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120824
이 글은 무엇보다도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엔 낯설었던 어떤 곳이 그 원인은 잘 알 수 없으나 자주 접하는 사이에 친밀한 것으로, 나아가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가 되고 만 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재인폭포를 만나면서부터 폭포에 대한 사랑을 키워왔고, 그 한 줌 망설임 없는,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추락 속에서, 그리고 그 추락이 빚어내는 울음 속에서 내 마음 깊은 곳의 손쓰기 힘든 어쩌면 작지만 깊은 생채기를 거듭 확인하고 또 위안을 받았다. 사실 ‘에필로그’ 이전의 글들은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최소한의 변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2004년 정도에 완성한 것인데, 이번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덧붙여 사람들과의 소통을 시도해 본다. 재인폭포를 알게 된 1997년부터 ‘시작 노트에서’를 쓴 2000년까지는 앞으로 내 삶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모르겠으나 큰 사건들이 많았던 격동기였다. 나는 폭포 앞에서 많은 속울음을 울었고, 또 우리의 이 삶이라는 것을 안간힘을 쓰며 직면해 보려 했다. 달리 생각한다면 폭포가 무슨 말을 담고 있을까? 다만 내 마음의 답답함이 폭포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 한 것이겠지. 그렇다면 이 글은 내 삶의 아픔을 재인폭포라는 장소에 빗대 단편적으로 기록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인폭포는 이제 연천 댐(이 댐의 올바른 명칭은 한탄강 댐이다. 왜 이런 기억의 오류가 생겼는지는 명확히 이해할 수 없지만 ‘되찾은 재인폭포’에서 이와 관련해 몇 마디 써보았다)의 건설로 접근이 힘든 장소가 되어버렸고, 또 언젠가는 수몰될 그런 운명에 놓여있다. 바꿔 말하자면 다가갈 수 없는 재인폭포를 내 마음 깊은 곳으로 옮겨 오면서 현실적으로는 떠나보내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 글은 또 한편으로는 이별로 나아가는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간 마음의 소용돌이는 힘겨우면서도 또 아름다운 무늬를 자아내는 것일까? 누가 그걸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냥 울고 웃고 또 노래하는 것 외에.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재인폭포와 인연을 맺어온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재인이라는 이름에서 단 한 번도 의식선상에 떠오르지 않았던 죄인이라는 단어가 이 글을 내보내는 이 시점에 문득 떠오른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그것에 대한 답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더 흥미로울 듯하다.
1. 인연의 시작, 970101
고등학교 동창인 C와 K가 신년을 맞아 나들이에 나섰다. 서른을 훌쩍 넘긴 두 사내가 이렇게 같이 나들이를 나서게 된 것은 결혼한 지 육 개월도 안 돼 파경에 이르게 된 C가, 아직 미혼인 데다가 혼자 사는 K의 아파트를 임시거처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새해 첫날이라고는 하지만 ‘설날’이라는 명절이 한 달 뒤에 떡 버티고 서있어서, 사실 그냥 한가한 휴일에 지나지 않는 날.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차를 몰고 나서게 된 것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뚜렷한 목적지도 없었다. 서울 부근을 드라이브 하다가 적당한 곳에서 식사나 하고 들어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날의 날씨는 하늘이 하루 동안에 자신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기로 작정이라도 했는지 예측불허 변화무쌍 그 자체였다.
출발할 무렵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동두천을 지나 소요산에 당도할 즈음에는 우박으로 변하더니, 거기다 돌풍마저 불어댔다. 그러다 점심 식사를 하려고 전곡에 차를 세웠을 때에는 햇빛이 쨍쨍 나더니만, 포천으로 해서 서울로 들어올 무렵에는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차가 못 다닐 정도나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봉고차 한 대가 과속하다가 그랬는지 어쨌는지 길가에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내친걸음이라고 했던가? 이날 두 사람은 3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북으로 내달렸다. 전곡을 얼마쯤 지났을까? 재인폭포를 알리는 안내판이 나왔다.
“한 번 가볼까?”
“겨울에 뭐 볼 것 있겠어. 그냥 가지 뭐.”
“그런데, 폭포 이름이 왜 재인일까? 재인이 무슨 뜻이지?”
“타잔이 애인 제인하고 놀던 폭포였던 모양이지.”
“지랄하고 있네.”
그때까지 4차선이던 도로는 재인폭포와 연천을 지나고 나자 2차선으로 좁아졌다. 두 사람은 대광리, 신탄리를 지나 북으로 북으로 내처 달렸다.
“이쯤 왔으면 휴전선 부근까지 온 것 같은데.”
K가 이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잘 닦여진 포장도로는 끝나고 말았다. 아직 포장이 안 된 곳도 조만간 포장을 할 모양인지 공사가 진행 중인 듯 했다. 하지만 작업 중인 인부는 보이지 않았다. 더 나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산지 일 년 조금밖에 넘지 않은 새 차를 험하게 굴리고 싶지 않았던 K는 차를 돌리고 말았다.
2. 첫 만남, 970223
W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K니?”
두 사람은 K의 중학교 동창이자, W의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인 J를 매개로 해서 알게 된 사이였다. 그런데 K는 몇 달 전에 자신의 집 근처에서 우연히 W를 다시 보게 되었던 것이다. ‘W가 어떻게 여기에?’ 순간적으로 K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K와 눈이 마주친 W는 다소 놀라면서도 동향의 친구를 만난 반가움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발령이 나 K의 아파트 근처에 있는 아파트로 얼마 전에 이사를 왔는데, 그러지 않아도 한 번 전화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뜻밖의 해우는 그날 밤 늦은 시각까지 술자리로 이어졌다.
이날 아침 이른 시각에 W가 전화를 한 것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집에 혼자 있으니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마음이 괴로우니 와서 위로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고 올라와 이틀 출근을 하고 맞은 휴일. 아내와 갓난아이는 내려간 김에 좀 더 있다가 올라오기로 한 모양이었다. 혼자서 죽음을 대면하기가 힘들었던 것일까?
“연락을 주지 그랬어,”하고 K는 W를 나무랐지만,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가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W는 뜬금없이 북쪽으로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달리게 된 길이, 지난 1월 1일에 K와 C가 달린 바로 그 길이었다. 의정부를 지나 동두천, 전곡, 연천, 북으로 북으로 대광리, 신탄리, 그러나 신탄리를 지나자 예의 비포장 도로였다. K는 어지간히 왔다는 생각에 이쯤에서 차를 돌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W가 의외로 강하게 나왔다.
“조금만 더 가보자.”
“아, 차 망가지는데.”
그렇다고 한들, 며칠 전에 아버님이 죽은 친구의 말을 거역할 수는 도무지 없는 노릇이었다. 덜컹덜컹 그렇게 몇 백 미터나 갔을까, 다행스럽게도 바리케이드가 두 사람의 통행을 막았다. 그 이북은 민통선 지역이라 출입증 없이는 들어갈 수가 없다고 보초를 서고 있던 상병이 말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재인폭포에 들렀다.
“뭐 특별히 볼 거 있겠어?”
“그래도 한 번 들어가 보자.”
K는 핸들을 좌로 꺾어 폭포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섰다. 아무리 차를 달려도 폭포가 나오지 않아서 두 사람은 혹시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 끝없는 길의 끝에서 드디어 표지판이 두 사람의 눈에 들어 왔다.
재인폭포와 폭포에 얽힌 전설을 적어 놓은 안내문을 대충 읽고 난 뒤 두 사람은 폭포로 이어지는 길로 내려섰다. 왼편에 요금을 받는 곳이 있었으나,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시멘트 계단을 한참 밟아 내려가자 말라버린 개천 바닥이 나왔다. 개천의 양쪽에는 깎아지른 벼랑이 높다랗게 서있었다. 거기서 개천 옆에 난 좁은 길을 따라 또 한 삼백 미터 정도를 걸어올라 갔을까? 그제서야 폭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런데 폭포는 말라 있었다. 죽은 폭포. 다만 폭포의 물이 떨어져 내리던 곳 아래에는 떨어져 내리던 물이 얼어붙어 석회암 동굴의 거대한 석순 같이 큰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야, 저 얼음 덩어리를 깨버릴까.”
장난기가 발동한 K가 큼직한 돌을 하나 들어 얼음 덩어리를 향해 던졌다. 얼음에 부딪힌 돌은 힘없이 튕겨 나오고 말았다.
“생각보다 단단한데.”
“예전에 단양에 있는 화암동굴에 갔을 땐가 그런데, 할머니 두 분이, 조명 때문인지 흰빛이 도는 커다란 석순을 보고는, 한 분이 ‘이거 얼음 덩거리 아이가’ 그러자, 옆에 있던 분도 ‘맞네, 맞아, 세상에’라고 맞장구를 쳐서 내가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니깐.”
물도 떨어져 내리지 않는 이 폭포가 K에게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킨 것은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벼랑의 특이한 형태 때문이었다. 벼랑의 중간 아래 부분은 정 같은 것으로 쪼아 놓기라도 한 듯한 작은 사각 기둥들이 무수히 매달려 있는 그런 형상이었다.
“벼랑이 정말 특이하네. 이런 형태는 딴 데에서는 못 본 것 같은데.”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이쪽 연천 전곡이 좀 특수한 지형이라고 하는 말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리고 소도 이 정도면 깊지는 않아도 상당히 큰 편인데. 폭포가 떨어질 때 한 번 와봐야겠는 걸.”
3. 재인폭포 안내문
재인폭포는 주위 경관이 아름답고 물이 맑고 깊으며, 한탄강 상류에 인접한 관광지로서 연천이 자랑하는 명승지의 하나이다.
이 폭포는 이 고장의 줄타기에 뛰어났던 재인의 한과 그 부인의 절개에 관한 전설이 깃든 곳으로, 그 높이는 18.5m나 되며, 밑에는 넓고 깊은 연못을 이루어 피서지로서 특히 이름 높다.
폭포의 주위에는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가을 단풍 또한 매우 아름답다.
옛날 고을 원님이 절색의 미모를 가진 재인의 아내를 탐한 나머지, 재인으로 하여금 이 폭포 위에서 줄을 타는 재주를 보이게 한 뒤 줄을 끊어 죽였다. 그리고 재인의 아내에게 수청을 들게 했으나, 이때 그 아내는 원님의 코를 물어뜯은 뒤 혀를 깨물고 마침내 자결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재인의 한이 서린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 마을에 절개 굳은 코문이(재인의 부인)가 살았다 하여 ‘코문리’로 부르게 되었고, 후일 어음의 변화로 ‘고문리(古文里)’라 다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4. 울음소리, 970517
K가 탄 자가용은 폭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총을 든 군인 두 명에게 제지를 당했다. 무슨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했나하고 순간적으로 K의 가슴이 덜커덩 내려앉았다.
“왜 그러십니까?”
“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폭포 보러 왔는데요.”
“아, 재인폭포는 열두 시가 돼야 개방이 됩니다.”
군인의 말에 길옆 철조망 상단부에 붙어 있는 안내판을 보니까, 재인폭포가 있는 곳은 군 작전 지역이라, 7월과 8월에만 전면 개방을 하고, 그 밖에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그리고 국경일에만 개방을 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일요일이라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들어갔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자가용의 계기판에 달린 시계는 열한 시 십사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냥 되돌아 나갈까? 폭포 하나 보려고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K가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검은 색 고급 자가용 한 대가 K의 자가용 뒤에 섰다. 운전자가 내리더니만 K쪽으로 오다가, 길옆 철조망 상단부에 붙어 있는 안내판을 봤는지 그쪽으로 걸어갔다. 안내판의 내용을 읽고는 다시 자기 차로 돌아가는가 했더니 차를 뒤로 좀 뺀 다음에 아예 돌려서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나도 그냥 되돌아 나갈까? 하지만 그 이유를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었지만 주말을 맞아 서울을 떠날 때부터 목적지는 이곳 재인폭포였다. 폭포가 보고 싶었고, 폭포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고, 달리 가야할 곳도 없었다.
테이프에서는 K가 지난 두 달 간 줄기차게 들어왔던 저니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티브 페리의 가늘고 높은 그래서 여성적이면서도 애잔한 목소리가 K를 달콤하게 녹여주던 ‘스틸 쉬 크라이즈(아직도 그녀는 울고 있네).’ 노래에 몸을 맡긴 채 약간은 멍한 상태로 있던 K는 누군가가 시키기라도 한 듯 불쑥 수첩을 꺼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삶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정말 지난한 일이다. 객관성이라는 것은 거리를 의미하는데, 우리는 삶 속에 있기 때문에, 삶과 그것을 보는 개인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의식은 이 삶에 끊임없이 질문의 화살을 쏘아대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의식(이 의식이라는 것은 언어와 거의 등가라고 할 수 있을 텐데)이라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또 삶이 일회적이라는 데 가닿은 의식은 이 삶에서 최상의 것을 꿈꾸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라는 허공에다 몸을 맡기고 부지런히 머리, 팔, 다리를 움직여 나가라는 법정의 말은 이러한 생각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로드 짐?에 나오는 철인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바다에 빠진 사람이 물 밖으로 나오려고 무턱대고 허둥대다가는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차라리 깊은 바다에 몸을 내어 맡기고 부지런히 손과 발을 저어나가면 깊은 바다가 사람을 뜨게 한다고 했던가? 그러나, 망망대해에 빠진 사람은 건져주는 사람이나 인근의 섬이 없다면 십중팔구 죽고 말지 않는가?
여기까지 적어 나간 K는 다음 장으로 넘겨 다음과 같이 재빠르게 써내려갔다.
S야!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너를 사랑하는 걸 멈출 수 있을까?
혹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적어 나간 K는 문득 글을 중단하고 지난 한 달 내내 곱씹어온 생각들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되짚어 나가 보았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K에게 닥쳐온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보기에는 턱 없이 짧았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S가 잠시 잠깐 K에게 한 눈을 팔았다가,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얼른 K와의 관계를 접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니 좀 더 냉정하게 S의 입장에서 보자면 K가 자신을 좋아하길래 그 마음을 그대로 접기도 그래서 잠시 두고 보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솔직하게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셈이었다. 사정이 이렇다고 본다면, S가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털어 놓았을 때, 서른두 해나 이 세상에 두 다리를 붙이고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 또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아래인 S의 인생 선배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따끔하게 충고를 하거나, 아니면 보다 직접적으로 욕이라도 한 마디 해주거나,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처 입은 자아에 대한 보상으로 뺨이라도 한 차례 때려 주는 것으로 상황을 끝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K는 젖 조르는 아기마냥 엉엉 울며 유치하게 S에게 매어 달렸고, S가 오히려 누나가 되어 K를 달래고 얼러야만 했다. 왜 그랬을까? 왜 S가 K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했을 때 K는 이제 이 세상이 끝났다는 생각을 했을까? 이십 대에 이미 겪었어야 할 통과의례를 늦은 나이에 그것도 아주 미숙하게 치르고 있는 것인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밀려오던 삶의 공허감, 무목적성, 무의미성 이런 것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는데--물론 이것은 삶이라는 복잡다기한 총체를 일면적으로 단정 짓는 행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삶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이나 인상이 그랬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는데--또, 거기다가 대학 시절 내내 혼자 좋아했던 후배에게 어쭙잖은 마음을 고백했을 때, 그 후배가 “사귀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되받았을 때, 하우스만의 시처럼 주지 말아야 할 마음을 주어버린 뒤, 땅바닥에 버려진 마음 때문에, 기나긴 눈물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 그래도 그 때는 이십 대였으니까. 그 때로부터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학원 후배인 S에게로 K의 마음이 쏠릴 때, K는 이전의 상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서 S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는데, 결과는 역시 7년 전의 되풀이였다. 아니 그때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은 것은 이번에는 K가 자신이 사랑할 수 있고, 또 자신을 사랑해 줄 여자를 발견했다는 확신을 막 갖게 된 그 순간에, 그러니까 조심조심, 그러면서도 크게 크게 불어 올리던 풍선을, 아니 그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마음을, 바늘인지, 칼인지, 무엇인지는 몰라도, 무심하게, 아무 생각 없이 터뜨려 버린 그런 격이었다. 터져서 찢어진 채 형편없이 쪼그라든 풍선, 그 풍선 같은 마음. 견딜 수가 없어서, S에게 매어달리고, 젖 조르는 아기 마냥 엉엉 울고. 마침내는 죽어버리고 말아야겠다는 극언까지 내뱉고. 그러다가, 닷새간이나 단식을 하면서 어떻게든 그 상황을 이해해 보려 했던 것. 전화도 끊어 버리고, 물만 먹으며, 누워서 보낸 그 긴 시간. 정체된 듯한 시간. 그때 재차 확인되던 자신의 어리석음, 혹은 자신과 타인과의 넘어설 수 없는 그 거리감. 자신의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대척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 그러면서 몇 번이나 접었던 작가에의 꿈이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단식을 끝내고 E마트로 차를 몰고 갈 때 마구 밀려오던 현기증. 세상은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빙글빙글 돌고 있구나. 그리고, 코끝을 날카롭게 유린하던 각종 음식 냄새. 포경 수술을 받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하고. 그러면서 부조리하게 고양되던 정신. 언제나 타인에게 말을 하는 것이 힘든 일이었는데, 말이 애를 쓰지 않는데도 술술 나오던 K로서는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경지. 과거의 내가 죽고 새로운 내가 태어난 것일까? 이성에 억눌려 지내던 감정이 전면으로 등장하여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울게 된 것인가? 그래서, S에게 내팽겨쳐진 상태이면서도, 정다운 오누이처럼 거의 매일 밤 전화로 S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눈 불가사의한 며칠. 그러면서도, S와의 관계는 그 상태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걸 거듭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비애감. 삶의 이해할 수 없는 두께. 자신이 든 카드가 무엇이든 간에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 과연 시간이, 시간이, 답을 줄 것인가?
정각 열두 시가 되기 오 분쯤 전에 초병들이 차를 통과시켜 주었다. K는 차를 좀 더 몰고 들어가서 재인폭포로 내려가는 입구에 만들어 놓은 너른 주차장에다 차를 세웠다. 매표구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입장료 천 원에다, 주차료 천 원까지 따로 내어야 했다. 이런 벽촌에서도 주차료를 받는다는 것이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으나, K는 아무 말 없이 돈을 내밀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좌우로 방향을 트는 시멘트 계단은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더욱 길어 보였다. 계단을 다 내려온 K는 철제 다리를 건너 개천 저쪽 편에 있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개울물이 뭐라고 조잘거리며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한 번 와봤기 때문일까? K는 능숙한 발걸음으로 폭포 쪽으로 나아갔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말라 죽어 있던 폭포가 다소 기운차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벼랑은 지난번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특이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계절이 계절인지라 절벽의 윗부분에는 아카시아 나무와 그 밖의 이름 모를 나무의 초록 이파리들이 뒤덮고 있었고, 절벽 곳곳에 자리한 담쟁이들이 절벽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텅 빈 웅덩이였던 용소에도 푸르다기보다는 초록빛에 가까운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런데, 용소를 지난 물은 지하로 스며드는지 용소와 그 아래 개천 사이는 크고 작은 바위와 자갈들 뿐, 물길은 끊어진 상태였다. K는 폭포 정면으로 나아가서 작은 식탁만한 크기의 바위에 올라앉고서는 폭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벼랑 끝에 선 물줄기는 곧바로 수직 낙하하며, 희게 부서지며, 용소의 물에 부딪히며, 허연 거품을 내뱉었다. 일회성 추락의 무수한 반복. 눈은 폭포를 바라보면서도 생각은 또 제 맘대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왜 여기까지 왔지? 집에 마음을 붙이고 있기가 힘이 들어서? 시간이 난 김에? 불쌍한 재인이? 불쌍한 나? 내 바로 뒤에 있던 차는 돌아서 어디로 갔을까? 얼마를 그렇게 폭포를 바라다보았을까? 폭포의 아래쪽부터 서서히 시선을 위로 옮겨가던 K는 물줄기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는 부분이 자기 쪽으로 넘어져 오는 느낌에 화들짝 놀랐다. 드디어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구나. 이렇게 끝날 것을. 이렇게 끝날 것을. 그러나 K가 받은 느낌은 떨어지는 물줄기를 오랫동안 바라본 데에 따른 착시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을 오래보고 있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까지 움직이게 되고 마는가? 그럼에도 K는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는 이 현상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다시 폭포를 찬찬히 아래서부터 위로, 될 수 있는 대로 시간을 끌며 시선을 옮겨 보았다. 이번에도 역시 절벽이 자기 쪽으로 넘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폭포 옆의 절벽도 거대한 용의 몸뚱어리인 듯 마찬가지로 꿈틀꿈틀 대었다. K는 수첩을 꺼내 폭포의 모습을 간략하게 스케치하고는 몇 마디 적어보았다.
-폭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까 폭포 상단부의 절벽이 내 쪽으로 넘어지는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폭포 옆의 절벽들도 용의 몸뚱어리인 듯 꿈틀댄다.
-나한테 수십수백수천 번 이야기해야 할 것은 남은 남이라는 것이다. 타인은 타인이지 결코 내가 아니다. 그들과 나와의 거리를 명확히 인식할 때, 대화의 필요성, 필연성은 보다 자명해 진다.
-물이 떨어지는 저 광경, 저것을 어떻게 언어로 치환할 수 있을까? 하나의 흐름이던 물이, 흰 알갱이로 산산이 부서지다,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을.
5. 강의, 980516
자, 여러분 주목하세요. 어이, 거기 키 큰 남학생, 자꾸 옆의 여학생만 쳐다보지 말고 앞쪽의 폭포를 보세요. 그래, 자네 말이야, 자네. 자네, 폭포에 대한 정의를 한 번 내려 보게. 물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라고. 그렇지. 좀 더 덧붙이자면 계곡이나 혹은 강에서 물이 일정 정도 이상의 편차를 두고 수직으로 혹은 수직에 가깝게 흘러내리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여러분, 내 목소리 잘 들려요? 그래도 지금은 떨어지는 물의 양이 적은 편이라서 이 정도나마 의사소통이 가능하지요. 폭우가 한바탕 지나간 다음에 폭포가 온 힘으로 떨어질 때는 그 떨어지는 물소리 때문에 다른 소리는 하나도 안 들릴 정도가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시간이 되면 폭우가 한바탕 지난 다음에 폭포를 한 번 보러 가보세요. 이 재인폭포라도 좋고 아니면 다른 폭포라도 좋아요. 우리나라의 하천은 계절이나 강우량에 따라서 수량의 변동이 엄청나게 크잖아요. 며칠 전에도 말했듯이 하상계수가 상당히 높은 편이지요. 대부분 강이나 계곡의 상류에 위치한 폭포의 경우에는, 특히 수량의 변화가 극심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재인폭포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른 봄이나 늦가을 가뭄이 심할 때는 아예 말라버리기도 하고, 겨울에는 얼어붙어서 빙폭을 형성하지요. 어쨌거나 오늘 우리가 폭포의 진면목을 볼 수는 없지만, 이 정도 수량이면 폭포에 대해서 강의를 하기에는 적당하다고 해야겠지요.
여러분, 폭포가 영어로 뭔지는 다 알지요. 워러폴. 맞아요. 영어는 역시 혀를 잔뜩 꼬부려야 제 맛이 나는 언어에요. 줄여서 폴이라고 하기도 하지요. 그러면, 폭포를 한자로는 어떻게 쓰는지 아는가요? 모두 잠잠하군요. 칠판이 없으니까 쓸 수는 없고, 폭자는 폭포를 가리키는 폭자인데, 이 폭자를 살펴보면 물수 변에 사나울 포자가 합쳐진 것이지요. 그러니까 한자를 풀어보면 폭자는 사나운 물이라는 뜻이 되는 겁니다. 포자는 여러분, 무슨 포자일까요.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베 포자를 씁니다. 떨어지는 물이 옛날 중국 사람들의 눈에는 베, 그러니까 흰 옷감을 길게 늘어뜨려 놓은 것 같다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에요. 그럴 듯하지 않은가요? 언어를 상당히 비유적으로 사용한 예라고 할 수 있지요. 폭포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그러니까, 베를 길게 늘어뜨려 놓은 것 같은 사나운 물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잠시 영어 공부를 좀 더 해보기로 하지요. 일반적으로 폭포를 가리킬 때 쓰는 영어 용어가 워터폴, 줄여서 폴이라고 한다고 했는데, 누구 혹시 다른 말 들어본 사람 있나요? 자, 지금부터는 메모를 하세요. 우선 캐스케이드, 스펠링은 C-A-S-C-A-D-E, 이것은 경사가 완만해서 물이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경우를 가리키지요. 그 다음 래피드, R-A-P-I-D, 래피드는 우리말의 급류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요. 캐스케이드보다 경사가 더 완만한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캐터랙트, C-A-T-A-R-A-C-T, 이 말은 규모가 큰 폭포를 가리킬 때만 쓰지요. 이 캐터랙트라는 단어에는 다른 뜻도 있는데 혹 아는 학생 있나요? 아무도 모르나요, 안과 질환 중에 흔히 볼 수 있는 백내장을 영어로 캐터랙트라고 합니다. 눈동자가 폭포가 떨어져 내리는 듯 희뿌옇게 변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데.
여러분, 이렇게 폭포를 보고 있으면 무엇이 또 눈에 들어옵니까? 물론, 이 재인폭포는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이 정으로 쫀 듯한 특이한 형태이긴 하지요. 그러나, 폭포하면 또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용소가 아니겠어요. 여러분에게 용소라는 말은 낯설겠지만, 폭포가 떨어지는 곳에는 대부분 물웅덩이가 생기지 않습니까. 그걸 용소라고 하지요. 이 용소를 폭호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이 재인폭포의 경우는, 여러분이 보다시피, 이 용소가 상당히 크게 형성되어 있어요. 깊이는 어느 정도일 것 같아요? 누가 한 번 직접 들어가서 재어 볼까요? 농담이고. 가장 깊은 곳이, 2미터가 좀 넘을 것 같아요. 재인폭포의 특징은 용소가 상당히 넓은 대신에 깊이는 상대적으로 덜 깊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 폭포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경우에는, 폭포의 높이보다도 그 밑에 형성된 호의 깊이가 더 깊다고 합니다. 물론 직접 들어가서 재어본 것은 아니니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서도요. 하지만, 폭포의 높이가 너무 높아서 떨어지는 동안에 대부분의 물이 흩날려 버리는 경우에는 용소가 발달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설악산에 가면 우리나라 삼대 폭포 중의 하나인, 우리나라 삼대 폭포로는 대체로 금강산의 구룡폭포, 묘향산의 박연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를 꼽는데, 그 중 남한에 있는, 설악산의 대승폭포의 경우는 그 높이가 88미터에 이르는데, 높이는 너무 높고 수량은 적어서, 용소가 별로 발달하지 않은 좋은 예가 되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절벽의 하단부를 보면, 침식이 많이 되어 움푹 들어가 있지요. 그것은, 소용돌이치는 물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 전문 용어로는 플럭킹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폭포는 어떻게 해서 생길까요? 폭포의 형성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조건은 암석 종류의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강물 혹은 계곡물이 암석 위를 흐르는 경우가 있겠지요. 그런데, 단단한 암석 위를 흐르다가 무른 암석을 통과하게 되면, 당연히 무른 암석이 더 빨리 침식이 되겠지요. 그 결과 두 암석이 만나는 부분에는 급경사의 경계가 생기게 되고, 따라서 폭포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예는 한탄강의 상류에 있는 직탕폭포에서 볼 수 있고, 또 나이아가라 폭포도 이렇게 형성된 예이지요. 이런 폭포는 폭포가 점점 더 상류 쪽으로 후퇴하여 시간이 흐르면 소멸되고 말지요. 두 번째로는, 본류와 지류가 만나는 곳에서 생기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본류의 수량이 많기 때문에 침식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그 침식의 차이로 인해 폭포가 생기지요. 이 밖에도 산사태나 용암 등이 강의 흐름을 막아서 호수가 생길 때, 그 호수를 넘쳐흐른 물이 폭포가 되기도 하지요. 또, 단층이나 기타 지각 변동 등에 따른 경사의 변환부에도 폭포가 생기는데, 이 재인폭포의 경우는 그러한 예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강의는 이 정도로 마치고, 각자 폭포를 좀 더 관찰한 다음, 다음 장소로 이동하도록 합시다.
6. 천년의 문, 991231
--아름다움이 꿈이었다는 걸 깨달을 때는 허망함이 우리를 감싸지만,
고통이 꿈이었다는 걸 깨달을 때는 안도감이 찾아온다.
동아리 후배들과 망년회인지 뭔지를 하느라고 밤을 새우고 아침 무렵에야 잠이 들었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부랴부랴 오긴 했어도, 폭포에 도착했을 때에는 자동차에 달린 시계의 숫자가 이미 오후 네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짧은 겨울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의식의 놀음임에도 불구하고 한 천 년이 지나가고 새 천 년이 다가오는 시간의 흐름 위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사실에 무덤덤할 수만은 없었다. K는 폭포로 가 폭포가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새 천 년에는 더 큰 슬픔은 없을 것이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아니 폭포에서 새 천 년을 맞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규정대로라면 평일인 까닭에 폭포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니까 예외적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을까 하는 별 가능성도 없는 기대에 헛되이 기대 보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초병들이 꿋꿋이 초소를 지키고 있었다. 수고가 많소이다. 재인이 우리 십오 대조 조상인데, 어떻게 못 들어갈까요. 여기 부대장하고 우리 아버지하고 친한 데.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K는 차를 돌렸다. 폭포를 보지는 못했지만 폭포 입구까지 왔으니까 그걸로 만족하자. 내일은 폭포에 들어갈 수 있잖아. 그래도 그냥 돌아가긴 너무 아쉬운데. 맞아, 내일은 더 이상 오늘이 아니니까. 얼마를 차를 돌려 나왔을까? 문득 묘안이 떠올랐다. 일단 강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거기부터는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되잖아.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강 양쪽이 모두 절벽인데 강으로 어떻게 내려가? 그렇더라도 일단 부딪쳐 보는 거야. 이백여 미터 정도 차를 돌려 나오던 K는 마을로 이어지는 좁은 도로로 차를 꺾었다. 그 좁은 도로를 조금 달리다가 차를 주차해 둘 만한 공간이 눈에 들어와 거기에 차를 세워 두고는, 길을 따라 걸어 나갔다. 식당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기풍 식당. 식당 옆에는 널찍한 공터가 있었는데, 그 공터의 끝부분에 길 같은 있는 듯했다. 저기가 강으로 내려가는 길일까? 불도저 같은 것으로 밀어서 내어 놓은 길은, 그러나 공터 끝에서 끝이 나 있었다. 이쪽으로 내려가는 건 힘들겠군, 하는데 흐릿하긴 하지만 좁은 길이 눈에 들어왔다. 경사도 상당했지만 내려가는 걸 포기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중간에 한 번 넘어져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놓치는 불상사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강가에 다다랐다. 강은 반쯤은 얼고 반쯤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강변은 커다랗고 모난 바위투성이어서 재인폭포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는 것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바위들이 둥글지 않고 모난 것으로 봐선 강물을 따라 흘러내려 온 것이라기보다는 강안의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것인 듯 했다. 울퉁불퉁한 바위들을 잘못 밟아 넘어지는 낭패라도 일어나면 큰일인지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아무런 위반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누군가의 눈에 띄게 될까봐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지! 뭐하는 놈이야! 손들어! 신발이며, 페트병이며 잡다한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왔고, 작은 나룻배 한 척은 몸을 삼분의 이 이상을 물에 담근 채 썩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삼십 분 쯤 위태로운 발걸음을 옮겼을까? 이제 왼쪽으로 꺾어지면 재인폭포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그런데, 그 순간 K는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진 채 멈춰 섰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군인 한 명이 자기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잡혀 가는 일만 남았구나. 아니, 내가 법을 어긴 것은 없잖아. 그렇더라도. 그러나, 총소리도, K를 외쳐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K는 자신이 첩보 영화의 스파이라도 되는 양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어떻게 된 것일까? 분명 내 쪽을 보고 있었는데. K는 바위 뒤에서 놀란 가슴을 가라 앉혔다. 예전에 박선생이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에 들어갔다가 곤욕을 치뤘지. 하긴 나도 설악산에 몰래 숨어 들어가다가 감시원에게 들켜 큰일 날 뻔 했지. 잡혀가면 어떻게 될까? 한참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K는 빼꼼 고개를 내밀고 동정을 살펴보았다. 군인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정말 거짓말처럼 증발해 버리고 없었다.
시간을 많이 지체해 버린 탓에 짧은 겨울 해는 이제 거의 다 타들어 가고 안 그래도 어두운 계곡은 바깥보다 한 발 앞서 어두움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K의 발자국 소리만이 적막한 계곡을 메우고 있었다. 금기를 깨고 비밀을 엿보는 듯한 설레임. 재인폭포가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맞아줄지 K는 자못 궁금했다. 이미 열 번도 넘게 찾았기에 폭포 앞까지 가는 길은 이제 익숙할 때도 되었건만 폭포 앞은 길과 길 아닌 곳이 별 차이가 없었다. 자신이 디딘 바위, 지나온 곳이 바로 길이었다. 멀리서 볼 때는 희뿌윰하게 뭔가가 걸려 있는 듯한 형국이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흰 장막 같은 빙폭이 윤곽을 드러내었다. 겨울 수량이 적었던 탓인지 빙폭은 찢어진 장막처럼 폭포 중앙은 빈 채로 왼쪽과 오른쪽에 하얗게 걸려 있었다. 하긴, 이 년 전에 W와 왔을 때는 아예 빙폭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았지. 대신에 폭포 아랫부분에는 석회암 동굴의 석순 같은, 아니 돌 기원탑 같은 백색의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거의 높이가 이 미터는 될 얼음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W와 왔을 때에도 꼭 저런 모양이었지. 하지만, 지금 것이 훨씬 더 큰 것 같은데. 멋진 장관을 기대하고 온 것은 물론 아니었다. 시간이 정지되기라도 한 듯 떨어짐을 멈춘 채 가만히 서 있는 폭포. 폭포도 군인을 보고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린 것일까? 단 한 마디라도 듣고 싶어. 살아 있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이 삶의 고통의 의미는 무엇인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내가 죽는다 해도, 어떻게, 세상은 정말이지, 코털 하나 까딱하지 않겠지? 삶이 고통스러운데 삶을 견뎌 나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 배부른 자의 허위의식. 니가 고통이 뭔지 알기라도 하는가? 아니다. 난 고통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어. 지난 일 년, 병원에 있으면서, 다친 동생을 간호하면서. 신경이 짓눌린 동생이 내지르는 비명을. 하긴, 고통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해. 만일, 동생의 신경이 완전히 손상되어 버렸다면 고통도 없겠지. 그래, 죽음은 고통의 끝을 의미해. 당연히 삶은 고통과 즐거움이 뒤섞인 거야. 김채수 교수가 뭐라고 그랬지? 우리의 삶이 즐거움보다 고통이 더 많다고 할 때, 그럼에도 삶을 지속해 나가야 할 의미는 무엇인가? 폭포야, 말해봐. 바보처럼, 굳어버린 채, 멍하니 있지 말고. 어둠이 깊어가고 있어. 추워. 그러나, 인간이 바보가 아니라면, 인간은 바보인가?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삶을 향한 맹목적 의지에 쫓겨 그야말로 맹목적으로 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답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 둔한 머리로 뭘? 밑지는 장사? 그렇더라도 뭐 별 게 있겠는가?
7. 시작 노트에서, 000825
작년 가을, 동생 간호를 위해 십 개월 가량 머물렀던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곧바로 오지 않고, 동해안을 따라 양양까지 가서는 한계령을 넘었다. 그때 처음으로 대승폭포를 보았는데 그 높은 높이에 비해 수량이 적은 것이 매우 아쉬웠다. 내년에 다시 이곳을 찾으리라. 그래서, 내 안의 풀리지 않는 슬픔을 울리라. 내심 이렇게 작정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장마가 들기를, 폭우가 쏟아지기만을 기다렸다. 올 유월, 집중호우가 쏟아지리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설악산을 향해 출발했으나, 성급한 시도였다. 대승폭포에서는 기운찬 물줄기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까마득한 벼랑을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나,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올 여름 내내 폭포를 찾아다니는 일은 미진함으로 끝나고 말았다. 특히 재인폭포는 찾을 때마다 번번이 실망감만 안겨 주었다. 서울 쪽에 비가 많이 와도 재인폭포가 있는 연천 쪽은 그저 그랬다. 게다가 낙석의 위험을 이유로, 예전에 사람들이 폭포 앞까지 걸어가던 길을 쇠줄로 된 울타리로 막고서는 출입금지 팻말을 붙여 놓은 뒤, 폭포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전망대를 따로 설치해 놓아 버렸다. 올 여름에는 딱 한 번 폭포가 큰 소리로 우는 것을 보았으나, 그 날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
그리고 어제 8월 25일. 대만에 엄청난 피해를 남긴 초특급 태풍 빌리스가 열대성 저기압으로 변해 우리나라 전역에 밤사이 호우를 몰고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는데, 아침 뉴스를 보니까 정말 밤새 비가 엄청나게 온 모양이었다. 재인폭포로 가보기로 했다. 중랑천이 엄청나게 불어있는 것으로도 비가 많이 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때에도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의정부의 자동차 전용도로는 예상대로 통행이 금지된 상태였다.
봉암리 저수지에서는 누군가가 외로이 우의를 입고 낚시를 하고 있었고, 왜가리인지 새 몇 마리가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날고 있었다. 길은 곳곳이 침수되어 있었다. 이날의 여정에서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날따라 약간 우회해서 지나게 된 전곡에 들어서기 직전에 있는 도로변의 벼랑에 전날 내린 비로 폭포가 세 개나 형성되어 있던 일이었다. 몇 번 그곳을 지났지만, 물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상당한 양의 물이 떨어져 내리는 높이 20미터 가량의 폭포가 형성되다니.
재인폭포 주차장에는 무소 한 대만 주차되어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표를 받는 할아버지마저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니까 물이 흘러내려가는 소리가 내 귀청을 두드렸으며, 싯누런 흙탕물이 마구 몸부림치며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에는 처음으로 재인폭포 앞, 정자 옆 벼랑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폭포를 이룬 채 떨어지고 있었다. 지난 4년 동안 보아온 중에 그 물의 양이나 힘이 가장 으뜸이었다. 그런데, 개울물이 흙탕물인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 떨어지는 물은 흰빛이었다. 그 세찬 물소리 가운데에서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고개를 돌려 보니, 그 폭포 근처에서 어린 아이처럼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20대로 보이는 청년을, 매표소의 할아버지가 불러내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신나게 놀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낙석 위험을 이유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했다. 그게 아니라면 폭우로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실지로 위험했기 때문일까? 할아버지와 청년이 올라가고 나자, 폭포는 오롯이 내 것이었다. 나는 ‘낙석의 위험이 있으니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푯말이 붙어있는 쇠줄을 무시하고 넘어갔다. 오늘만은, 낙석에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폭포 가까이에서 폭포를 보고, 폭포 소리를 듣고 싶었다. 쇠줄이 쳐지기 전 늘 앉아서 폭포를 감상하던 바위는 물에 거의 잠길 정도였고, 그곳까지 가는 길에 놓여 있던 크고 작은 바위들은 모두 물에 잠겨 있었다. 약간 비스듬한 위치에서 폭포를 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나는 재인폭포가 그토록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재인폭포가 갖고 있는 힘을, 분노와 슬픔과, 울음과, 꺾인 욕망과, 그런 모든 것을 최대한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용소는 물이 넘쳐흘러 어디까지가 용소이고, 어디서부터 개울이 시작되는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고, 물결이 일어나 내가 서있는 바위를 넘쳐흐르기도 해서 신발도 물에 흠뻑 젖어 버렸다. 물에 이어서 물이, 흙탕물이라, 약간은 희뿌윰하게 부서지면서, 떨어져 내리면서 내는 그 천둥소리, 그리고, 용소를 넘쳐흐르는 물이 돌멩이며 바위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 오로지 물과, 물소리의 천지였다. 거기다 폭포를 감싸고 있는 벼랑은 살아서 나에게로 넘어오기도 하고 꿈틀대기도 했다. 물이 엄청난 양으로 떨어져 내리자 이 착시현상은 더욱 더 심하게 일어났다. 폭포는 떨어지면서 용암처럼 끓어올랐고, 또 물방울들은 비말을 이루며 몇 미터식이나 위로 솟구쳤다. 그렇게 얼마를 나는 폭포를 보고, 폭포 소리에 귀 기울였을까? 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시를 쓰려는 마음마저 버리려고 했다. 아무리 해도 풀 수 없는 내 안의 깊은 슬픔. 존재의 슬픔. 인이 박혀버려 아무리 해도 지울 수 없는 상처. 울음은 이제 말라버렸다. 한 줄 시라도 떠올라 준다면. 그러나, 버려라, 마음을. 그냥 폭포를 보아라. 재인폭포로 가는 길에 내 마음 속에는 몇 줄의 시가 떠올랐었다. 초라한 시니피앙이여/하나 자살 외에 달리 또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곤두선 슬픔이여라는 행도 떠올랐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수첩에다 이렇게 썼다.
곤두선 슬픔이여
내 심장을 내리 꽂아라
빠개진 피를
내 달게 빨아마실테니
초라한 시니피앙,
자살 외에 달리 어떤 방도가 있겠는가?
그리고는 아쉬움을 뒤에 남기고 폭포에서 나왔다. 그러나 쇠줄을 넘어 얼마를 걸어가던 나는 다시 뭔가가 못내 아쉬워 전망대로 걸어갔다. 또 거기서 얼마를 폭포를 바라 보았던가? 이번에는 끝의 두 행마저 지워버리고 말았다.
곤두선 슬픔이여
내 심장을 내리 꽂아라
빠개진 피를
내 달게 들이킬 터이니
이 시가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만 무의식이 내 마음의 핵심에까지 다가가 거기에서 건져낸 것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쨌거나 나를 막고 있던 뭔가가 한 꺼풀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이 시가 시로서 별 볼일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 내가 글을 써나가는데 하나의 전환점은 될 것 같다는, 그러니까 앞으로 더 진지하게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는 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아니었든가 한다. 내가 재인폭포에 도착한 후로 비는 거의 오지 않다시피 했지만, 계단을 올라오니까, 날이 거짓말처럼 개여서 북쪽 하늘은 새파란 빛을 띠고 있었고, 그리고 커다란 햇무리가 해를 무지갯빛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거기다 쓰르라미와 참매미가 나무마다에서 요란스럽게 합창을 하고, 햇살은 또다시 따가울 정도였다. 비 개인 뒤의 싱그러움이 내 마음도 싱그럽게 했다.
8. 에필로그, 120822
일찍 눈이 떠지면 아침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오후에 상담을 받고 난 다음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탁구장에 탁구를 치러 갔더니 친한 회원 한 명이 생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뒤풀이를 가야만 했고, 노래방 가자는 걸 뿌리치고 나오긴 했어도 집에 도착한 시간은 벌써 두 시가 넘었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깨지 않는다면 폭포에 다녀오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월계동 집에서 재인폭포까지는 가장 빠른 길로 간다 해도 두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그리고, 폭포에 간다 해도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1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서 먼발치로 폭포의 상단부만 간신히 보고 와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재인폭포」라는 이 글을 세상으로(그 세상이라고 해봐야 내가 가입한 네 군데 정도의 인터넷 카페, 그것도 세 군데는 탁구 모임이라, 대부분 제대로 읽지도 않기가 십상인데) 내보내는 걸 기념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으로, 또는 언제 생명력을 다할지 모르는 재인폭포를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기 위해서 이 글에 마지막으로 글 하나 정도가 더 필요할 듯하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일까, 혼곤한 잠이 일찍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 이십 분. 간밤에 충전시켜 둔 카메라와 캠코더를 배낭에 챙겨 넣고 도로로 나섰다.
그저께부터 비가 많이 왔다. 그저께 밤(그러니까 월요일 밤에서 화요일 새벽)에는 비가 마구 퍼부어 동부간선도로가 침수되어 아침에 강의 나가는데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해서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그리고 어제도 비가 꽤 많이 왔다. 그런데, 국지성 호우라서 그런지 내릴 때는 무섭게 내리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거짓말처럼 멈추고를 반복하는 그런 형국이었다.
시 외곽으로 나가는 길이긴 했으나 그래도 러시아워라서 의정부 방면의 동부 간선도로는 꽤 많이 밀렸다. 나는 머릿속으로 시를 적어나갔다.
너에게로 가도
네 곁으로 다가갈 순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왜 이렇게 산문적일까? 시라는 장르는 시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 그러나, 시든 산문이든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편이 아닌가? 내 감정이 많이 죽어있기 때문인가? 시는 노력하는 그런 것이 아닌가? 세상의 잣대에 너무 휘둘릴 필요가 없다. 내 고유의 방식으로 노래하고 말하고 글을 쓰면 되는 것. 하지만 말이란 이미 사회적인 것 아닌가? 사회적인 산물을 이용해서 개인적인 고유성을 찾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동부 간선도로가 끝나는 부분에 이르자 차량의 흐름이 많이 빨라졌다.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차량 흐름과는 달리 아무래도 시 외곽으로 나가는 차들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동부 간선도로를 빠져나온 나는 10차선도 넘는, 그러면서도 늘 막히는, 의정부로 들어가는 동일로 간선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신곡 지하차도 쪽으로 좌회전. 거기서 3번 국도를 따라 덕계를 지나 동두천으로. 동두천에서는 신천 옆의 우회도로를 타고 달렸는데, 그 막바지에 있는 자동차 전용도로는 침수로 인해 차량 통행이 통제된 상태였다. 시간문제도 있고 해서 나는 재인폭포로 가는 많은 길 중에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3번 국도를 타고 내처 달렸다. 구석기 유적지로 유명한 전곡을 지나 연천 시내로 들어가기 직전에서 우회전. 거기가 바로 재인폭포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사실 재인폭포까지 가는 길에 특기할 만한 일은 없었다. 많은 부분 생략할 수도 있지만 다시 한 번 여정을 되새기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굳이 경로를 적어본다.
그런데, 재인폭포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재인폭포 침수로 잠정 출입 통제”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재인폭포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 안내판은 내가 예상하지 않은 사실을 담고 있었다. 이 때 시각은 9시 20분. 십 분 남짓 더 달려가면 재인폭포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가게에 들어가 음료수라도 좀 마실까 하다가 그냥 차를 몰았다.
고문리를 지나자 새로 포 사격 훈련장이 들어오기라도 하는지 반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여기 저기 붙어 있었다. 이해관계의 상호충돌. 님비 현상.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게 늘상 서로의 욕망의 충돌이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라. 왜? 내 가장 소중한 것마저 남을 위해 희생해야 한단 말인가? 연천 댐 건설 공사로 새로 잘 닦아 놓은 도로를 지나 재인폭포로 들어가려는 순간, 예의 “재인폭포 침수로 잠정 출입 통제”라는 안내판이 다시 한 번 내 신경을 그슬리는 가운데, 초소에서 경계를 서던 군인들 두 명이 내 차의 출입을 막았다.
“어디에 오셨나요?”
“재인폭포 보러 왔는데요.”
“지금은 침수되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아는데, 멀리서 보는 것도 안 되나요? 멀리서 여기까지 보러 왔는데.”
“너무 멀어서 제대로 볼 수도 없는데다가, 지금은 공사 중이라 안 됩니다.”
“달리 방도가 없나요?”
“안타깝지만 안 됩니다.”
두 명 중 전투모를 쓰지 않은, 고참으로 보이는 한 명은 ‘안 된다’로 일관했고, 옆쪽에 서 있던 일병인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래도 그는 뭔가 희망적인 말을 해줄 듯한 기대를 품게 했으나 말을 마친 두 군인은 다시 초소로 들어가고 말았다. 차를 돌려 나오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제는 물이 많이 차올랐기 때문에 강을 따라 몰래 들어갈 수도 없었다.
후진해서 차를 뺀 다음 예전에 버스 종점이었던 곳에서 차를 돌리는데, 오른 쪽 이름 모르는 산 중턱에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폭포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좌절된 욕망에 화가 치밀었을까? 순간적으로 저기나 올라갔다 올까? 하는 생각마저 했다. 그러나, 그건 그냥 순간의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까지 가는 길이 제대로 나있는지도 알 수 없는 데다가, 거기에 올라갔다가는 상담 시간에 맞출 수 없기 십상이었다. 종점 옆, 예전에 가게인가가 있던 곳에 집 자체는 모두 없어지고 따로 떨어져 있던 화장실만 남아 있었고, 나머지 집터는 밭으로 만들어 누군가가 깻잎을 심어두었다. 나는 카메라와 캠코더, 그리고 우산을 챙겨 밭과 우거진 잡초가 있는 그곳을 가로질러 강 쪽으로 좀 더 나가보려 했다. 강 쪽으로 좀 더 나간다고 해서 폭포가 보일 리도 없었건만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물기를 잔뜩 머금은 흙은 잘못 디디는 날에는 내 등산화를 그대로 집어 삼킬 듯했다. 그렇게 몇 십 미터를 갔을까? 부질없는 짓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7월 오랜만에(그 때도 비가 꽤 많이 온 다음이었는데) 재인폭포를 찾았을 때 연천 댐의 물이 차올라 더 이상 재인폭포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차단 띠로 재인폭포로 가는 계단 입구를 막아 놓았으나,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는 바람에 차단 띠는 거의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계단을 내려가자 정말로 계단이 물속으로 이어지고, 나무들도 산발한 머리만을 내밀고 있던 광경, 더 이상 폭포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수직에 가까운 벼랑의 사면을 조심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지만, 몇 걸음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고,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이 하듯 넓은 주차장 옆, 예전에 식당이 있던 건물이 헐린 곳에서 먼발치로, 폭포의 그 우렁찬 소리가 들리는 듯 마는 듯, 흰 천 같은 물줄기가 떨어지는 지, 정지해 있는 지도 잘 구분이 가지 않는 곳에서 한참도 아니고, 잠시 바라보다가, 카메라에 담다가 발길을 돌려야만 했었지. 그렇다. 그 때 이미 재인폭포는 더 이상은 예전의 재인폭포가 아니었다. 사형선고를 받고 그것의 집행만을 기다리는 운명이라고 말한다면 너무나도 살벌한 표현인가? 아니, 그 때 이미 내 마음속에서는 재인폭포를 떠나보낸 것 아닌가?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전부터, 십 년도 더 전부터, 과외를 하던 학생이 연천 댐 계획을 이야기하던 때부터 이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지 않았던가? 모든 게 종말이 유예된 만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작별의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하지만 폭포의 그 힘찬 모습은 볼 수 없어도, 아직은 폭포에 완전히 접근이 금지된 것은 아니고, 오늘 같은 날엔 비록 내가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폭포는 저 홀로 힘차게 떨어져 내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폭포가 정말로 영원히 물속으로 사라진다 해도, 재인폭포의 그 기운찬 모습은, 혹은 그 서럽게 통곡하던 모습은, 아니면 차르르 차르르 경쾌한 음악을 들려주던 모습은, 또 겨울에 빙벽으로 서 있던 모습은, 아니 마른 먼지만 풀썩이던 모습까지 모두 내 가슴에,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는, 모두 내 가슴에,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이다. 아니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사진이나 동영상에, 그리고 이 글을 통해 살아 있기를.
나는 차를 연천 댐 쪽으로 몰았다. 연천 댐 위의 도로는 통행금지라 예전에 군용 도로가 있던 곳에다 차를 세우고, 댐 근처의 강으로 내려가 보았다. 넘쳐흐르는 물이 제 힘을 이기지 못해 길에다가 고랑을 만들며 물이 폭포수처럼 강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작년에 왔을 때보다 물이 훨씬 많이 불어 상당히 큰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재인폭포 시편]
재인폭포에서 1
여보게, 이 사람 재인이!
가슴 속에 맺힌 불덩이가 자꾸만 치미는가?
온 계곡이 자네 고함소리에 오히려 정적으로 잦아들고
자네 분노가 떨어지는 곳엔 용암 솟구쳐
산지사방 이리 튀고 저리 날아
급기야 소(沼)를 넘고, 바위든 길이든
모두 삼킬 기세네 그려.
여보게, 이 사람 재인이!
재주꾼 주제에 절세가인이 가당한가?
욕정에 취한 사또는
자네 목숨을 파리보다 가벼이 채갔으니
그 원한, 수백 년의 세월로도 삭이지 못해
오늘도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고 퍼붓고 있네 그려.
(97년 7월 16일)
(00년 4월 30일)
재인폭포에서 2
여보게, 이 사람 재인이,
진달래 화사한 봄날일세.
오늘은 자네의 울음소리도
내 귀를 애처로이 간지를 따름이네.
하지만 겨울 동안 얼어붙었던 울음,
새싹과 꽃소식과 함께 점점 터져 나와
이제 곧 활화산 같은 분노를 터뜨리겠지.
여보게, 이 사람 재인이,
자네의 분노가 곤두선 칼날일지라도
가끔씩은 울음을 멈추고
자네 색시를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싶겠지.
또 가끔씩은 말일세,
그 원수놈의 사또놈도 용서하고 싶겠지.
노래 부르고 덩실 춤을 춘 미친 처용이처럼
여보게, 이 사람 재인이,
햇살이 목덜미를 따사로이 어루만지네.
그 부드러운 손길이, 자네에겐 죄스럽네만,
꼭 자네 색시의 감촉만 같네 그려.
이 사람 재인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울음을 울고 멈추고 뜻대로 안 되지만
믿게나 그려, 아니 믿으세 그려,
자네 색시가 이 햇살로 자네를 감싸고 있음을.
(98년 4월 12일)
(04년 7월 18일)
재인폭포에서 3
너처럼 나도
걷잡을 수 없이
내던지고 싶다
추락하고 싶다
자유낙하이고 싶다
지칠 줄 모르는 천둥,
물기둥이고 싶다
낙하를 일탈한
흩날리는 물방울이고 싶다
추락을 용솟음치는
마그마이고 싶다
비말로 산산이 부서지고 싶다
바위를 깎아내는 소용돌이이고 싶다
넘실대는 물결이고 싶다
이윽고,
소를 넘어
물길 넘어
땅길마저 넘고 싶다
(98년 7월 3일)
(04년 7월 17일)
재인폭포에서 4
길이 끊어진 곳에 다다르자
물은 기꺼이 제 몸을 던져
스스로 길로 일어선다
(00년 1월 1일)
재인폭포에서 5
추위에 얼어붙는 것이 어디 물뿐이겠는가
폭포는 떨어짐마저 고정시키고
겨우내 그 견고한 두께를 키워 나왔다
초록이 눈뜨는 삼월의 끝자락에도
견고한 두께
실 풀리듯 올올이 풀려나지는 않는다
그 풀리지 않는 두께를 견디지 못하고
연신 돌팔매를 날리다가
급기야는
뜨거운 오줌을 마구 갈겨대었다
(00년 5월 2일)
(04년 7월 18일)
재인폭포에서 6
바보야
어째 너는 떨어지는 것밖에 모르냐
막무가내 우는 것밖에 모르냐
한번쯤은 추락을 멈추고
한번쯤은 울음을 거두고
먼 하늘이라도 보려무나
새의 지저귐이라도 들으려무나
바보야
(00년 6월 18일)
재인폭포에서 7
곤두선 슬픔이여
내 심장을 내리 꽂아라
빠개진 피를
내 달게 들이킬 터이니
(00년 8월 26일)
재인폭포에서 8
1
곧추 선 슬픔이 연달아 내리 꽂힌다
정말이지 돌이킬 수 있는 일이란 없다
한 번 내디딘 슬픔 휴식을 모르고
목숨의 끝까지 떨어져 내릴 따름
2
슬픔을 오래 들여다보다간 슬픔을 덮어 쓴다
정말이지 돌이킬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세상의 온통 뿌연 물빛
그 바깥을 볼 재간이 없다
(00년 10월 1일)
(00년 10월 10일)
재인폭포에서 9
폭포는 하얀 흔적으로 말라붙어 있다
내 마음도 마른 먼지만 풀썩인다
(040719)
재인폭포에서 10
폭우가 한 바탕 지나가자
하얗게 흔적만 남아있던 폭포
새로이 생명을 부여받아
온몸으로 떨어져 내린다
추락이 생명의 본질이라는 아이러니 따위
폭포는 아예 되새김하는 일이 없다
일 밀리미터의 머뭇거림도 없이
수직으로 허공을 가르며
산산이 떨어져 내리는 폭포
벼랑이 없더라면
허공이 없더라면
자신도 없다는 걸 진작 알아차린 모양이다
심장을 쩌렁 가르는 천둥소리
폭포는 온몸으로 떨어져 내린다
(2001년 7월 2일)
재인폭포에서 11
늙은 할배의 오줌발 같은
야윈 물줄기가
벼랑을 타고 흘러내리다
물방울 방울로 흩어지며
힘없이 곤두박질친다
중동쯤에 걸린
빛바랜 무지개도
오후의 햇살을 품은 물방울도
야위어 가는 물줄기를
되돌릴 재간은 없다
차가운 햇살을 탈출한
마른 나뭇잎 하나
겨울이 온다
겨울이 온다
물줄기를 가로지르며 내려앉는다
*
살아 있으니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 있으니 살아가야겠다
(040718)
재인 폭포에서 12
무신론을 떠벌리고 다니던 내가
서른다섯 늦은 나이에 만난 하느님이
고작 폭포라니!
온몸으로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 앞에서
미친 몸부림 같은 울음 엉엉 울고
저물도록 무릎 꿇고 기도 드렸으니
하느님이라 부르지 않을 도리도 없다
나이 들수록 사람은 어리석어만 가는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위태롭기만 하다
헛디딘 발걸음 하나
허공을 가르며 곤두박질 쳐
시퍼렇게 일렁이는 심연으로 가라앉을 듯하다
서른다섯 늦은 나이에 만난 나의 하느님
언제나 나보다 더 크게 울고 있는 나의 하느님
그 앞에선 내 울음도 잠시 목을 놓는다
(040725)
재인 폭포에서 13
긴 방황의 끝에서 또 폭포 아래에 선다
연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지만
감히 저 수직의 높이를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 세계와
또 하나의 세계를
단절하고 있는 저 수직의 높이
폭포는 오늘도
돌이킬 수 없는 추방의 모습을
쉬임없이 재현하고 있다
(090710)
재인폭포에서 14
--빙폭
한 여름 내내,
떨어져 내리던 물이
이미 떨어져 내린 물에 부딪히는
그 순간의 충격,
그 아픔을, 혹은 그 쾌감을
입에 흰 거품을 문 마조히스트마냥
또는 사디스트마냥
한 순간의 휴식도 없이
도돌이 도돌이표로 되풀이 하더니만
언제 어느새 신물이 나고 말았던가
오늘 물방울들
소리도 소문도 없이 서로 교신이라도 했는지
추위의 도움이라도 끌어왔는지
자신의 몸을 흰 기둥으로 바꿔놓은 채
가만히 정지해 있다
고작 몇 갑자의 내공으로는 꿈도 못 꿀
변신술로
내 눈을 어리둥절하게 하고서도
왜 무슨 일이 있었어, 하는 시치미에
벌어진 입 다물어지지 않는다
(091231)
재인 폭포에서 15
너에게로 가는 길은
이제 물 밑으로 가라앉고
시집가는 아씨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옛날의 그 마당쇠 마냥
높은 곳에 올라 멀리서 바라본다
너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
고막을 때리는 그 소리 들리지 않아도
밤새 내리던 빗줄기에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거침없이, 기운차게,
자유낙하하고 있구나
오랜 세월,
너는 내 울지 못하는 울음을 대신 울어주던,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는 나의 좌절을
달래주던 그런 친구였다
울다보면 마음이 좀 풀리기 마련이라고.
앞으로 넌 더 이상 울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울음의 끝에서 넌 해탈이라도 맞이한 것이냐
하지만 너를 잃어버린 나는
어디서 내 울음을 같이 울어줄 이를 찾을까?
(1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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