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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노무현입니다 - VOD (170904/10)

by 길철현 2017. 9. 10.


이 영화는 노무현 전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2백만 가까운 관객이 보았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거의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당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그와 가까웠던 여러 인물들, 지금 현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이거니와, 유시민, 또 노무현 전대통령의 운전기사였던 분, 심지어는 노무현 전대통령을 감시하던 국정원 직원 등 그 분과 가까웠던 인물들의 인터뷰, 그리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장례식 장면 등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성공은 이창재 감독의 짜임새 있는 구성에 힘입은 바도 크지만, 노무현 전대통령이 아직도 우리의 관심사의 중심에 있으며, 또 그 분을 따르고 존경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영화는 영화 자체보다도 '인간 노무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또 그 분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에 더더욱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사실 나는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초선 국회의원으로 5공 청문회 때 송곳 같은 질문들로 우리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해준 것은 나의 뇌리에 어느 정도 강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인권변호사로 활동을 한 이력에 대해서는 아주 시간이 오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나는 그의 당선 확률을 그다지 높게 보지 않았고, 권영길에 투표했다(이회창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던가). 탄핵의 위기에 몰리고, 집권 후반기에는 지지율이 10퍼센트대로 떨어지기도 하고.


그렇지만, 2009년 뇌물 혐의로 수사를 받던 도중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대통령직은 무사히 임기를 마치기도 힘든 자리이자, 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자리였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분의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우리 현대사의 정치적 문제점이 응결된 지점이 아닌가 한다.


며칠 전 집 근처에서 박근헤 전대통령의 탄핵 무효(?)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몇몇 나이 든 분들이 상당한 공감대를 표시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라는 것에 대해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옳고 그른 것의 문제가 동화나 오락 영화들이 보여주듯 이분법적으로 단순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한 동안 우리 사회에서 마이클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숙고해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정의]라는 것이 하버마스나 촘스키 등이 이야기하듯 보편성을 띤다고 보기보다는, 니체나 푸코 식으로 정의가 당대의 권력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 쪽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숙고했다고 할 수는 없다.)


(약간 여담이긴 하지만 한 동안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글을 몇 권 읽으면서 느낀 것은 그의 집권 과정이 쿠데타였고, 정치적으로는 독재자였지만, 그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부분까지 평가절하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노무현 전대통령의 연설을 몇 개 더 보았는데 - 노무현 전대통령이 정치가로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유시민도 지적하고 있듯이, 그에게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는 점일 텐데, 도덕 교과서적인 말이라도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올 때에는 뭔가 다르게 와닿고, 사실이든 아니든 그의 말에 진정성이 배여있다는 것이리라 - 그 중에 특히 기억나는 말은 '내가 꿈꾸는 사회는 살맛이 나는 세상이 되는 것'인데 이러한 기대가 지나치다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그런 세상'이라는 말이다. 그런 말을 한 당사자가 결국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아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고 말았다는 것은 참으로 크나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