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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

새해 이튿 날

by 길철현 2017. 1. 2.


한 해가 문을 닫고 또 한 해가 새 발걸음을 내디뎠다. 한 해의 마지막 날과 또 새로운 해의 첫째 날이 다른 하루의 변화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해가 바뀐다는 것은 정말로 인간이 만들어 낸 제도의 산물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이것은 하루가 아침에서 점심, 저녁, 밤으로 변화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계절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눈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런 점에서 해가 바뀐다는 것은 이 제도의 헤게모니를 누가 쥐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양력은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로마 시대에 제정된 것을 따르고 있다. 우리 고유의 책력은 음력이었는데, 1896년 을미개혁 때 현재의 양력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하지만 음력은 아직도 살아남아서 우리의 최대 명절인 설이나 추석은 음력 날짜로 정해진다. 나처럼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은 생일도 음력으로 쇠기 때문에 양력으로 볼 때는 해마다 다르다.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이중과세'를 하지 말자고 해서 설을 못 쇠게 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우리 고유의 것이 서양의 제도 앞에서 상실될 수도 있었던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음력이라는 것이 아무런 중요성을 지니지 못하는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한 해가 바뀌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광장이나 파티장에 서로 모여서 한 해가 가고 오는 것을 성대한 의식으로 치른다. 우리의 경우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한 해가 바뀌어도 쉬는 날도 하루에 지나지 않고(그것마저도 올해는 일요일이다) 대체로 한 달 정도 뒤에 음력 새해 첫 날이 큰 명절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반감된다. 이 때문에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들도 있다. 뉴스에서 병신년이 가고 정유년이 왔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도 병신년이고 정유년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이 병신년에 우리의 18대 대통령이 18년 간의 정치 생활을 탄핵으로 마감할 위기에 봉착했다). 그래서 해를 맞이하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했는데, 한 달 뒤에 또 "새해 목 많이 받으세요"라고 해야 한다.


두 개의 제도를 따르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고 뾰족한 해결책도 없다. 복 많이 받으라는 좋은 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어디 덧날 것도 없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그런 것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올 한 해는 또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세상은 더욱 더 극악스럽고 흉포해 질 것인지, 중동 사태는 또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 상황은?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텅 빈 호주머니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가 개인적인 초미의 관심사이다. 혼자 몸이라 어떻게 어떻게 호구지책은 하고 왔는데, 욕망이 비대해 지는 것과 함께 적극적인 경제 활동이 필수불가결인 시점이 된 듯하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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