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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박열 - 이준익(VOD-170904)

by 길철현 2017. 9. 12.

이준익 감독은 많은 사람들에게 천 만 관객을 돌파한 [왕의 남자](2005)의 감독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이 영화를 처음부터 다 보지는 못했다. 케이블에서 중간부터인가 보다가, 그것도 다 보지도 못했던 듯하다. 또 이준익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 다음 해에 나온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도 나름대로 인상 깊었다. 한물간 대배우와 그의 매니저와의 진한 우정을 그린 남성 버디(요즘말로 하자면 브로맨스)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약간 어색한 점도 없진 않았으나, 그 공간적 배경이 내가 좋아하는 곳 중의 하나인 "영월"이라는 점에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즐거운 인생](2007)은 후반부만 보게 되었는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핵심 주제로, 음악을 추구하는 인물들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즈]와 유사한 면이 있으면서도 좀 더 코믹하고 경쾌한 작품이 아니었나 한다. 2013년에 나온 [소원]은 어린 소녀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한 가족에게 닥쳐온 엄청난 시련과 상처를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준 영화였다.


이준익 감독은 2014년 [사도]부터 이 영화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실존 인물들을 소재로 해서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예전부터 있어온 것이고, 요즈음에는 팩션이라고 불리는 장르의 영화들이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그 대표적인 예는 [광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부터 [동주]를 거쳐 [박열]에 이르기까지 - 두 글자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재미를 붙였나? 다음에 나올 그의 작품 제목도 [변산]으로 두 글자다. 다만 이 영화는 그 소재가 역사적 실존 인물은 아니다 - 이 역사극들이 이전의 대표작인 [왕의 남자]와 크게 차이가 나는 점은 무엇보다도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여 굉장히 '사실적'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그의 다른 역사극인 [황산벌]이나 [평양성]에서는 역사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쓰기 전에 이준익 감독의 영화 전반에 대해서 내 지식이 닿는 대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은 이상하게도 그의 영화를 보고 감상을 적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이렇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개략적으로 한 번 훑어보는 것이다. 사실 [사도]는 왕인 아버지가 세자인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크나큰 비극을 소재로, 영조(송강호)와 사도(유아인)의 열연과, 당시의 시대상과 두 인물의 내면적 갈등, 더 나아가 남편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아내, 아버지의 죽음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훗날의 정조 등의 모습이 지나친 감상으로 흐르지 않고 우리의 폐부에 아프게 와닿았던 영화라, 그 영화에 대해 몇 자 적고 싶은 마음에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화성의 "융건릉"까지 찾아갔으나, 실제로 글을 쓰지는 못했다.


특이하게 흑백으로 촬영한 [동주]는 국민 시인으로서의 윤동주의 삶과, 그의 고종사촌 형인 송몽규와의 우정을 수묵화처럼 담백하면서도 당시의 시대적 아픔을 감정을 절제하는 가운데 잘 그려낸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망 원인이 2차 세계 대전 막바지에 일본인들이 수감자를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점은 이전에는 잘 모르고 있던 사실이라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박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 아니면 나만 잘 모르고 있었나 - 독립투사 '박열'은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낯선 인물이었다(그렇게 되고만 이유는 1949년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육이오 전쟁의 와중에 납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관동 대지진이라는 엄청난 자연 재해 앞에서, 그에 따른 민심의 불안을 약자인, 당시 일본에 와있던 식민지 백성 조선인에 대한 학살로(잘 믿기지 않지만 이 당시 6천 명 이상의 조선인이 희생되었다고 한다)로 막으려 했으며, 박열 일당이 일본의 덴노(일왕)를 살해하려 음모를 꾸몄다는 구실로 그와 그의 동거녀인 가네코를 구속하고 재판한 것은 악화된 세계의 여론을 무마하고, 조선인 학살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였다.     


이준익은 1920년 당시의 일본 내 조선인들의 사회주의적 내지는 아나키즘적 흐름을 다소 코믹한 정조로 그려나간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일본 내에서도 당시에 사회주의적인 흐름이 강했으며 적어도 그들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에 동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박열'을 옹호*변론했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군함도]에서 일본인들은 적극적인 조선인 학대자이거나 아니면 말 없는 방관자로 그려지고 있는 것과 잘 대비가 된다).


영화를 보면서 놀란 점은 박열이나 가네코나 자신들이 믿는 바를 향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가볍게 여겼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거의 조작이라고 봐야 할 자신들에 대한 혐의를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신념을 알리는 기회로 삼았다. 그것은 두 사람이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박열의 경우는 식민지 백성으로서 느꼈던 좌절이나 울분, 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 등이 결집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박열의 동거녀였던 가네코의 경우에는 일본인으로서 일본의 덴노 제도 자체에 반대를 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의 뿌리를 정확하게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박열의 동지로서 또 그녀가 지녔던 신념의 소산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으로부터 한시라도 자유로울 없지만, 요즈음 특히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근대적 국가의 탄생 이후 때로는 국가 자체가 가장 큰 범죄자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이런 생각의 배후에는 촘스키의 글을 읽은 영향이 크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의 차이는 사상적 갈등에서부터 심하게는 물리적 충돌로까지 이어진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쉽게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권력으로 법을 오남용하는 일은 두 눈 부릅 뜨고 막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법 자체의 정당성 여부도 항상 고민해야 한다.


힘이 없기 때문에 일제에 나라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 당하거나 시련을 겪어야만 했던 상황. 그리고 이어진 육이오 전쟁과 분단의 상황.


'박열'은 조선의 식민지 상황과, 또 조선인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현실 앞에서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을 한 인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며, 이준익은 이 영화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한국인의 입장에서) 가감 없이 담아내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