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문지(01년 6월 1일)
--내 시에는 철학이 없다. 내 삶이 그렇듯이
황인숙은 시를 대단히 쉽게 쓰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그녀의 시를 읽으려는 몇 번의 시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그것도 재미있게 읽어 내었다. 아마도 예전의 실패는 무겁지 않을 것을 무거운 잣대로 읽으려고 했기 때문이리라.
이번에 황인숙의 시를 읽으면서 떠올랐던 단어들은, 가벼움, 낙서, 발빠름, 발랄함 등이었다. 그리고 얼핏 본 것이긴 하지만, 정과리의 다음 말은 나의 느낌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이 곧 시가 되는 시인들이 있다. 그 시인들에겐 뇌와 입술 사이의 거리가 무척이나 짧아 관념은 이미 소리의 날개를 달고 태어난다. 그리곤 쏜살같이 입술로 내달아 문자를 낚아채고 솟구치는 것이다.
그녀의 시는 지금까지 읽었던 시에게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가벼움과 자유로움 등으로 나를 매혹했다.
내 가슴은 텅 비어 있고
혀는 말라 있어요.
매일매일 내 창엔 고운 햇님이
하나씩 뜨고 지죠.
이따금은 빗줄기가 기웃대기도,
짙은 안개가 분꽃 냄새를 풍기며
버티기도 하죠.
하지만 햇님이 뜨건 말건
빗줄기가 문을 두드리건 말건
안개가 분꽃 냄새를 풍기건 말건
난 상관 안 해요.
난 울지 않죠.
또 웃지도 않아요.
내 가슴은 텅 비어 있고
혀는 말라 있어요
--<잠 자는 숲> 일부
거침없이 써내려간 듯한 이 시는 우리가 시에 대해 지닌 고정 관념을 조금은 비껴나가 화자의 세계를 자유롭게 보여주고 있다. 그 점이 황인숙의 시가 갖는 매력인 듯 하다. 이 세계를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생명의 비밀, 우주의 비밀 따위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의 상태에 좀 더 치중을 하고 좀 더 솔직하게 내뱉고 있는 것이다. ‘내 가슴은 텅 비어 있고/혀는 말라 있’기 때문에 해가 ‘뜨건 말건, 빗줄기가 문을 두드리건 말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언표는 대담하다. 자칫 황인숙의 이러한 글쓰기는 ‘무절제한 감정의 토로’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결론적으로 그녀의 시는 그렇지 않다(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는 무리겠지만). 그것은 알게 모르게 그녀의 시에서 배어 나오는 음악성에 많이 기대고 있으며, 또 무심해 보이면서 뭔가 정곡을 찌르는 싯구 때문일 것이다. (이 부분은 쉽사리 장담할 수는 없다.)
내 가슴은 텅 비어 있고
혀는 말라 있어요.
하지만 난 조금 느끼죠.
이제 모든 것이 힘들어졌다는 것.
가을이면 홀로 겨울이 올 것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내게 닥칠 운명의 손길.
정의를 내려야 하고
밤을 맞아야 하고
새벽을 기다려야 하고.
--<잠자는 숲> 일부
그녀의 시의 힘은 그녀의 재치있는 비유에도 많이 빚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햇살이 무수한 방향으로 길을 떠나듯
저마다 다른 곳을 향하여 머리를 두고
누워 있는 우리.
--<圓舞>
괘종처럼 흔들리는 이상한 시간
--<달밤>
의자에 몸을 던지면
마음은 연잎에 고인 빗방울처럼
동그래진다
--<의자>
밤은 고양이새끼처럼 젖어
발치에서 울고 있다
--<밤은 빗속을>
황인숙의 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해 왔는지 궁금하지만, 그녀의 시가 보여준 “가벼움”은, 모든 것에 너무 무게를 두는 내 삶의 방식에 경종을 울려 주고 있으며, 그러한 “가벼움”이 사물을 대하는 방식에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성이 있어서 나에게 충격을 준다. 전체적으로 그녀의 시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나름대로 세상을 진솔하게 보려는(자신의 천성에 충실하면서) 시도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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