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를 여는 말

죽어라, 죽기 전에

by 길철현 2016. 12. 6.

이문열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그의 후기 작품들은 읽지 않았지만 [사람의 아들]이나 [젊은 날의 초상] 등 초기작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젊은 시절의 방황을 때로는 치열하게 또 때로는 낭만적으로 그려내었다. 거기다 난 [황제를 위하여]만큼 코믹한 작품을 알지 못한다. 있다면 킹즐리 애이미스의 [럭키 짐] 정도일까? 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문학사상사'에서 주최한 독후감 모집에 응모해서 '가작'에 당선되는 영광도 안았기에 인연도 깊은 작가이다. 무엇보다 이문열의 문체가 지닌 마법적인 힘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 바뀐다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필연적으로 바뀌는 면도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대체로 보수적으로 바뀌는 듯하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새로운 것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하는 것이 나이든 사람, 혹은 기성세대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사실 이문열의 근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70이 내일 모레이다. 생각보다 젊다. 나보다 스무살 가까운 연장자니까 이문열 선생님 혹은 작가님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십 년 쯤 전인가 추미애 의원이 이문열을 폄하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심한 반감을 느끼기도 했다.


최근의 이문열의 행적에 대해서 지극히 보수화되었다는 정도의 피상적인 지식 뿐이었지만, 조선일보에 실린 이번 칼럼을 읽은 느낌은 그 요지를 알기도 힘들 뿐더러, 이번 사건의 핵심 문제에 대해서도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종편들이 이번 사건을 지나치게 가십거리로 만드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래도 조금은 동감하는 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광화문 촛불 시위에 백만이 넘는 인파가 나왔다는 것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에 반대하는 국민의 3퍼센트도 안 되는 사람들이 퇴진과 탄핵을 외쳤다고 그것을 '국민의 뜻'으로 바꿔 볼 수 없다"는 논리는 "2002년 월드컵 때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인파가 백만이 채 안 되기 때문에 전국민의 2퍼센트만이 월드컵을 즐겼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거기다가 어김없이 따라오는 종북몰이.


민주 사회라는 것은 아무리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이야기라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갖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문제에 대해 보수 운운하는 것은 이문열 선생님과 연배가 비슷한 한 분이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한 말에 비춰보아도 자가당착적이다. "이번 일을 두고 보수니 진보니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라는 그 분의 말을 바꿔 보자면 "이번 일은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지만, 솔선수범해서 법을 준수해야 할 대통령이 중차대한 위법 행위를 한 것에 대해 국가의 주인으로서 국민들이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이 될 것이다.  

'하루를 여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부동침  (0) 2016.12.20
외국의 낯선 거리를 거닐다  (0) 2016.12.15
의심  (0) 2016.12.02
악마는 세부 사항에 있다(The Devil's in the details)  (0) 2016.11.29
(161128) 블로그 활동  (0) 2016.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