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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

이시영, 무늬, 문지 [2001년]

by 길철현 2016. 12. 5.

*이시영, 무늬, 문지


*짧은 시구들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집의 단시들은 거의 모두 자연을 매개로 하거나, 아니면 그냥 대상으로 삼는 철저한 자연 서정시들이다. 인간에게서, 그리고 그 인간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인 이데올로기나 예술적 포즈에게서 구원을 찾지 못한 시인은 결국 자연 속에서 그것을 발견한 것이다.  (김주연, 109)



<감상>
시집 [바람 속으로]에서부터 많이 보이기 시작하던 서정시들은 이후 이시영 시의 중심이 되었다. 이시영의 단형 서정시들은 내가 보기에는 1)이미지즘의 추구와 2)자연 현상에 해명을 시도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잘 형상화 된 경우에는 예이츠적인 ‘지혜’가 돋보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이미지즘이 갖는 취약점인 단순한 ‘묘사’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자연 현상의 해명을 김주연은 자연에서 어떤 목적성, 신성성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 부분은 좀 더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시가 구체화되면서(이러한 방향의 선회는 [길은 멀다 친구여]에서부터 뚜렷이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읽기가 수월해 졌다. 몇 편의 시들은 고개를 끄덕이게도 한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마음의 고향” 시편들이었다. 이 시편들은 앞의 시들과는 달리 꽤 긴 시들이지만, 서정적 정조는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시영의 이러한 시작 태도는 [조용한 푸른 하늘]까지 이어졌는데, 거기서 이시영은 벽에 부딪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얼핏 해본다.


*이번에 이시영의 시집을 네 권 통독해 보았는데, 나로서는 [길은 멀다 친구여]와 [무늬]가 그래도 읽기가 수월했다. [무늬]는 내 생각에 이시영 시의 어떤 정점이 아니었던가 한다. 전체적으로 이시영에게 배울 점은 “사물을 관찰하고 충실하게 기록하는 사람”으로서의 시인의 역할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부분에 있어서 이시영은 그다지 성공하고 있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