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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문학작품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소론(070917)

by 길철현 2017. 9. 9.


Austen, Jane (071017)

 
(흐릿한 기억과 부족한 공부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제인 오스틴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어제 본 [Becoming Jane]이라는 작품은, 극적 갈등이랄까, 인물의 성격 부각(특히 Whistler의 경우)에 있어서 좀 더 섬세함이 보이지 않아, 작품이 기승전결의 구성을 따르지 못하고, 늘어지는 느낌이 아쉽다.)
 
제인 오스틴은 당시의 급격한 사회적인 변화(산업혁명,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 등)와, 문학에 있어서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조류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신고전주의적(새뮤얼 존슨, 애디슨 등) 전통이나 사고, 그러니까, 사회 속을 살아가는 인간이 지켜야 할 적절한 예법, 도덕, 윤리 등을 강조하고 유지하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이러한 특징은 그녀의 작품이 그녀 자신이 말한 것처럼 ‘시골 중류층의 서너 집’을 배경으로 하여, 여자 주인공이 ‘어떻게 행복한 결혼을 성취’하는가 하는 그녀 소설의 소재와 주제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사실, 이 당시 오스틴이 그리고 있는 계급의 여성들에게는 ‘두 사람의 성숙한 남녀 사이의 애정과 그리고 경제적인 기반이 확보된(사랑과 현실의 문제--감정과 이성, 분별과 감수성 이런 것들이 중요한 문제이다) 바람직한 결혼’ 외에는 현실적으로 행복을 추구할 길이 없었다는 점에서(그것이 갖는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커다란 사회구조적 모순--사회 자체가 남녀불평등을 기반으로 성립되어 있다는--을 전제조건으로 깔고 있다. 오스틴이 이 모순을 순순히 받아들이거나, 비난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regulated hatred), 이러한 사회적 기본 모순에 대해, 울스톤크래프트처럼 소리 높여 싸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모순 속에서 쓰러져 가는 개인들--테스나 주드처럼(이들이 처한 문제는 또 다른 사회적인 문제이지만)--의 모습을 그리기보다는 그러한 불합리성 속에서도 어렵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을 찾아내는, 여주인공들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녀는 현실주의자이고 보수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고 일단은 봐야 할 것이다(이 문제는 사실 섣불리 판단할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단 이 시점에서 나의 결론은 그렇다. 그녀가 추구하는 이상 사회라는 것이, 남녀의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모순을 해소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그 모순에 눈을 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흔히 Great Chain of Being이라고 말하는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에 요구되는 행동 규범에 따라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계, 그러니까, 산업혁명으로 인해 신분이나 사회구조가 변화되고, 물질주의에 휩싸여 살아가는 당대 이전의 세계의 그것과 더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또 여기서 하나 짚어 보고 싶은 점은 [오만과 편견]에서의 샬롯 루카스의 결혼이다. 이 여성은 결혼의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나이와 외모, 재산 등에서 모두 불리한 조건), 인간적으로 결함투성이인 콜린스와 결혼을 하고 만다. 샬롯의 결혼은 여주인공 엘리자베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데, 분별력 있는 여성으로서 샬롯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과, 결혼을 해서 경제적인 안정을 찾는 것, 둘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후자를 선택한 것이라고 볼 때, 샬롯의 선택은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낳은 하나를 선택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당시 중류 계급의 여성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흔한 것으로는 ‘가정교사’나 ‘학교 선생님’인데, 이것도 사실은 자신의 신분을 낮추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을 쓰는 것이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특수한 경우이다.)
그녀의 세계관이나 윤리관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그녀의 소설이 갖는 ‘문학적인 완결성,’ 내지는 ‘단아함’이다. 좀 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그녀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매력이다. (엘리엇이 한 말,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 시점에 맞게 바꿔 인용해 본다면, ‘우리가 어떤 문학 작품이 위대한가 아닌가 하는 점은 문학의 잣대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작품이 문학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문학적인 잣대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제인 오스틴은 헨리 필딩 류의 작가 전지적 시점의 소설 기술과, 또 리차드슨의 섬세한 성격 묘사 둘 다를 변증법적으로 잘 통합해낸 소설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여주인공들, 발랄하고 경쾌한 면이 돋보이는 엘리자베스(당당함도 갖춘), 에마(실수가 많은, 그러면서 성장해 가는)나 이와 반대편에 있다고 할 침착하게 사리를 따지는 인물, 패니 프라이스나 앤 --([설득]) 등은 우리의 기억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엘리노어와 매리앤도 특색 있는 인물들이다.) 제인 오스틴은 또, 그녀의 작품을 통해, 주인공이나 그 주변 인물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상당 부분, ‘어른이 어른다움’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어른으로서 요구되는 품성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예는 무수히 많은 데, [오만과 편견]은 이런 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베넷 부부, 레이디 캐서린 등이 그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이에 대조되는 인물들은 가드너 부부이다. 그리고, [맨스피드 장원]에서의 레이드 버트램, 노리스 부인, 또 더 나아가서는 토마스 버트램 경 자신에게도 이러한 비난은 이어진다. 가장 미묘한 비난은 [설득]에서의 앤의 러셀 부인에 대한 비난일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당대에는 커다란 인기를 모으지는 못했으나, 영국 소설의 진정한 대가 중의 한 명으로 우리의 관심과 주목을 끈다. 그녀의 작품이 지니는 힘에도 불구하고 굳이 비판의 잣대를 가져댄다면, 그녀의 소재의 폭의 협소함이 읽는 사람에게 답답함을 안겨 준다는 점과, 그녀의 세계관이 궁극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으로 띠고 있다는 점이 이성중심주의이자, 인간의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성향을 포용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이다(이 부분은 현재의 나의 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