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 원칙을 넘어서(14), 박찬부 1920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은, 마음속에 쾌락 원칙을 향한 강한 <경향>이 존재하지만 그 경향은 다른 힘이나 환경에 의해 대치되어 최종 결과가 반드시 쾌락 지향적인 경향과 조화를 이룰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13)
*정신분석학은 그들의 운명이 대부분 그들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며 어린 시절 유아기의 영향력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견해를 항상 견지해 왔다. (30)
*의식은 기억의 흔적 대신에 발생한다. (36)
*우리는 무의식적 정신 과정이 그 자체로 <무시간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말은 우선 그 정신 과정에서는 시간적으로 질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시간이 어떤 방식으로도 그 과정을 변화시키지 않으며 시간의 개념이 그것에 적용될 수 없다는 뜻이다. (39)
*만약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내적인> 이유로 인해서 죽는다--다시 한번 무기물이 된다--는 것을 하나의 예외 없는 진리로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모든 생명체의 목적은 죽음이다>라고 말하고 또한 뒤를 돌아보면서 <무생물체가 생물체보다 먼저 존재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53)
*사디즘에 보완적인 구성 본능인 마조히즘이라는 것이 주체의 자아에게 되돌아온 사디즘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임상적 관찰을 통해서 얻었다. (76)
*원생 생물에 대한 실험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접합--두 개체의 결합을 말하며 이들은 결합 후 곧 떨어져서 계속적인 세포 분열이 일어나지는 않는다--이 양쪽 모두에게 몸을 튼튼하게 해주고 도로 젊어지게 해주는 효과를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77)
*죽음 본능의 가설을 버리지 않으려면, 그 죽음 본능이 맨 처음부터 생명 본능과 연관되어 있었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 경우 우리는 두 개의 미지수를 가진 방정식을 놓고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80)
*플라톤 향연/우파니샤드(81)
*첫째, 살아 있는 물질이 생명체로 태어나는 순간 두 개의 작은 입자로 분할되었고 그후 줄곧 그들은 성적 본능을 통해 재결합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둘째, 무생물의 화학적 친화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 성적 본능은 원생 생물의 왕국을 거쳐 발전하면서, 위험한 자극--보호적 외피 층을 형성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자극--으로 가득 찬 외부 환경이 재결합 노력에 가하는 여러 난관들을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셋째, 이런 식으로 살아 있는 물질이 분열되어 파편이 된 상황은 다세포적 조건을 획득하게 해주었고 마침내 재결합의 본능을 고도록 농축된 형태로 생식 세포로 옮겨 가게 해주었다. (82)
*생명의 본능은 내적 지각과 훨씬 더 많은 접촉을 하고--그래서 평화의 파괴자로 등장하고 항상 긴장을 유발시켜 이것의 방출을 쾌락으로 느끼게 한다--반면에, 죽음 본능은 그 자신의 일을 야단스럽게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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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자신이 인간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 혹은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쾌락 원칙’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되풀이하여 반복’하는 [반복 강박]을 제대로 설명해 낼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의 파괴적 본성--일차 세계 대전이라는 대재앙의 영향 아래--을 설명할 수 있는 방편으로 [죽음 본능]이라는 가설을 내세우게 된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가설에 확신을 가지고 말하지는 않으며, 이후의 연구가 이러한 가설을 좀 구체화시켜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캐플런은 [죽음 본능]을 믿는 정신분석학자는 이제 별로 없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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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부)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을 현재에 반복한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쾌>는 취하고 <불쾌>는 피하는 쾌락 원칙의 기본 강령에 어긋난다. 불쾌를 피하려는 최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기여하는 어떤 행위를 반복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그 행위가 강박성을 띠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렇게 강박성을 띤 모든 반복 현상을 묶어서 <반복 강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