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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

이시영, 만월(滿月), 창작과 비평사(2001년 5월 17일)

by 길철현 2016. 12. 5.

*이시영, 滿月, 창작과 비평사(2001년 5월 17일)



(그 동안 꽤 많은 시집을 읽어 왔지만, 시집을 읽는 일은 대체로 수월하지 않았 다. 그 까닭은 시 자체가 갖고 있는 난해함이라는 속성과, 또 나의 편에서 시를 꼼꼼히 읽지 않은 탓이리라.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시가 갖고 있는 미술 내지는 음악적 속성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언어적 이해에만 신경을 기울인 까닭도 있다. 읽는 것이든 쓰든 것이든 한계까지 밀고 나가보는 노력이 때때로 필요함을 깨닫는다. 최대한 다각적으로 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전체 감상>
이시영의 시집을 다시 뽑아든 이유는 현재의 나의 전반적인 침체의 상황에서, 그의 시가 뭔가 돌파구를 보여주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작년 [시창작] 수업에서 읽은 [조용한 푸른 하늘]이 보여주는 산문적 명징성 속에 드러나든 시적 정취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시영의 첫 시집은 썩 마음에 든다고 할 수는 없다. 당시의 시대고나 생활상이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많이 퇴색된 부분도 있고, 그의 언어가 구체적이라기 보다는 추상적이고 흐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별시 감상>


*바람아

바람아 너희 나라엔 누가 있는가
날 저물면 산에서 내려와 문고리 두드리는
커다란 그림자가 있는가
뒷문 열고 기침하는 늙으신 어머니가 있는가
밤새도록 대밭에서 끄덕이다
땅 끝으로 사라지는 반딧불이 있는가
아버지가 있는가
바람아 너희 나라엔 얼굴도 없는가
서서 멈출 발자국도 없는가
풀섶을 헤쳐가는 소리죽인 눈도 없는가
떨리는 가슴 닿을 다음 땅은 없는가
바람아 너희 나라엔 아무도 아무도 없는가


이 시는 특별히 무엇인가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느낌이 좋다. 아마도 그것은 이 시에 등장하는 대상들이 바람과의 연상 작용에서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효과 때문이리라.


2. 매미

잘못 박힌 송곳니에 물리는 햇살
통째로 씹히면서 그러나
퍼렇게 기어가는 놈들
五官의 불 익은 철사줄에 누워
목숨의 한 가락 가락이 끊어진다.

첫 행이 어색하지 않은가? “통째로 씹히면서 그러나/퍼렇게 기어”간다는 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그 다음 표현도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단념한 저 吉順이의 수풀 속에서
번쩍이는 도끼
잉잉대는 사랑의 이파리를
팔다리로 토하면서 나는 뛰었다.

“단념한 저 길순이의 수풀”은? 도끼는 왜 느닷없이 번쩍이고 있을까? “잉잉대는 사랑의 이파리”는 매미를 가리키나? “팔다리로 토하”다니?

목울대에 걸려 넘어진 대리석 기둥
펄펄 끓는 머릿속 벌레가 되고
혁명의 금간 내 손등을 내리찍는
이 빛 뻣뻣한 화살은 누구인가.

발목이 삐었다.
죽은 아버지와 잇닿았던 관솔
아버지의 흰뼈의 새 움이 동트고
노래하는 살 가득 고이는 송진
두드려라 이 몸의 어디를 눌러도
나는 금속의 햇살이고
그 쩌렁쩌렁한 놋쇠일 테니.


정말 난해하다. 아니 제대로 형상화 해내지 못한 시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매미인가? 뛰었다라는 표현이 나온 걸로 봐서는 나는 화자라고 봐야 할 듯하다. 매미의 속성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