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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

황인숙,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문지(010614)

by 길철현 2016. 12. 5.



*황인숙,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문지(010614)



*정과리
;생각이 곧 시가 되는 시인들이 있다. 그 시인들에겐 뇌와 입술 사이의 거리가 무척이나 짧아 관념은 이미 소리의 날개를 달고 태어난다. 그리곤 쏜살같이 입술로 내달아 문자를 낚아채고 솟구치는 것이다. 이 부류의 시인에게는 비유와 상징이 곁들 여지가 없다. 아니 차라리 불필요한 것이다. 관념이 이미 시이니 어떤 수사학도 무익한 연장이리라. 황인숙은 그런 새호리기나 황조롱이와 같은 매과에 속하는 시인이다. (115)


<개별시>
*하, 추억치고는!
이 시는 읽어내기가 수월치가 않다.

어둠 상자 속
뿌옇게 빛 절은 필름으로 찍히는
돌아오는 길에
쪼그리고 앉았다.


‘어둠 상자’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사진기의 내부 같은 것, 혹은 우리의 기억? ‘뿌옇게 빛 절은 필름으로 찍히는/돌아오는 길’은 유심히 보니까, 시간이 지나서 혹은 다른 이유로 “흐릿해진 과거의 기억, 어느 시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쪼그리고 앉았다’는 표현도 실지 행동이 아니라, ‘돌아오는 길’을 “되새겨 보는 행위”를 가리키는 비유이다. 이렇게 보고 나니까, 그 다음 구절은 쉽게 풀린다. 역시 꼼꼼하게 읽어나가는 습관이 필요하다.
과거를 되새겨보는 행위 끝에 화자가 느끼게 되는 것은 그 과거가 ‘헛것’이라는 통찰이다.


이게, 뭔가?
이글거리는, 멋들어진
스러짐이여, 끈질기게. . . . . .

하지만 마지막 부분은 또다시 의문이다. ‘멋들어진/스러짐이’라니?


*딸꾹거리다
1. 독재적인 아버지의 모습
2. 딸의 무위로 돌아간 반항
3. 기분이 좋지 않아 삶을 꿈으로 치환하려 한다
4. 벼락이라도 맞고 싶은 심정

이 시에서는 시인을 좇기가 힘이 든다. 우리가 딸꾹질은 언제 하는가? 화자가 삶에 체했음을 느끼는 까닭은 무엇인가? 어렵다.


<감상>
황인숙의 이 시집에서, 전 시집 [슬픔이 나를 깨운다]로부터의 방향 전환이랄까 그런 것을 느낄 수는 없다. 따라서, 시집을 읽고 난 전체적인 느낌도 비슷하다. 그녀 특유의 가벼움, 사물을 전도시켜서 보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이 시집에서도 살아 있다. 그리고 나이의 무게가 점점 더 그녀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도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