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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조지프/콘래드 전기

조지프 콘래드(조셉 콘래드 - Joseph Conrad) 소개 II

by 길철현 2017. 6. 26.

 
 

열여섯의 나이에 콘래드는 선원이 되기 위해 프랑스의 마르세유에 왔다. 주로 마르세유에서 마르티니크(서인도 제도에 있는 섬으로 프랑스 령)를 운항하는 배에서 허드렛일 등을 하면서 선원 생활을 시작했으며, 그 중간 중간에는 마르세유에서 연극을 보거나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는 등 보헤미언적인 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그의 삼촌이 그에게 매달 일정 정도의 용돈을 보내 주었음에도 씀씀이가 헤펐던 콘래드는 경제적으로 쪼들렸다(나중에 작가로서 명성을 얻고 나서도 그는 계속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렸다). 콘래드는 자신의 회고록과 소설에서 이 때 스페인으로 무기 밀수도 하고, 또 스페인의 왕위를 계승받으려는 돈 카를로스(Don Carlos)의 정부(情婦)인 리타(Rita, 실명은 파울라 Paula)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고 적고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대체로 이 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당시에 실제로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은 도박 등으로 인한 부채 때문에 권총 자살을 기도한 것이다. 가슴에 총을 쏘았는데 큰 부상을 입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그의 소설 [황금 화살](The Arrow of Gold)을 보면 콘래드 자신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리타를 사랑하던 또 다른 인물과의 결투에서 총상을 입는 것으로 나온다. 자신의 자살 기도를 사랑의 삼각 관계라는 환상으로 덮어보려는 시도라고 봐야 할까?). 운 좋게도 심장을 비켜가긴 했지만 만으로 스무 살(1878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버리려고 했다는 것은 그가 당시에 당면했던 현실적인 문제의 심각성보다는, 어릴 때 폴란드에서 겪어야 했던 일들이 큰 정신적 외상으로, 내적인 갈등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이다.  
 
콘래드는 마르세유에 도착한 때부터 거의 20년을 선원 생활을 했다. 평선원에서 삼등 항해사, 이등 항해사, 일등 항해사, 그리고 마지막엔 선장 시험까지 합격하여 선원으로서도 차근차근 경력을 쌓으면서(선원 생활에 따르기 마련인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높은 직책을 맡아 나갔다. 1878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영국 땅에 발을 내디뎠고(이 때만 해도 그는 영어를 거의 몰랐다) 이후 주로 영국 배를 많이 타면서, 1886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영국으로 귀화하였다. 선원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서인도 제도, 인도, 동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등 세계의 곳곳을 항해하였고, 이 와중에 작가가 되기 위해 습작을 많이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독서는 꾸준히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작품 활동을 한 유명 작가로는 사무엘 베케트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 제1외국어도 아닌 제2외국어로, 그것도 나이가 들어서 배운 언어로 소설을 썼다는 것은 정말 특이한 경우라고 봐야 한다. 콘래드는 상당 기간 동안 소설을 쓸 때 프랑스어로 먼저 생각한 다음에 그것을 영어로 옮기는 것이 편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문장에는 프랑스어의 영향이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는 매력적이고 독특하면서도, 때로는 복잡한 자신의 문체로 글을 썼으나, 그의 영어 말투에는 죽을 때까지 강한 외국어 억양이 남아 있었다고도 한다. 그가 외국어인 영어로 작품을 썼다는 사실은 우선적으로는 그가 당시 최강국인 영국을 제2의 조국으로 택한 것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글을 쓰면서 자신이 대면해야 했을 극심한 내적 갈등을 외국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라는 측면도 생각해 볼 수 있다(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내면적 갈등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작품인 [서구인의 눈으로](Under Western Eyes)를 탈고하고 나서 심한 신경쇠약을 앓았다).  
 
콘래드는 자신이 "해양 작가"로 불리는 것을 상당히 싫어 했으나, 그의 작품 반 이상이 그의 선원 생활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해양 작가"라는 명칭은 좋든 싫든 그에게서 뗄 수 없는 꼬리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그의 소설이 단순히 이국적인 풍광을 배경으로 다양한 모험을 펼쳐 보이는 그런 수준을 넘어서서 인간의 내면과 운명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우선 보르네오 섬을 주 무대로 하고 있는 그의 첫 두 작품, [올메이어 우행](Almayer's Folly)이나 [섬들의 추방자](An Outcast of the Islands)는 그가 이곳을 항해하면서 실제로 만났던 인물들에서 그 소재를 따왔다. 이 밖에도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인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은 1890년에 있었던 아프리카의 콩고 강 항해를 직접적인 토대로 하고 있다. 또 ["나르시서스" 호의 검둥이](The Nigger of the "Narcissus")라는 작품의 배 이름은 그가 2등 항해사로 탔던 배의 이름이기도 하다. 선원 생활에서의 경험이 그의 작품의 주축이 된다는 것은 이 외에도 그의 첫 단편 습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검은 항해사"("The Black Mate") 또한 선원들의 이야기이며, 다수의 중,단편은 제외 한다고 해도 후기의 작품 중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는 [그림자-선](The Shadow-Line)은 그가 유일하게 선장으로서 배를 지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889년 가을 콘래드는 한편으로는 선원으로서의 경력을 쌓아나가면서도 작가로서의 자신의 꿈을 향한 본격적인 도전을 해나가고 있었으니, 그 작품이 바로 [올메이어 우행](Almayer's Folly)이다. 콘래드 자신의 말에 의하면, 그가 머물고 있던 하숙집에서 어느 날 아침 무렵인가 이 작품의 첫 몇 페이지를 그냥 써나갔다고 한다. 그는 이 작품을 1894년까지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선원 생활 틈틈이 써나갔고, 그에게 실질적인 아버지였던 외삼촌이 죽고 난 지 두어 달 후에 탈고했다(그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존재인 외삼촌의 죽음 직후에 소설을 완성했다는 것, 그리고 선원이라는 현실적인 직업을 떠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소설가라는 앞날이 불투명한 직업으로 나아갔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좀 더 천착해보아야 하겠지만, 일단은 변호사인 실질적인 아버지에서 벗어나 작가였던 원래 아버지의 길을 잇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외삼촌은 죽은 뒤 상당한 유산을 그에게 남겨 작가로서 출발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도 마련할 수 있었다). 콘래드는 이 완성된 작품을 언윈(Unwin) 출판사에 보냈으며 얼마 뒤 출판이 결정되었다. 선원으로서의 콘래드의 이력이 끝이 나고 작가로서의 콘래드가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III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