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나간다는 것, 그것이 처음이고 중간이고 끝이다.]
(이 글에서는 조지프 콘래드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 그리고 그의 전작품을 통독한 다음에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인상들을 개략적으로 써보도록 하겠다. 요즈음 같아서는 이렇게 글을 쓰고 공부를 해나갈 수 있는 삶이기만 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데, 현실의 벽과 공부의 과정에서 부딪히게 되는 좌절감이나 나의 한계 때문에 또 언제 회의감이 찾아올지.)
영국 문학에서 중요한 소설가 중의 한 명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조지프 콘래드(Joseph Conrad)는 그 이력면에서 다른 어떤 작가들보다도 특이하다. 먼저 우리에게 조지프 콘래드로 알려져 있는 그의 본명은 유제프 테오도르 콘라드 (날레츠 [혹은 나웨치]) 코르제니오프스키(Józef Teodor Konrad (Nalecz) Korzeniowski)인데, 이 외우기 힘든 긴 이름과, 또 토박이 성이라고 할 수 없는 코르제니오프스키라는 낯선 성은 그가 평범한 영국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사실 영국 태생이 아니라, 폴란드 출신이다. 콘래드는 1857년에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났을 당시 그의 조국 폴란드는 러시아, 프러시아(지금의 독일), 오스트리아라는 주변 세 나라에 의해 분할된 식민지 상태였다. 콘래드가 태어난 베르디체프(혹은 베르디치우 Berdyczów / 베르드조프)는 당시 러시아가 식민 통치를 하던 곳으로 현재는 역사의 굴곡을 겪으면서 우크라이나에 속해 있다.
다시 말해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우리의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 세대처럼 콘래드도 한 마디로 '식민지의 백성'으로 태어났다. 식민지 백성의 설움이라는 것은 일정 정도는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지만, 식민 지배가 안겨준 고통은 특히 그에게는 엄청나게 큰 '정신적 * 육체적 외상'으로 작용했다. 콘래드의 친가나 외가 모두 상당히 좋은 집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1795년 폴란드가 앞에서 말한 3국에 의해 최종적으로 분할된 후 다수가 독립 운동이나 그와 관련된 문제 등으로 죽었다. 작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도 폴란드의 독립을 위한 활동을 하다 러시아 당국에 체포되어 당시 네 살에 지나지 않았던 콘래드까지 부모님과 함께 러시아의 추운 오지로 유배가게 되었다. 이 유배 생활의 후유증으로 그의 어머니는 1865년, 아버지는 1869년에 죽고 말았고, 콘래드도 잦은 병치레를 했다.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는 고아가 되고 만 것이다.
어린 시절 콘래드가 겪어야 했던 이런 상황들은 이후 콘래드의 행보를 이해하는데 거의 결정적인 단서들을 제공한다. 일차적으로 식민 통치의 당사자인 러시아에 대한 그의 혐오감이나 반감은 명백한 것이지만, 그와 함께 그 대의는 고귀하지만 현실적으로 성취의 가능성이 희박했던 이상주의적인 독립 운동에 대한 회의, 또 무엇보다도 어린 자신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부모님들에 대한 원망과 두려움(어린 나이에 죽어가는 아버지와 단 둘이서 지내야 하는데서 오는 정신적인 고통은 그의 작품 도처에서 변형되어서 나타난다), 그것은 더 나아가 자신의 원래의 조국이라는 것에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다'는 형식으로 표출된다. 그가 폴란드를 떠나 영국으로 귀화하고, 영국적인 것에 특히 찬사를 보낸 것은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에 자신을 의탁함으로서 폴란드에서 극심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생존 자체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이 밖에도 그가 러시아 군대에 25년이나 복무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조국을 떠난다는 것, 혹은 버린다는 것은 그에게 '뿌리를 뽑힌'(déraciné) 존재, 그리고 배신자라는 이중의 정신적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인물(이것은 물론 이후 그의 오랜 선원 생활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배신의 문제 등이 그의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정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부모님과 함께 한 유배 생활과 잦은 병치레 등으로 콘래드는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는 없었지만, 작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읽었으며, 만으로 대여섯 살의 나이에 프랑스어도 배우기 시작했다(그의 아버지가 직접 번역한 셰익스피어와 디킨즈의 작품도 읽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변호사인 그의 외삼촌 타데우슈 보브로프스키(Tadeusz Bobrowski)가 보호자 역할을 맡았다.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아버지와, 현실주의자인 외삼촌의 기질상의 차이는 이후 콘래드의 세계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지나친 단순화이긴 하지만 그의 초기 중편인 [태풍]("Typhoon")의 주인공인 맥훠(MacWhirr) 선장 같은 인물은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상상력도 부족한 다소 무미건조하지만, 자신의 임무에는 누구보다도 충실한 인물이기 때문에, 태풍이라는 위험 상황을 강인하게 이겨나가는데 반해, 그의 대표작 중의 한 편인 [로드 짐](Lord Jim)의 주인공은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인물로, 위급한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 혹은 더 나아가서는 자기 파멸에 이르게 된다. 이 두 부류의 인물을 외삼촌이나 아버지에게 곧바로 대응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 영향력은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1872년 당시 열네 살이었던 콘래드는 모험가의 삶이나 해양 소설 등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보이는 낭만적인 열망으로 선원이 되고 싶다고 말해 친척들을 놀라게 했다. 외삼촌을 비롯하여 친척들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당시 그의 가정교사는 이런 그를 두고 "손 쓸 수 없는, 구제 불능의 돈키호테"(an incorrigible, hopeless Don Quixote)라고 말하기도 했다).
(II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