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논문 자격 시험 중 하나인 독일어 시험을 보고 난 뒤, 오랫만에 탁구도 치고, 나들이라도 갈까 하다가 저녁에 누군가를 만나기로 해서 본 영화.]
지금 이 영화는 천이백만 명이라는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데,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전체적인 인상은 송강호의 또 다른 흥행작인 [변호인]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발포 명령자 등 많은 부분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그래도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 회복과 보상이 어느 정도나마 된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80년 당시 대구에서 살던 나는 중학교 2학년의 어린 나이였고, 이 영화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보도 통제가 철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광주의 참상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알게 된 것은 대학교에 들어간 다음이었다.
그 동안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책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또 다수의 소설가와 시인들이 이 광민운을 소재로 하여 작품을 썼다. 그 중에서도 이 광민운을 총체적으로 담아내려 가장 애를 쓴 작가는 임철우가 아닌가 한다. 다섯 권이라는 상당한 분량으로 된 [봄날]은 이 영화처럼 단순한 선악의 구도에서가 아니라, 광민운을 우리 현대사의 커다란 맥락이라는 측면에서 위치를 설정하려 했다.
광민운을 소재로 한 영화도 몇 편 있었는데, 최윤의 중편 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영화화 한 이정현 주연의 <꽃잎>은 워낙 오래 되어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괜찮은 영화였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광민운을 중심 소재로 하지 않았으면서도 광민운이 담고 있는 비극성을 극적으로 재현해 내고 있는 작품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다. 연속적인 플래시백 기법이라는 다소 독특한 기법으로 한 개인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결국 마주치게 되는 광민운의 비극은, 광민운 당시 계엄군의 작전명을 제목으로 한 <화려한 휴가>가 계엄군의 진압과 시민군의 저항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도, 몇 곱절이나 더 아프게 폐부를 찔렀다.
이번에 나온 <택시 운전사>는 이 영화보다 며칠 앞서 개봉된 <군함도>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에다 영화적 상상력을 보탠 그런 작품이다. <군함도>와 다른 점이라면 실존 인물을 영화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것. 이 두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공통점은 <군함도>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강옥(황정민)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만섭(송강호)도 처음에는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인물에서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의' 혹은 '정의'를 위해 맞서 싸우는 '투사'로 전환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광민운을 소재로 한 기존의 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 <박하사탕>을 예외로 할 때 - 피해 당사자인 광주 시민이 아니라, 서울의 택시 운전사라는 소시민과 외국 기자라는 외부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던 만섭이 광주의 참상을 목도하게 되면서, 서서히 인식의 전환이 일어 나고, 결국에는 '저항'에 동참하게 되는 과정이 이 작품이 지닌 극적인 재미와 흥행에서 성공을 거둔 요인이 아닌가 한다. (영화적 안목이 별로 없어서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들지만 송강호라는 배우가 지닌 매력 혹은 마력 또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80년대의 서울이라고는 잘 생각이 들지 않지만 독립문 옆을 지나면서 조용필의 경쾌한 '단발 머리'를 따라부르는 장면만 봐도 우리로하여금 영화의 전개에 대해 큰 기대를 품게 해주는 매력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약점은 아무래도 상황을 너무나도 단순화시켜서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도로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많은 서사가 허용되지 않는 영화의 특성상 사람들은 단순 명료하고 동화적인 권선징악을 선호하고, 흥행이라는 요소를 무시할 수 없는 감독들은 사람들의 그런 취향에 영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압군, 혹은 계엄군을 늑대처럼, 일반 시민들은 힘 없이 당하기만 하는 양으로만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당시 계엄군의 폭압적인 진압에 맞서 시민들도 거칠게 저항했고, 계엄군과 시민군 사이의 교전이 있었음에도 영화에서는 시민들이 힘 없이 당하는 모습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나 영화의 막바지 부분에서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크레취만)와 만섭이 광주를 벗어나는 장면에 그들을 쫓던 사복 경찰의 차와, 또 두 사람을 돕던 광주의 택시 기사들이 택시를 몰고 나와 추격전을 하는 장면은 영화의 극적인 재미를 위해서는 모르겠으나, 광민운이라는 역사적 사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촬영한 외국인 기자를 소재로 한 영화가 졸지에 신빙성 없는 액션- 멜로드라마로 추락할 위험마저 보여주었다.
상업 영화가 안고 있는 한계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현실을 단순화시켜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도로 만들고, 관객들로 하여금 선의 자리에 있다는 동일시의 환각과 안도감을 주는 수준에 머물고 마는 것은, 자칫 또 하나의 역사 왜곡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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