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otte Bronte, The Professor, Wordsworth (060106)
<줄거리>
학교를 졸업한 윌리엄은 유일한 혈육인 형을 찾아 간다. 형과는 십 년 넘게 못 본 사이인데, 형은 사업가로 성공해 있다. 그런데, 형은 윌리엄을 싫어하여 그에게 서기일을 시키고는 아주 무심하다. 이를 보다 못한 헌즈딘(Hunsden) 씨가 그에게 벨기에에 가서 선생일을 해보라고 한다.
윌리엄은 펠레(Pelet) 씨가 운영하는 학교의 교사로 착실히 생활하는데, 이웃해 있는 여자 기숙학교에도 강의를 나가게 되었다. 이 학교의 교장인 조레이드는 그에게 친밀히 대해 주면서 그의 마음에 연정을 품게 한다. 그러나, 그는 펠레 씨와 조레이드가 약혼한 사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다음, 두 사람을 모두 경원시한다. 그의 이런 태도가 오히려 조레이드의 마음에 불을 태우게 해서 그녀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애를 쓴다.
이런 와중에 윌리엄은 스위스 태생인 프란시스라는 학생이자 선생인 여인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되고, 그녀가 상당한 학문적,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질 즈음, 이 두 사람 사이를 시기하는 조레이드가 그녀를 학교에서 내쫓는다.
프란시스가 사는 곳을 모르는 윌리엄은 온 시내를 찾아 헤매고 그러다가 한 달 뒤에 묘지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된다. 윌리엄은 펠레와 조레이드 학교를 그만두고, 다소간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 더 좋은 직장을 갖게 된다.
두 사람은 결혼하고 프란시스는 자신이 직접 기숙학교를 운영한다. 꽤 많은 돈을 번 두 사람은 아들 빅터와 함께 영국에 와서 자리를 잡는다.
<평>
샬롯의 첫 장편인 이 작품은 그녀가 소설에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잘 드러내고 있지만, 그녀 소설의 취약성이 무엇인가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그 구성상의 평이함과 평면성으로(정확한 이유 고찰) 인해 출판이 거절되었는데, 그것은 오히려 그녀로 하여금 [제인 에어]로 하여금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반대급부로 [제인 에어]는 출판사의 충고에 지나치게 따랐는지 고딕 소설적인 믿기 어려운 사건들과, 상식적으로 용납이 안 되는 사건들(작품 후반부에서, 사촌들을 만나고, 유산을 상속받는 등의 사건)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 그럼에도, [제인 에어]는 재미있고, 한 인간의 내면적 감정, 열정이 노골적일 정도로 솔직하게 표현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이 첫 장편에 드러나는 소설가 샬롯을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한 마디로 못 박아 본다면 ‘소박한 리얼리스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이후 [빌레트]에서 확대 재생산되지만 전형적인 ‘소망충족(Wish fulfillment)'이다. 내가 읽어본 그녀의 세 작품은 모두 벨기에에서 사숙했던 에제 선생과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소설 속에서 이루게 하는 대리만족형 자전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화자를 남자로 삼았다는 점이다. 상대 성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상당한 심리적 고찰과 통찰력을 요구하는데, 이십 대 후반의 여성이, 그것도 첫 작품에서, 그러한 시도를 했다는 것은 과감하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 결과는 그렇게 신통치 못한 것으로 비춰진다. 등장인물의 좀더 깊이 있는 내면을 제시하는데 실패한 것은 아마도 그런 연유에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 작품이 소설로서 성공을 거두기 힘든 이유는 전체적으로 싱겁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윌리엄과 프랜시스의 사랑에는 우리가 소설에서 기대하는 잘 짜여진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조레이드도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하고, 두 사람의 사랑이 결실에 이르는 과정도 너무 스무스하다. (물론 여기서 이 작품의 가독성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사실, 불어로 씌어진 많은 부분은 거의 이해를 못했다.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했더라면, 작품의 섬세한 굴곡을 잘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살피는데 주의해야 할 점 중 하나는 두 주인공의 관계가 연인이고 부부이기 이 전에 선생과 제자의 관계라는 점인데, 이 점 역시도, 이 작품을 ‘애정 소설’로 발전시키는데, 한계를 드러내게 한다. 선생과 제자의 관계는 대등한 관계라기보다는 가르치고 배우는 상하관계라는 점이 우선시 된다.
이 소설은 우리 인생살이를 소박하지만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 했다는 점에서(그것이 성공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본다하더라도), 동생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와 많이 닮았다. 하지만, [아그네스 그레이]가 소설로서는 모르겠지만, 작가 자신의 음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반면, 이 작품에는 윌리엄이라는 가면과 작가 사이의 거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쇼킹한 사건이 없어도 소설은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삶의 고찰이 피상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공감을 하기가 어렵다. 여성의 자립성을 강조하는 부분도 지금에 와서는 너무 진부한 이야기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