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논문을 쓸 수 있을까? 잘 쓰는 것은 고사하고, 끝 마칠 수나 있을까? 그 동안의 달팽이 같은, 나무늘보 같은 진척 상황을 보면 커다란 의문부호가 내 앞에 놓이는 것도 당연하다.
더군다나 탁구 코치 일을 하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탁구장에서 보내야 하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의문부호는 돋보기라도 갖다된 듯 확대된다. (매일 가야할 곳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생각을 단순하게 해준다. 그리고 탁구장에서도 레슨이 없는 시간에는 내 공부를 할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2외국어 시험을 위해 독어 공부도 해야 하는데, 며칠 하다가 또 중단된 상태다.
과연 논문을 마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콘래드의 작품 전체를 읽는 일차적인 작업이 어제 끝났다. 장편 13편, 중단편 소설집 6편, 일종의 자서전 2권, 포드 매독스 포드와 합작한 작품 중 한 편. 여러 번 읽은 작품(Heart of Darkness)도 있고, 두 번 읽은 작품(Almayer's Folly, Outcast in the Island, Lord Jim), 그리고 한글 번역본으로 읽은 작품(Under Western Eyes - 서구인의 눈으로)도 있다. 두툼한 칼 프레드릭의 전기를 비롯, 전기도 3권 정도 읽었고, 국내 연구서도 3권 정도 읽었다.
중간의 사정이야 어쨌든 간에 여기까지 오는데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중간에 종합 시험 때문에 시간을 꽤 투자해야 했다). 이제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은 3년이다. 3년 안에는 글을 써내야 한다. 그런데, 정신분석과 연결지어서 쓰겠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없다. 지금부터 계속 공구해야 할 문제이고, 그 동안 꾸준히 해왔던 정신분석 공부도 지속해 나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분석의 한계, 또 정신분석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한 칼날도 벼루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공부를 하는데 제일 힘든 것은 눈의 피로도이다. 글자가 또렷이 보이지 않고, 눈이 쉽게 피로하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흔히 그 작은 글자가 보이냐고 말한다. (젊었을 때에는 이런 생각을 못했다. 아니 20년 전쯤에 [기네스북]을 번역할 때, 작은 글자를 오래보다 보니까 눈이 굉장히 피로했었는데, 이제는 책을 보기 전부터 피로감이 밀려든다
논문을 쓴다는 것 이전에 던져야 할 질문은 왜 논문을 쓰느냐? 일 것이다. 이 나이에 국내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해도 별 뾰족한 수도 없는데.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사느냐? 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살아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듯이.
어디로 가는지는 실제로 가보지 않고는 알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물론 무작정 갈수만도 없는 노릇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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