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고요한 월요일 오전이다. 컴퓨터 돌아가는 소리, 시계가 째각이는 소리, 윗층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이런 몇 가지 소리들을 제외하고는 정말 절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고요하다. 그만큼 마음도 평안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른 사람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직장인들이라면 분주하게 한 주일을 새로이 시작했을 것이고, 주부라면 집안 일을 마치고 좀 휴식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방학이라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까? 아니면 학업에 매진? 어떤 범죄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삶의 의미를 놓친 채 헤매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나도 조금 뒤면 일하러 나가야 한다.
머릿속이 복잡한 대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이 시간, 이 여유가 참 좋다. 그냥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을 읽어줄 - 얼마 되지는 않지만 -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염두에 두면서 글을 쓴다는 것. 타인, 타자. 그들은 나의 글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을까? 아니 어떤 생각을 할까?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녹록치 않은 일이다. 이분법적으로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쾌락과 고통이 상존한다. 쾌락이 넘칠 때는 삶은 더없이 좋은 것이요. 고통의 바다에서 허둥거릴 때는 삶이 바로 지옥이다. 그리고, 죽음은 언제나 우리 등 뒤에서 피묻은 낫을 들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비관주의자들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상이라고들 말하지만 이미 태어난 시점에서 그 말은 바둑이나 장기에서 두어 버린 한 수, 혹은 화투에서 낙장불입의 원칙에 위배되는, 다시 말해 의미를 잃은 말이다. 누구나 최선의 삶을 살기를 원할 것이지만, 문제는 무엇이 최선인지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리라.
물론 우리가 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혹은 종교적 지도자들은 저마다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 말을 따르면서 삶이라는 여정을 대체로 순조롭게 항해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거나, 좀 부정적인 각도에서 본다면 비판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삶의 지표는 구체적인 상황 앞에서 언제나 점검을 받고 수정되어야 하겠지만, 아주 뚜렷하다고 하지는 않을 지라도 그것 없이 임기응변 식으로 산다는 것도 이상하기는 하다.)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환상이 없지 않은 가운데, 현대인은 대체로 크게 보았을 때 어떤 국가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국가의 요구에 어느 정도 맞춰 살아간다고 할 지라도(그 반대급부로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어느 정도 보장해준다), 개인적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항존한다. 이 문제의 극단에는 그 유명한 햄릿의 독백이 있다.
윗층에서 갑자기 못 박는 소리가 나면서 고요가 부서진다. 일하러 나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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