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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독서일기01-05

이재철, 유영모의 하나님 귀일신앙 연구, 석사논문(04?0319)

by 길철현 2016. 12. 6.

* 이재철, 유영모의 하나님 귀일신앙 연구, 석사논문(04?0319)

 

--촌평

단견이기는 하지만 이 논문을 통해 볼 수 있는 유영모 사상의 핵심은 없이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역사적 실존으로서의 예수, 또 그러한 예수의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실천 의지 정도라고 비춰진다. 또 유영모의 하나님 이해에는 서양의 기독교를 우리의 전통 종교*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유**선의 바탕에서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논문은 전체적으로 유영모의 사상의 궤적으로 차분히 추적하려 애쓰고 있으나, 서구 문명과 동양의 문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거나, 또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 너무 단정적인 면 등은 지양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한다.

철학에서도 신학에서도 초심자인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말 할 수 있는 부분과, 아직 말 할 수 없는 부분(물론 형이상학은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말 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니 이 언표를 좀더 정확하게 하자면 이미 우리의 인지의 영역으로 들어왔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부분도 항상 뒤집혀지는 그런 것이긴 하지만)에서 너무 멀리까지 나아가기 보다는 그 경계선상의 부분에 좀 더 주목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삶은 우리에게 우리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결단을 요구하고, 결론을 부추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내가 너무 소극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불충분한 결단과 결론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삶을 진보하게 하는(?) 요소인가?

 

*1장 서론

 

*2장 유영모의 생애

*1918113일부터 유영모는 처음으로 날수을 세기 시작하는데, 그의 나이 28세로 산 날이 1240일이었다. 이것은 유영모의 사상 중 일일주의의 기초가 된다. 바꾸어 말하면 하루살이라는 것이다. 하루살이란 하루하루를 덧없이 내버리면 인생은 허무밖에 남지 않게 되는 것이며, 쉬면서도 쉬지 않는 숨처럼 언제나 깨어서 정성을 다하여 열심히 일을 하며 하루를 살 때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이요, 열심히 하는 일은 하나님이 시키신 사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11)

 

*3장 유영모의 기독교 이해

*진리를 깨닫는 것과 죽음을 넘어선다는 것은 같은 말이다. (30)

*그리스도는 예수의 몸이 아니라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임을 깨닫게 한 그 무엇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며 예수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믿게 될 때에 예수는 신비한 존재가 되고, 상대적 존재로서의 몸인 예수가 절대적 존재로서의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인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유영모의 예수와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이다. (33) (이것은 삼위일체설에 대한 부정인가?)

*유영모의 인간이해는 인간을 궁극적인 나(眞我, 얼나)와 동물적인 수성을 지닌 몸나로 구분해서 보는 사고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37)

 

*4. 유영모의 하나님 귀일신앙

*서양 사람은 없()을 몰라요. ()만 가지고 제법 효과를 보지만 원대한 것을 모르고 그래 보았자 갑갑하기만 하지요. 서양문명은 벽돌담 안에서 한 일이에요. (43)

*한아님은 없이 계신 이다. 한아님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어림없는 말이다. 도깨비도 안 뵈는데, 만약에 한아님이 보인다면 도깨비보다 못한 것이다. (46)

*하느님이 없다면 어때, 하느님은 없이 계신다. 그래서 하느님은 언제나 시원하다. 하느님은 몸이 아니다. 얼이다. 얼은 없이 계신다. 절대 큰 것을 우리는 못 본다. 아직 더 할 수 없이 온전하고 끝없이 큰 것을 무라고 한다. 나는 없는 것을 믿는다. 인생의 구경은 없이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모시자는 것이다. (47)

*유영모에게 하나님은 절대자이시지 상대적인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신 이해는 그가 예수를 완성된 인간으로 보며 그의 신성을 부정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하나님은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은 절대자가 아닌 상대자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51)

*하느님은 절대다. 그래서 한님이다. 큰님이다. 더할 수 없이 온전한 것, 더할 수 없이 아주 큰 것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니 없다. 그래서 무다. 나는 없이 계시는 한님을 믿는다. 없이 계셔 모르므로 믿는다. 있는 것은 아니까 안 믿는다. 영원 절대한 한님은 오고 갈 필요가 없다. (54)

*유영모는 비록 석가, 공자, 노자가 받은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와 다르지 않지만 그들은 자신이 귀의할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유영모가 종교들 간의 혼합적 동일이 아니라, 절대 존재에로 귀일하고자 했을 때, 그 구체적, 역사적 실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정하게 되었다. (70)

*인생이란 무엇인가. 무르익는 것이다. 제물이 되는 것이다. 밥이 되는 것이다. 밥이 될 수 있는 사람만이 밥을 먹을 자격이 있다. . . 도를 들었단 말은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사람이 되면 언제나 죽을 수 있다. 알알이 익기만 하면 언제나 떨어질 수 있다. 사람이 되기만 하면 언제나 십자가에 달릴 수 있다. 사람이 되기만 하면 언제나 제물이 될 수 있다. 인생의 목적은 제물이 되는 것이다.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