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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여행이야기128

할매바위[전북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 산6-1](20230926-5) [탐방기] 고창 고인돌 유적에서 인천강변로를 타고 선운사로 향하다가 발견한 바위로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맞닥뜨리게 되어 그 놀라움이 배가 되었다. 이 바위가 왜 할매바위인지(전국적으로 할매바위가 여럿 있다)는 알 수 없으나, 높이 60미터 폭 50미터의 암벽이 도로 바로 옆에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암벽은 암벽 등반가들이 애용하는 곳으로 주차를 하고 다가가보니 여자 한 분이 암벽을 오르고 있었다. 이 바위 왼쪽편에 있는 절벽도 나름 수려한 모양이었다. 이 바위를 지나자 전좌바위, 병바위, 소반바위가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전국을 많이 돌아다녔음에도 이곳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왼쪽 편 바위] 2023. 11. 8.
전봉준 장군 생가터[전북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63](20230926-3)고창역사교육관 [소개] [탐방기] 이날 아침 정읍시에 있는 황토현전적지와 전봉준선생고택(정읍전봉준유적)에 들렀다가 선운사로 향하는데 전봉준의 생가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여 이곳도 들러보았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관군들이 불태워 터만 덩그렇게 남아 있지만 그래도 유적지 임에는 틀림이 없다. 2023. 11. 8.
전봉준 선생 고택[정읍 전봉준 유적, 전북 정읍시 이평면 조소1길 20/장내리 458-1](20230926-2)전봉준 장군 단소 [소개] 장내리 조소마을 큰 길에서도 제법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2년 여 동안 전 국토를 뒤흔든 동학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전봉준의 생가를 만날 수 있다. 평범한 토담이 둘러진 초가집에서 마을 아이들에게 한학을 가르치는 훈장으로 조용하게 살아가던 전봉준은 동학운동 기간 동안 놀라운 지도력과 전략으로 조직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농민군을 통솔하여 큰 성과를 거둔다. 전주성까지 점령하였던 농민군은 이후 외세의 개입으로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패하고 전봉준은 삶을 마감하였지만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당당함과 논리는 농민군의 대단한 전과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이들의 혁명 운동이 당시의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조직적인 활동이었음을 증명했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당시 백성들의 마음은 전봉준을 아련한.. 2023. 11. 7.
대구불로동고분군[해안면고분, 입성동고분, 대구 동구 불로동 335](20231026) [소개] 금호강 유역에 접하고 있으며, 불로동에서 팔공산으로 가는 도로에서 경부고속도로와 만나는 지점의 동쪽 구릉에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총 214기의 대·소 고분들이 밀집되어 있는 이 곳은 1938년과 1963년 두 차례에 걸쳐 표본 발굴하여 조사한 결과, 내부구조는 냇돌 또는 깬돌로 사방 벽을 쌓고 큼직한 판석으로 뚜껑을 덮은 장방형의 수혈식 석곽으로 금동제의 장신구와 철제무기, 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불로동고분군은 대구 일대에 현존하는 고분들 중 외형적인 형태를 가장 잘 갖추고 있고 좁은 지역에 많은 고분들이 밀집해 있는 점 등에서 고대 사회의 일면을 볼 수 있고, 대구분지내에서 비슷한 권력집단이 내당동, 비산동, 불로동 등 곳곳에 할거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자료로 그 가치를 지.. 2023.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