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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정신분석

이드(Id, 독어로 Es 혹은 무의식)에 대한 홍준기의 설명과 개인적 보충

by 길철현 2017. 1. 17.


무의식을 지칭하는 일종의 부정 대명사인 '그것 Es' (주 - 독일어의 'es'는 정체가 확실하지 않은 대상을 가리키는 부정대명사로서 Es regnet(비가 온다)의 경우에서처럼 비인칭 주어로도 종종 사용된다. 무의식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정착된 'Id(이드)라는 용어는 독일어 Es(그것)의 영어(라틴어) 번역이다. / 보충 - 그냥 쉽게 영어 It와 유사하다고 하면 될 것이다. 프로이트가 처음부터 Es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고 초기에는 인간의 정신을 의식적인 부분(전의식을 포함해서)과 무의식으로 나누어 설명하다가 후기에 들어와 인간의 정신을 자아(Ego), 초자아(Superego), 이드(Id)라는 세 개의 구조적 부분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에 의식,무의식이라는 개념도 동시에 사용했기 때문에 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초기에 말한 무의식, 그 중에서도 시스템(체계)으로서의 무의식은 후기의 이드와 거의 일치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프로이트 사상의 전개를 조지프 샌들러 등이 지은 [프로이트의 마음의 모델](Freud's Models of the Mind)에 따른다면 크게 세 개의 시기--1기(--1897) 정동 외상 이론, 2기(1897--1923) 지정학적 이론, 3기(1923-1940) 구조적 이론, 이것을 제2지정학적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로 나눌 수 있는데, 두 번째 시기까지 그는 무의식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사용했다. 그는 무의식을 '의식과의 관계'에 따라 서술적, '힘의 작용 방향에 따라' 역동적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또 '특정 규칙에 의해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말하기도 했다(작은 따옴표 안의 말은 최병건의 정리를 따름). 이중에서도 서술적 차원과 시스템적인 차원이 특히 중요성을 띠고, 언제나 일관성 있게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서술적 차원의 무의식은 형용사적인 소문자로, 시스템적 차원에서 사용할 때는 정관사와 대문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다소 쉽게 구분이 된다. 구조적 이론을 도입한 후기, 그러니까 세 번째 시기에 사용하는 무의식이라는 용어는 그러니까 서술적인 차원에서 사용된다고 보면 이해가 쉬우리라.)이란 용어는 이미 프로이트 이전에도 여러 사상가들, 예를 들면 리히텐베르크, 니체, 그리고 바스치안에 의해 이미 사용된 바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프로이트는 이 용어를 그로덱 G. Groddeck에게서 차용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그로덱 자신은 이를 니체에게서 빌려왔다고 말했다.



이 사상가들이 '그것'을 중시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이들은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자아(나 Ich /보충 - 자아(영어로는 Ego)로 알려진 이 용어도 프로이트의 저작에서는 그 의미가 시기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크게 보아 초기에 자기(Self) 정도의 개념이었던 이 용어는 구조적 이론을 도입한 후기에 가서는 인간 정신 구조의 한 부분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를 세계의 중심으로 승격시킨, 데카르트에게서 정점에 도달한 '자아' 또는 '의식'의 철학에 대항하여 '나' 대신 '그것'을 주체의 자리에 집어넣고, '그것'을 '비(非)자아' 또는 '무의식'의 철학의 수립을 위한 전략적 표제어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적 자아의 흔들리지 않는 동일성 Identität에 대해 비판의 포문을 연 사람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코기토(보충 : 생각하는 존재로의 주체 정도의 뜻. 데카르트는 자신의 철학의 제1원리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정의를 내렸는데, 라캉은 이 말을 비틀어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I think where I am not, therefore I am where I do not think)라고 했다)의 철학이 수립된 지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데이비드 흄 David Hume은 데카르트의 자아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의식철학 또는 선험철학(보충 : 칸트는 인간은 감성을 통해 사물과 직접적으로 접촉해서 감각적인 자료를 얻는데 이것이 인식의 내용을 이루고, 이 감성에 의해서 얻어진 감각자료를 개념화하는 것은 오성의 힘이며, 이것이 인식의 형식이라고 보았다. 칸트는 인식 내용이 아니라 그 형식을 보려고 하는데, 이 선험적인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선험철학이다(이정우 인터넷 설명). 칸트는 우리가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이미 그렇게 인식하도록 조건 지워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황철중의 다음 말도 이 선험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인식론에서의 문제의 관건은 대상이 우리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력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의 주관의 능력이 대상의 인식을 선험적으로 조건지우는 형식에 있다고 칸트는 제안한다. 대상으로부터 우리 주관의 인식 능력으로 탐구의 방향을 전환시킨 것이 바로 인식론에서 칸트가 감행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이다.' ([인식론] 99))을 집대성한 칸트조차 실체로서의 의식또는 자아 개념은 배척했다. 그리하여 의식철학 또는 자아심리학(보충 : 프로이트의 구조적 이론을 바탕으로 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자아'[당연히 이 때의 자아는 정신 구조의 일부분이다]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특히 미국에서 강세를 띠고 있는 정신분석의 일파. '이드가 있던 곳에 자아가 있기를'(Wo es war, soll ich werden/ Where id was, there shall ego be)이라는 문구가 이 학파의 생각을 잘 대변한다*)의 비판가들에게 있어서 생각하는 주체는 '나' 대신 '그것'으로 대체된 것이다. 요컨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하만 Hamman으로부터 시작해 쇼펜하우어와 니체에게서 정점에 달한, 데카르트적 의식철학과 대항해 싸웠던 '의지형이상학 Willensmetaphysik' '무의식 철학' 또는 '비자아 심리학'의 전통 속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준기. [라캉과 현대 철학] 38-39. 문학과 지성사) 


(덧붙임 : 이분법은 언제나 단순화의 오류를 낳지만 그 대신에 명료성을 선사한다. 서양 철학이 의식, 혹은 이성을 강조하는 그러한 전통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면, 쇼펜하우어를 필두로 해서 - 그 전에도 분명 누군가가 있었겠지만,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닐 것이다 - 무의식 혹은 비이성에 더욱 방점을 두는 철학이 또 하나의 전통을 수립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동시에, 인간 정신에 있어서 무의식이 갖는 중요성과 의미를 밝혀보려 했다. 프로이트는 철학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정신분석이 철학을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철학적 전통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으리라.) 

 

* 라캉은 자아심리학을 비판하면서 프로이트의 이 구절을 달리 해석했다. 김석의 다음 설명을 참조할 것.


라캉은 "Wo es war, soll Ich werden"을 "자아가 이드를 대신해야 한다" 식으로 해석하지 않고, "진정한 주체인 내가 그것이 있던 곳에 도달해야만 한다"로 해석한다.


이 주체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실제처럼 언급하는 이드나 욕망의 동력인 리비도 에너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부성 은유가 이루어질 때 시니피앙에 의해 거세되어 영원히 상실된 물(Ding)의 형상으로만 나타나는 존재를 말한다.

(김석 -[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살림. 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