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e, Oscar, The Picture of Dorian Gray,
<촌평>
오스카 와일드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는지 정확히 집어내기란 쉽지 않다. 밀과 러스킨, 이 두 사람의 예술관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미의식>과 인간의 <윤리 의식>의 관련성 내지는 비례성을 주장한 반면, 와일드에 와서는 이 미의식의 독자성이 강조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의식> 혹은 <미의 본질>이라는 것이 인간의 윤리나 도덕률과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점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그의 소설의 핵심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의 삶의 비도덕성, 쾌락추구, 악행 등에 회한을 느끼고 후회하는 것이나, 혹은 이와 반대로 고매한 도덕의식 등이 미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부각시켜 볼 수 있다. 피터 셰퍼(Schaffer)가 <아마데우스>에서 고심한 문제는 크게 볼 때 천재성과 평범함의 문제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미적감각>이라는 것과 <도덕>이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와일드의 세계관은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많고, 소설 자체로 보았을 때에도 이 작품은, 소설적인 완성도에서보다는 와일드 자신의 예술관의 피력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헨리 경의 <반어적 경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뒤집어 보기>라고 해야 할--그 대표적인 예는 ‘천박한 사람들만이 미는 외면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는 부분이 될 것인데--부분의 과잉은 읽는 사람을 몹시도 거북하게 한다. 다시 말해 <유미주의>적 주장에 공감하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최소한도의 <예술의 독자성> 혹은 그 <가능성>의 문을 닫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T. S. 엘리엇이 ‘우리가 어떤 문학 작품이 문학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그 문학의 잣대에 따라야 하겠지만, 그것이 위대한 작품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문학 내의 기준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문학 작품이라는 말이 실제로는 시였던 것 같다)’라고 말한 것처럼, 예술을 삶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무모한 시도가 아닌가 한다. (유미주의의 근거/예술에 있어서의 도덕 과잉)
--전체적으로 빅토리아 조의 도덕 과잉에 대한 반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