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언어'를 갖게 되고 또 그 언어를 정교하게 발전시켜오면서 - 인간이 어떤 경로로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방편인 언어를 갖게 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 인간 자신과 이 세상은 거대한 물음표가 되었다.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란 존재는? 신은 있는가 없는가? 각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듯한 답이 있으면서도, 사람들 개개인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생각의 차이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사고를 다양한 방향으로 이끌어 보다 나은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숱한 분쟁과 심지어는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파국을 불러오기도 한다.
결국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알 수 없는 그런 문제에 봉착하여 세상 속의 인간은 저마다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를 펼쳐왔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간의 뛰어난 자질인 이성을 충분히 활용하여 "최선의 것"을 향해 나아가려 노력해 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고 좀 더 긍정적으로 보아야할까?
니체식으로 말해 인간의 언어가 그 출발부터 불확실성과 모호함에 휩싸여 있어 과녁이 어딘지도 모르고 쏘아댄 화살처럼 언어가 이끄는 대로 막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좀 더 긍정적으로 언어라는 것이 최소한 우리의 깊은 욕구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므로 그 필요성과 최소한의 정당성은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이것은 메를로 퐁티의 말이지만.
어쨌거나 사람들은 저마다의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그 중에는 우리가 병적이라고 부르는 반사회적인 것도 있고, 혹은 사회 자체가 병적일 수도 있다. 나찌 독일의 예를 생각해보면 인간-동물에 대해 어떠한 희망적 기대를 갖는 것도 불가능하므로 한시 바삐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마저도 든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나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나,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나 모두 지난한 일이리라. 그럼에도 변화의 가능성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을 놓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드문 경우겠지만 지나치게 자기 의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맞을 가능성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 - 사족인가?
'하루를 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국의 낯선 거리를 거닐다 (0) | 2016.12.15 |
---|---|
죽어라, 죽기 전에 (0) | 2016.12.06 |
악마는 세부 사항에 있다(The Devil's in the details) (0) | 2016.11.29 |
(161128) 블로그 활동 (0) | 2016.11.28 |
(161127) 미리 올해를 돌아보면서 (0) | 2016.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