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보낸 3주일, 청하, 1988년
첫 시 <요리책>은 그런대로 흥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티브가 비판의 대상으로 들어온 것, 그리고 한 행의 호흡을 짧게 해 본 것 외에 달라진 점은 없다. 시는 더욱 쉬어졌고(물론 <열 사람>같이 이 전의 시를 개작한 것은 경우가 다르지만), 시를 쓰려는 것인지 줄글을 쓰려는 것인지 모르게 된 경우도 빈번해 졌다. 장정일은 이 모든 걸 자기 나름의 시도라고 보려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쉽게 행해졌고, 너무 자신의 요설에 의존하고 있다. <자동차>와 <슬픔> 같은 시는 [길안에서의 택시잡기]에도 같은 제목으로 실린 시인데, <자동차>의 경우에는 같은 내용의 시이고, <슬픔>은 같은 형식을 차용하고 있는데, 막연히 같은 제목으로 내놓아도 괜찮은 것인지, 전체적으로 무책임함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은 시이리라.
촌충*8
사랑을 증폭시키는 방법을
알고 싶은가
여기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소문내지 않는다면)
먼저
치마와 살양말을 그대로 둔 채
그녀의 스웨터를 단번에
가슴까지 치밀어 올릴 것
그런 다음
당신의 출신 대학 문장이 새겨진
혁대의 바클로
그녀의 하얀 등허리를
후려 갈길 것!
(곧바로 당신은
정신병원에 갇히고
그녀는 약국으로 달려가
파스를 사 붙인다
미안하게도 당신은
나에게 속았다)
시와 시가 아닌 것의 구분은 모호하긴 하지만, 장정일의 몇몇 시들은 시의 영역 밖에 머물고 있다. 그의 실패는 시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한 그의 시도의 참됨의 실패는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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