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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

박형준,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창작과 비평사)

by 길철현 2016. 12. 1.

*박형준,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창작과 비평사)

처음 몇 편은 읽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예를 들어 첫 시 천식같은 시는 제목이 왜 천식인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그 다음 몇 편의 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시 읽어본 천식, 파도가 치고, 해변에 새들이 죽어 있는 풍경, 쓸쓸함과 공허함, 이런 정도는 다가왔다. 그럼에도 왜 제목이 천식일까에 대한 궁금점은 한 발도 진전이 없다.

 

거품들이 나를 이곳에 데려왔다. 숨죽인 해변에 새들이 죽어 있다. 저것들은, 오래 전의 헛것들이다. 날개를 벗어 버린 꿈들이 부서져 저린다.

어느 해안을 떠돌다 왔을까. 나를 차지했으나, 끝내 모습을 감추고 헛되이 끼루룩거리는 바다에서, 죽은 새들이 해변을 점령한 오후에, 거품들이 급격히 불어난다. 멀리, 섬들이 솟아 있다.

 

이렇게 시를 옮겨 치고 있으니까, 이 시를 꼼꼼히 읽지 않은 부분이 자꾸 드러난다. 첫구절, ‘거품들이 나를 이곳에 데려왔다는 건 산문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바다가, 바다의 파도가 나를 불렀다는 말이 될 것이다. 새들이 죽어 있다는 표현은 실제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일까 아니면 파도가 밀려나가고 남은 거품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일까? 뒤에 이어지는 싯귀들은 후자 같기도 한 데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심한 비약같기도 하다. 시의 후반부에 나오는 거품들이 급격히 불어난다는 것은 밀물 때가 되었다는 말인가? 아직도 나의 시읽기는 너무나 서투르다. 이 정도나마 이 시를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즐겁다. 하지만, 그러한 작업이 시적인 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러한 시들이 2부로 가면서 다른 모습을 띤다. ‘앞발이 들린 채 끌려가는이라는 시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이 시집의 표제시인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은 시 속의 이미지나 싯귀가 아름답다. 그리고 특히 4연의 너저분한 시장 바닥에 한없이 낮아지는 충격으로 빗속에 방치된 술취한 사내가라는 구절은 내 시에 이용해 볼 만한 부분이다.

 

나무들의 교사 나무들의 희미해진 복도 저편에

뒤집으면 검게 탄 발바닥이

화산의 분화구를 밟고 있고,

꽃들은 밑에 거울을 하나씩 감추고

대지 위에 꽃잎을 이어 붙이고 있다

 

비 오는 날

퍼붓는 폭풍우 속

간이식당 유리창 곁에서

국수를 미친 듯이 먹고 있는 여자의 이미지--

 

민둥산인 마음아

울지 말아라, 붉게 울지 말아라

올 봄은,

 

빵이 유일한 나의 친척이었네

올 봄에는 하수구로 미친 듯이 빠져나가는 동그라미

젖은 머리카락 한움큼 남았고,

너저분한 시장 바닥에 한없이

낮아지는 충격으로 빗속에 방치된 술취한 사내가,

혼몽한 잠에 빠져

빗방울 속에 커다랗게 부풀어오른,

간이식당 유리창에 퍼붓는 눈동자가 지켜보는,

미친 여자 등의 포대기에 감싸여

흘러내리는 국숫발 속에서 몸을 빼며

빗방울 속에 더오른 작은 성냥 불빛,

또 하나의 눈동자를 손가락으로 꾹꾹 밀어내리고 있다

 

유리창에 꽃잎을 피워낸

아이의 손가락 끝에서 꽅들은 상해 있고

밑에 빵냄새를 풍기며

거울을 반짝이고 있네

 

이 시도 나로서는 따라가기가 상당히 힘들다. 아직도 시읽기는 허술하다. 첫행의 나무들의 교사가 무슨 말인가? 일연의 이미지는 아름답긴 하지만, 도저히 맥락을 이해할 수는 없다. 반면에 2연은 너무 쉽다. 여자가 한 명 등장했다. 3연의 민둥산인 마음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4연엔 나가 등장하고, 술취한 사내가 또 등장한다. 이 사내는 나인가? 구문이 너무나 복잡하고, 이해가 도통 안 된다. 오랜 시간의 공구가 필요한데, 일단 몇 번의 통독으로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 다음 파편이라는 산문시는 말이 참으로 아름답다. 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이 아름다웠듯이.

박형준의 시는 나에게는 아직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윤학은 박형준의 시를 두고 내면의 거울은 자신을 통해서 세계를 닮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박형준의 시를 읽고, 박형준의 내면의 거울로 들어가기는 수월치는 않다. 물론 나의 게으른 시읽기 탓이지만. 첫시집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도록 하자. 그의 시가 문득문득 주는 아름다움. 그러나, 그에 비해 너무 신비적이다. 나로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