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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이야기

2017년 탁구 이야기 - 3월 탁신 모임(18일) 소감 및, A냐 B냐 그것이 문제로다 (2)

by 길철현 2017. 3. 20.

(1에서 계속)


개인전 및 단체전이 끝내서도 시간은 아직 여섯 시가 채 되지 않았다. [별로 하는 일이 많지는 않은데 해야 할 일은 무지 많다. 이 사태를 반겨야 하나? 아니면 안 해도 될 일을 만들어서 하는 것일까?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래도 말을 한다는 것보다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무엇을 쓰고 무엇은 그냥 지나가야 하는가, 하는 선택이 그 출발점일 것인데, 이번 탁신 모임은 탁구보다도 뒤풀이에서 나에게 쓸거리를 많이 안겨주었다. 그냥 지나가면 아쉬움이 많이 남을 듯하여 시간이 별로 없지만 광속으로 적어나가본다.] 뒤풀이를 어디로 갈까, 하는 것이 항상 우리의 고민인데, 모처럼 '중국 요리'로 중론이 모였다(설렁탕 집에서 '수육'을 먹자는, 기름 진 음식은 싫으니, 진황이의 의견은 무시되었다).


명지에서 나오니 민우가 백을 들고 서 있다. 어깨가 아파서 탁구는 못 치고 뒤풀이에나 참가하려고 영종도에서 지하철을 타고 왔단다. 그 정성이 대단한데, 재석이 형 왈, '너도 참 할 일이 없구나.'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명지고 근처에 있는 **대반점까지 걸어 갔으나 이 반점은 망했는지, '차이나'인지 뭔지 하는 중국집으로 상호가 바뀌었는데 장사가 안 되서 그런지 아니면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어쨌거나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문을 닫았다. 명지대 앞까지 또 걸어가기로 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지천에 널려 있던 중국집이 찾으니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명지대까지 와서야 2층에 있는 고래성이라는 허럼한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것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쓰다간 또 글이 한 없이 길어질 듯한데.]


출발은 탕수육, 양장피, 깐풍기 등으로 가볍게 시작했으나 (어느 틈엔가 근무를 일찍 마친 김진우도 합류했다) 역시 탁신 사람들은 거복 이재석 형을 비롯하여 모두 대식가들이라, 짬뽕탕인지 뭔지에다, 다시 라조기와 그리고 계속된 군만두 서비스 배가 노할 때까지 먹고 맥주에다, 소주, 막걸리, 그리고 처음 마셔본 연포라는 고량주(한 병에 만 원이나 하는 꽤 고가의 술이었은데 향이 좋았다. 정연이가 특히 이 술을 좋아해서 술값을 내가 내기로 하고 마구 시켰다) 등을 마구 들이켰다. 소맥에다 고량주를 짬뽕을 해서 그랬는지 괜실히 좋았던 기분이 더욱 올라갈 줄 알았는데, 뭐 속만 더부룩하고 그렇게 취하지도 않고 예상과는 달리 기분이 다운이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나는 한 가지 생각만 하고 있었던 듯하다.)


거둔 돈이 9만 원이었는데, 11만 원 정도 나온 줄 알고 내가 낸다고 했다가, 20만 원이 넘는 걸 알고(그럼 그렇지 얼마나 먹어 댔는데), 급 꼬랑지를 내렸다. [고래성]에서 나와 맞은 편에 있는 [런던 타운]이라는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정이 형과 회장님은 떠나가고. 호프 집에 들어가자 말자 나는 화장실에 가서 토를 좀 했다(그러고 술이 좀 깼는가?).


앞에 쓴 대로 양주(J & B)와 맥주를 마시면서 남은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진우가 경호를 맡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야기가 기밀이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이어졌다. 요즈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역사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큰 인물들에 대한 정치적인 판단과 주변 사람들의 판단의 온도차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술이 취해서 내가 의사전달을 제대로 못한 것인지 아니면 상대도 술이 취해서 내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인지(민우가 특히 내 말에 과격하게 반발을 했는데) 어쨌거나 좀 공박을 당한 느낌이다. 이 문제는 사실 굉장히 예민한 문제여서 섣부르게 이야기를 했다가는 큰 오해를 살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기는 하다. 인간이 생각이 이성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감안한다면 차라리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으리라.


요 몇 달 화제의 초점은 당연히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오늘 아침 검찰에 출두한 그녀는 '국민께 송구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말했다). 우리 국민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서 대통령 직에 올랐던 그녀는 파면까지 당하고 이제  피의자 신분으로 구속당하기 일보 직전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야 교묘한 쿠데타로 대통령 직에 올랐지만(진우의 말을 빌면, 그는 철두철미한 군인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부하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사람이기도 하다), 투표로 선출된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나란히 법정에 서기도 했다. 가장 큰 비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리라. 내가 말하고 싶은 논지가 자꾸 다른 길로 빠지려고 하는데, 이 날 모임에서의 핵심 논의는 전두환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물론 그것은 이미 내려져 있다. 하지만 멤버들의 생각은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단호했다. '사형을 당해야 마땅한 인물인데 그냥 두고 있으니 정의가 행해지지 않고 있다'고 했던가? 그에 대한 정확한 판결은 무기징역이었는데 2년 뒤에 사면이 되었구나.) 한 사적 인간으로서의 전두환에 대한 평가는 나눠서 생각해 하는 것 아닌가? (그럴 수가 없는 것인가?)


생각을 좀 더 확장해 나가다 보니 역사적으로 큰 인물뿐만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인물의 경우에도 이 문제는 마찬가지로 부각된다. 이런 문제를 다룬 것이 고문하는 자와 고문 당하는 자를 다룬 임철우의 [붉은 방]이라는 소설이다. 오래 되어서 그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 내용 중에 고문하는 자도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가정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한편으로는 보통의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던 듯하다. 그보다 최근 기억으로 법륜 스님이 한 말이 기억난다. 법륜 스님도 80년대에 시국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한 적이 있었다. 불자로서 고문에 맞설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현실은 그것이 아니라 고문하는 자에 대한 증오가 커졌다고 했던가? 그런데, 우연히 그 고문하는 사람이 자신의 딸의 성적 문제로 고민하는 이야기를 엿듣고는 그 사람도 철저한 악인이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던가?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말은 이렇게 하지만 서울역에서 매표소에 지갑을 둔 채로 걸어오다가 다시 가보니 감쪽 같이 사라진 것을 보고는 지갑을 훔쳐간 상대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던가를 생각해 본다면, 상대에 대한 자비심을 갖는다는 것은 지난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은식기를 훔쳐간 장발장을 처벌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것까지 얹져 준 마리엘 같은 성직자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비인간적인 것 아닌가? 그 사건은 장발장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지만, 장발장이 더욱 더 악한 길로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선악이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것이기나 한 것일까?


그 날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술이 취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사실 '윤리'와 '정의'와 '자비심' 등등이 얽혀 있는 난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해 당사자에게 이성적인 태도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그렇다고 그 입장이 객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아픙에 공감할 수 있을 뿐. 여기까지 쓰고 나니까, 내 마음 속을 맴돌고 있던 글 하나가 무엇인지 기억이 난다. 우리 집 인근에서 경찰관에 총격을 가해 경찰관을 죽게 한 성병대 사건. 이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 번 적어봐야 할 것이다.) 문재인이 군대 복무 시절 당시 여단장이었던 전두환으로부터 표창을 받은 것이 크게 논란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과도한 정의의 행사는 또 다른 비극을 낳을 수도 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처한 운명이다.


인간이 처한 모순은 각 개개인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은 대체로 정당하다고 믿는다는 것이다(이 말 또한 의심의 도마에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서 오는 타인의 말에 우리가 쉽사리 귀기울이거나 승복하지 못한다. 특히나 그것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판단할 때는. 또 이와는 달리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타인의 말들은 마치 외부에 그 말뿐인 듯 온 몸으로 껴안는다. 아 어렵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이 어려움을 피하지 않는 것,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갈 때까지 가는 것, 아니 갈 수 없는 곳까지 갈 때 후회는 덜 남는다는 것.


이 날 있었던 가장 중요한 논의는 또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한다.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