 혀끝에 올렸다가는
그야말로 치도곤을 면치 못하리라
각시와 야반도주라도 할까
혼자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버릴까
짧은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도
뾰족한 답이 없구나
우리네 인생살이는 아무리 곱씹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누군가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 외치며
난리를 일으키기도 했다지만
그들은 모두 어떻게 되고 말았는가
위로는 주상전하로부터
아래로 이 작은 고을의 퇴락한 양반까지
반상의 구분이 서릿발 같은데
우리네 백정은 신분은 양인이라도
실제로는 천인 중의 천인이라
세 살배기 앞에서도 감히 고개를 못 드누나
동록개*라는 말이 공연히 나왔겠는가
아내는 자식이 없다고 슬퍼하지만
자식이 있어 집안에 웃음소리 울음소리 부산하고
노년에는 기대고 싶기도 하지만
이 개만도 못한 나의 설움을
물려주지 않아도 되니 차라리 다행이구나
올라야 한다면 오르는 것이 줄꾼의 운명
하늘님께 이 목숨을 맡기고
지난 이십 년 익히고 익힌 기술을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집중해야 하리라
벼랑 끝에 선 물처럼
이 줄 바깥은 모두 허공이라
줄이 건네는 말에 온 정신을 기울이면
발바닥으로부터 나아갈 길이 또렷해지리라
 
 
*동록개 - 동네 개
 
 
[재인폭포 전설문]
 
재인폭포는 주위 경관이 아름답고 물이 맑고 깊으며, 한탄강 상류에 인접한 관광지로서 연천이 자랑하는 명승지의 하나이다.
이 폭포는 이 고장의 줄타기에 뛰어났던 재인(才人)의 한과 그 부인의 절개에 관한 전설이 깃든 곳으로, 그 높이는 18.5m나 되며, 밑에는 넓고 깊은 연못을 이루어 피서지로서 특히 이름 높다.
폭포의 주위에는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가을 단풍 또한 매우 아름답다.
옛날 고을 원님이 절색의 미모를 가진 재인의 아내를 탐한 나머지, 재인으로 하여금 이 폭포 위에서 줄을 타는 재주를 보이게 한 뒤 줄을 끊어 죽였다. 그리고 재인의 아내에게 수청을 들게 했으나, 이때 그 아내는 원님의 코를 물어뜯은 뒤 혀를 깨물고 마침내 자결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재인의 한이 서린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 마을에 절개 굳은 코문이(재인의 부인)가 살았다 하여 ‘코문리’로 부르게 되었고, 후일 어음의 변화로 ‘고문리(古文里)’라 다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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