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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조지프/콘래드 전기

조지프 콘래드(조셉 콘래드 - Joseph Conrad) 소개 III

by 길철현 2017. 6. 27.



1894년 11월 경 [올메이어의 우행]의 출판을 기다리던 가운데 콘래드는 그의 평생의 반려자가 된 제시 조지(Jessie George)를 만나게 된다. 제시는 외모가 출중하거나 지적으로도 뛰어나다고는 하기 힘든 평범한 여성이었으나, 대신에 젊음이 있었다(그녀는 콘래드보다 16살이나 연하였다). 두 사람은 1년 4개월 정도 교제한 뒤 결혼을 하였고, 신혼부부는 프랑스의 브르타뉴(Bretagne, 영어식으로는 Brittany)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올메이어의 우행]을 필두로 한 작가로서의 콘래드의 이력은, 그가 작가적 스승으로 생각했던 플로베르를 따라, '빠져나가기 쉽고, 다루기 힘든 언어라는 것으로부터 의미를 쥐어짜 내느라'(to wrench a meaning from the slippery, recalcitrant stuff of language)1 고역을 치르긴 했지만, 큰 슬럼프 시기 없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의 작가적인 명성도 작품 활동이 지속될 수록 높아졌는데, 1911년에 출판된 [서구인의 눈으로]를 정점으로 하여 그 이후에 나온 후기 작품들은 그의 필력이 이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하지만 이러한 평가에 반해 그의 후기 작품들을 재평가하려는 시도도 꾸준하다). 콘래드의 대표작으로 주로 언급되는 작품들은 주로 1900년에서 1911년 사이에 출판된 작품들로, [암흑의 핵심](1899), [로드 짐](1900), [노스트로모](Nostromo 1904), [비밀 요원](The Secret Agent 1907), [비밀 동승자]("The Secret Sharer" 중편 1910), [서구인의 눈으로] 등이다. 특히 내전에 휘말린 남미의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한 [노스트로모]는 출판 당시에는 복잡다단한 내용들의 뒤엉킴으로 인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이후 F. R. 리비스 등에 의해 콘래드 최고의 작품으로, 또 가장 뛰어난 정치, 역사 소설 중 한편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그럼에도 이 작품은 그 복잡성 때문에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서구인의 눈으로] 다음에 나온 장편인 [우연](Chance)은 그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평자들에 따라 엇갈린다.


늦은 나이에 작가로 출발한 콘래드는 이후 많은 비평가 및 작가들과 교류를 하였는데, 비평가인 에드워드 가넷(Edward Garnet)과 소설가 포드 머독스 포드(Ford Maddox Ford)와의 관계는 특히 중요했다. 포드와는 세 편의 소설을 합작하기도 하였으나 콘래드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예술적 성취도는 떨어진다.


결혼 후 콘래드는 보리스(Borys)와 존(John)이라는 두 아들을 얻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높은 작가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콘래드는 상당 기간 동안 경제적으로 궁핍하였고(1900년부터 J. B. 핑커(Pinker)가 그의 에이전트를 맡게 되었는데, 경제적으로 쪼들리던 콘래드는 앞으로 나올 작품을 담보로 그로부터 선금을 받았으며 그래서 한 때는 핑커에게 진 빚이 2천 파운드를 넘기도 했다) 신경 쇠약과 통풍 등의 건강 악화로 상당히 고생하기도 했다. 아내 제시 또한 낙상 사고로 두 다리를 다쳐 여러 번에 걸쳐 수술을 해야 했다.


콘래드 생애 후반부의 일 중에서 이 밖에 주목할 만한 사건은 1914년 폴란드를 다시 찾은 일이다. 콘래드는 가족을 동반하여 독일을 지나, 콘래드가 어린 시절 병으로 죽어가는 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크라코프(당시 오스트리아 식민지)도 방문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때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 일단 폴란드의 휴양지로 피신하였던 그의 가족은 2달 가량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가 지인들의 도움으로 빈과 이탈리아를 거쳐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이래 저래 조국은 그에게 좋지 않은 기억을 하나 더 안겨주었다.


콘래드는 희곡 창작에도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1916년 자신의 소설 [승리](Victory)를 비롯하여 몇몇 작품을 희곡으로 다시 쓰기도 했으나, 성공을 거둔 작품은 없었다. 그리고, 1921년 9월(62살)부터는 영국과 미국에서 그가 일일이 [작가의 말](Author's Note)을 붙인 전집이 간행되기 시작했다. 또 1923년에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기도 했다.


콘래드의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미국 방문 1년 뒤인 1924년 8월 3일 당시 66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뜻밖에 급사하고 말았다. 그의 시신은 캔터베리 시립 묘지에 안치되었다.   


 (끝)









  1. Terry Eagleton. The English Novel - An Introduction. Blackwell, 2008. 23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