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기 경 로마 제국 시기의 위대한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이라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시간"의 문제를 상당히 자세하게 다루었다. 신이 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신은 이 우주를 창조하기 전에는 무엇을 했는가? 우주를 창조하기 전에도 시간이 있었다면 신은 시간 내의 존재인가? 이런 문제에서부터,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현재 또한 궁극적으로 체험과 동시에 사라지는 그런 것이므로 없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시간이라는 것은 하나의 관념이지 실재는 아니지 않는가? (읽은 지 오래된 책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요약과 해설을 참조하면서 드는 생각들을 적어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런 말을 하기까지 했다. "만일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묻는 자가 있어서 그에게 시간을 설명하려고 하면 나는 모릅니다."
시간에 대한 또 다른 흥미로운 책은 과학 쪽에서 나온 이제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이다. 빅뱅 이론, 블랙홀 이론, 웜홀 이론 등을 소개하면서 시간 여행의 가능성까지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그러나 당시 나에게는 굉장히 난해한 책이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사정은 나와 비슷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과학 서적이라고 해서, 호킹의 대중적 인기와 함께 베스트 셀러가 되긴 했지만 완독률은 1퍼센트도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인간은 상징 체계 내에서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 시간도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이리라 - 상징 체계라는 것이 계속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에 내 짧은 생각에 우리가 굳건하게 발을 디딜 토대라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시간'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살 수는 없다(다시 말해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의 상징 체계를 스펙트럼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래도 그 토대가 비교적 단단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내 정신은 아직도 청년이지만 내 육체는 이미 중년을 넘어 장년을 향하고 있다. 운동으로 신체적 노화를 조금은 늦추었다고 자부해 보아도 시력, 청력, 순발력 등은 젋은 나와 비교해 볼 때 많이 안 좋아졌다. 가장 구체적으로 나와 동년배인 사람들은 대부분 책을 읽는데 장애를 느끼거나, 아예 책을 읽지 않는다. 이쯤 되면 신체의 노화는 상징 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실체적인 어떤 것이라고 봐야 할 듯도 하다.
하지만 이야기에 많이 나오는 "회춘의 샘"을 발견 혹은 발명할 수 있다면 노화란 인간의 삶에서 없어질 것인가? 생각이 이 쪽에서 저 쪽으로 갈피를 잡지 않고 왔다갔다 한다. 시간의 틀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 가운데에도 시간의 노예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면서도 - 생각 또는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