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 [벼랑의 꿈], 시와 시학사 (2000년 3월 28일)
(몇 달 전부터 김소월의 시를 읽고 분석하는 작업을 하다가 그 작업의 재미없음에 중단을 해 버린 다음으로는 처음 읽는 시집이다. 김소월 연구는 그러니까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이선이의 ‘시창작론’ 수업을 듣게 되면서, 내가 고르지 않은 시인들의 시를(물론 그 중에는 겹치는 것도 있지만) 읽게 되었다. 수업을 시작한 지가 벌써 한 달이 지나갔는데, 그 동안 바쁜 나머지 수업을 열심히 따라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렇긴 하지만 시력은 미약하나마 어느 정도 돌아왔다고 할 것이다. 차근차근 읽어나가면서, 시에 대한 기본적인 안목을 높여 나가도록 해야 하리라.)
오세영의 시집은 이번에 처음 읽는 것인데, 우선적으로 그가 보여주는 세계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는 힘들었다는 걸 말하고 싶다. 김우창은 “오세영 씨는 오늘의 시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전통적인 시를 쓰는 사람의 하나이다. 그것은 그는 근대 이전의 시적 전통 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것의 확대 발전 병용 또는 쇠퇴를 보여준 우리의 현대시의 흐름 속에 있다.” 그리고 나아가서 “한국의 시적인 것의 역사의 현대적 변모를 규지할 수 있게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가 우리 시의 전통에 충실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쉽사리 공감을 할 수 있으면서도, 현대적 변모라는 측면에서는 언뜻 와닿지 않는다. 물론 김우창은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 현대에 있어서의 자연(인간이 귀화하고 의지해야할 동양의 전통적인 자연과는 조금 다른) 이런 부분이 드러나는 곳을 직접 예를 들어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이 시집에 첫머리에 실린 ‘속구룡사시편’은 이 시집의 시의 경향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쉽사리 공감을 할 수 있으면서도, 시인의 시적 기량에 감복하게 되는(그럼에도 뭔가 도전의식이랄까, 충격, 새로움은 없지만) 절편이다.
한 철을 치악에서 보냈더리라.
눈 덥힌 묏부리를 치어다 보며
그리운 이 생각 않고 살았더니라.
빈 가지에 홀로 앉아
하늘 문 엿보는 산까치같이.
한 철을 구룡에서 보냈더니라.
대웅전 추녀 끝을 치어다 보며
미운 이 생각 않고 살았더니라.
흰 구름 서너 짐 머리에 이고
바람 길 엿보는 풍경같이
그렇게 한 철을 보냈더니라.
이마에 찬 산그늘 품고,
가슴에 찬 산자락 품고
산 드룹 속눈 트는 겨울 한 철을
깨어진 기와처럼 살았더니라.
(*1연 2행의 ‘덥힌’은 ‘덮인’의 오기가 아니라면 의식적 표기라는 생각이 드는데 모르겠다.)
‘사랑과 증오를 모두 잊고, 자연물처럼 살아가겠다’는 은자적 마음이 적실하게 잘 형상화 되어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태도가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신이라는 존재가 죽음 내지는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동양 사상에서 신의 등가물인 자연도 그러한 사정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므로, 이 시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 정당성을 인정 받기는 어렵지 않을까?
현대의 물질주의적이고 직선적인 사고관에 대한 반발로써, 상당히 힘을 잃긴 했지만 복고적이고 회귀적인 사고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도 현대적인 변모를 거쳐야 하지 않을까? 아니 나는 그런 현대적인 변모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밖에 이 시집에서 내가 기억하고 싶은 시는 별반 없다. 이순의 나이가 발견한 시적 진실이 이런 것이라는 것이 나로서는 받아들이기가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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