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408 김광규 - 어린 게의 죽음 어린 게의 죽음 김광규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 한 마리 큰 개들이 새끼줄에 묶여 거품을 뿜으며 헛발질할 때 게장수의 구럭을 빠져나와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개펄에서 숨바꼭질하던 시절 바다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달려오는 군용 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 이 짧은 시는 울림이 있다. 존재의 비극이 절묘하게 묻어난다고 할까? 마지막 행이 빛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2024. 1. 27. 정호승 - 선암사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을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이 시는 전체적인 흐름이 좋고, 특히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고'라는 표현이 좋다. 2024. 1. 23. 정호승 -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정호승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해마다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여행". 창비. 2013. [감상] 자기를 낮추고, 또 낮은 곳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잘 풀어내고 있다. 다만 낙엽의 사전적인 정의는 이미 떨어진 잎, 혹은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키기 때문에 '낙엽이.. 2024. 1. 23. 안도현 - 익산고도리석불입상 안도현 - 익산고도리석불입상 내 애인은 바위 속에 누워 있었지 두 손 가슴에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지 누군가 정으로 바위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 들렸지 내 애인은 문을 밀고 바깥으로 걸어나왔지 바위 속은 환했지만 바깥은 어두웠지 내 애인은 옛날부터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 "북향". 문학동네. 2017. - 마지막 행이 시를 미궁으로 몰고 간다. 이 시는 이성복의 '남해금산'을 연상하게 한다. 2023. 12. 25. 이전 1 ··· 25 26 27 28 29 30 31 ··· 10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