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독의 이름이 낯선데 천재 수학자인 앨런 튜링을 모델로 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감독을 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영화가 내 기억에 그렇게 큰 인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학문적인 천재성과 성격의 괴퍅함이라는 전형적인 공식이 적용된 영화였던 듯하다.
이 영화는 여주인공의 얼굴이 낯이 익다고 했더니, [헝거 게임]에서 주연을 맡았던 제니퍼 로렌스이다. 이 영화는 하나의 커다란 모순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즉 오작동될 수 없고, 오작동된 적도 없는 '동면기'가 오작동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우주 비행에 따르는 온갖 난제들을 - 실제로는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는가? 그 누구도 해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다 - 너무나도 수월하게 처리하던 거대 우주선의 컴퓨터가 나중에는 자신의 선체에 일어난 문제에 대해서 속수무책이 되고 마는 것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리고, 5천 명이 넘는 인원을 동면시키고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 받는 사이보그도 만드는 세상에, '동면기'를 새롭게 작동시키는 것만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과연 그런가?) 너무 사실성에 집착하는 것도 문제이리라. 이 영화가 탐사하고자 하는 것은 인생이 우리의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세상에 혼자 혹은 둘이 남겨진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남녀 관계의 문제 등일 것이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우주선이라는(상당히 크긴 하지만) 제한된 공간 속에서 소수의 인간이 엮어가는 드라마는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윌 스미스가 주연했던 [나는 전설이다]에서 받은 느끼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남녀 주인공의 육체적인 섹슈얼리티(특히 제니퍼 로렌스가 요상한 수영복을 입고 수영하는 장면은 12세 이상 관람가에 어울리지 않게 에로틱하다)를 은연 중에 강조하면서, 동화를 엮어나간다.
어쨌거나 이 영화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흥미롭다. 인간이 완전히 혼자가 된다면, 의식주의 문제에서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이 삶을 견딜 수 있을 것인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에 나오는 한 인물은 사형 직전에 발디딜 땅만 주어진다 하더라도 살고 싶다고 외치지만(그것은 실제로 사형장에 섰던 도스토옙스키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것은 죽음을 앞에 둔 그 급박한 순간의 감정이니까, 확대해석해서는 안 되리라. 그와 반대로 콘래드의 소설 [노스트로모]에 나오는 드꾸라는 인물은 외딴 섬에 홀로 남겨지자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 만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은 자살 대신에 '젊고 아름답고 지성적인' 한 마디로 말해서 현실에서는 자신의 배우자가 될 수 없을 '이상적인 여성'을 동면기에서 깨우는 선택을 한다.
그러니까, 남자는 과학의 실패로, 여자는 남자의 선택으로 자신들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두 사람은 어려움을 겪긴 하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 여생을 살았던 것으로 나온다(영원히 행복했다는 것은 동화 속에만 있는 것이라고 콘래드는 못 박았지만).
다시 한 번 혼자가 된다면, 이라는 문제를 생각해 본다. 괴짜 카프카는 실제로는 연애도 하고, 이런 저런 삶의 즐거움을 누렸음에도, 자기에게는 '책상과 의자 하나가 놓인 어두운 골방에서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 식사는 누군가가 자신의 방 앞에 매번 가져다 놓는다면 -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싶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그만큼 글을 쓰고 싶었다는 말이겠지).
그러고 보니 혼자의 대명사는 '로빈슨 크루소'이다. 영국의 18세기 당시의 자본주의 내지는 시민 정신을 대변하는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 홀로 있는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하여 그릇을 만들고, 곡식도 심고, 정말 부지런히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도 필연적으로 '고독'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스스로를 '불쌍하고, 외로운 존재'(“Poor Robin Crusoe! Where are you? Where have you been? How come you here?”)라고 부르는 부분이 있다.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할 수 있는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는 무인도 생활의 힘겨움과 고독을 보다 실감나게 보여준다. 외로움에 지쳐 배구공을 친구로 삼아야 했던 톰 행크스의 모습에 그 절박함이 그대로 묻어 난다.
이 영화는 말이 안 되는 대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다소 동화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삶을 여행에 비유하면서, 고독한 가운데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진정한 교류?가 하나의 답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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