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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조지프

콘래드, 조지프(조셉 콘라드) - 서구인의 눈으로 (Joseph Conrad - Under Western Eyes)

by 길철현 2017. 5. 25.


*Joseph Conrad - Under Western Eyes (Penguin)

[조셉 콘라드 - 서구인의 눈으로, 김상무 역, 중앙일보사]


콘래드의 이 소설은 1989년 2학기 [현대 영국 소설] 시간에 지금은 고인이 된 정종화 교수님에게 배웠고, 당시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수업 시간에 발췌해서 원문으로 읽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번역본으로 통독했다(교수님도 우리의 영어 실력으로 장편을 다 읽어내기는 무리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번역본으로 읽고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 그 때, 나는 이 작품의 주인공 라즈모프가 처한 상황이 정말 진퇴양난이자 딜레마라는, 다시 말해 그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파국'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 한 번 더 말해 본다면 그가 벗어날 수 없는 필연의 그물에 걸린 것이라는 논지 아래 감상문을 썼다. 어쨌거나, 나는 좀 과장을 하자면 콘래드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 의식이 그 때까지 문학 작품에서 접했던 어떤 것보다도 심각한 것이라는 인상을 지녔던 듯하다.


당시 낯선 작가였던 콘래드는 이제 내 박사논문의 대상이 되었고, 거의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다음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되었다. 한 번 읽었기 때문에 논문을 써나가면서 필요하면 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소설 작품으로는 마지막으로 - 단편을 포함하여 - 이 작품을 다시 읽어 보는 것이 -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 외에는 논문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없는 상황에서 - 도움이 될 듯했다.


탁구 레슨과 기타 다른 일들로 분주한 가운데 진도가 생각처럼 잘 나가지 않았는데, 작품을 읽어나가는 중간에 왼쪽 엉덩이와 오금까지 부분에 다소 심한 근육통이 찾아와서 - 아직도 좀 고생을 하고 있는데 - 기분까지도 우울해지고 무력증과 또 약간의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상암고에 레슨을 가던 날 , 수색에 있는 야산에서 마음이 불안정한 가운데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던 것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무었이었던가? 이 작품은 교묘하게 변형된 [오이디푸스]라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의 기본 요소가 아버지 살해와, 어머니와의 근친상간, 그리고 그에 따른 죄의식과 처벌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에는 그것이 변형된 형식으로 그대로 들어있다는 것.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줄거리를 좀 소개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전제 정치가 횡행하고 또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1900년대 초 러시아이다. 페테스부르크 대학의 철학과 학생인 라즈모프는 이 혼란스러운 국내 정세 속에서도 학업에 충실하려 하는데, 같은 과 친구인 할딘이 전제 정치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을 살해하고, 자신의 하숙집으로 찾아온다. 탈출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면서 한 마부에게 찾아가보라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그 마부는 마침 그날 아내가 도망을 가서 인사불성인 상태였다. 자신의 신변에 닥쳐올 위험에 대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라즈모프는 결국 친구 할딘을 밀고하고 만다(라즈모프는 고아와 같은 존재로 귀족인 생부가 있지만 혼외자인 그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친구를 밀고한 라즈모프는 경찰과 생부의 권유로 이중첩자가 되어 스위스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들을 염탐한다. 스위스에서 그는 할딘의 친구로 암살 사건에 도움을 준 인물로 알려진다. 특히 오빠를 잃은 슬픔에 사로잡혀 있던 할딘의 여동생은 그에게 커다란 호감을 보이고 두 사람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하지만 라즈모프는 자신의 이중성이 주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결국에는 여동생에서 사실을 털어 놓고, 반정부 인사들에게도 고백을 한다. 그 자신 또한 이중첩자이자 사악한 한 인물이 라즈모프의 고막을 파열시켜 버리고, 라즈모프는 자동차 사고까지 당한다. 커다란 육체적 장애를 안게 된 라즈모프는 러시아의 시골에서 은둔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상의 줄거리를 볼 때 이 작품의 구조는 변형되기는 했지만 [오이디푸스]적 요소를 그대로 담고 있다. 아버지 대신에 친구를 죽게 만들었고, 어머니 대신에 친구의 여동생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죄의식 때문에 자신이 한 일을 고백하고 그 때문에 처벌을 받는 것은 교묘하게 변용하기는 했지만 내 느낌에는 제2의 [오이디푸스 왕]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이 작품의 구조적 측면에서의 오이디푸스적인 요소만을 강조하는 것은 이 작품의 다른 요소들을 사상(捨象)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줄거리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이 작품의 화자이자 할딘의 여동생 나탈리아의 영어 선생님인 '교수'가 이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방식이다. 서구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러시아라는 나라를 서구, 일차적으로는 영국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이 인물은 콘래드의 많은 작품들에서 화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말로'(Marlow)에 비견되는 인물이면서도, 사건의 진행에서는 한 걸음 물러나 대체로 조용한 관찰자의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는 말로와 구별이 되기도 한다(이 부분은 사실 좀 더 공구한 다음 정확하게 써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보수적이고, 무정부주의자나 급진주의자 등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콘래드의 정치적 신념, 더 나아가서는 세계관의 문제 등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전작인 [비밀 요원](The Secret Agent)과도 밀접하다. 


정신분석적인 접근에서 경계해야 하고, 또 풀어야 할 큰 숙제 중의 하나는 '환원주의'일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를 오이디푸스나 전 오이디푸스의 문제로 귀결해 버릴 위험성. 하지만 반면에 프로이트를 인정한다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그 어린 시절이 갖는 중요성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도 없다. 해결책은 아마도 보다 '섬세한 언어적 구성'에 있지 않을까 한다.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힘'이라고 해야할까?


[감상문 옮겨적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