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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조지프/어둠의 심연

Chinua Achebe- An Image of Africa: Racism in Conrad's HD (Norton 3rd)

by 길철현 2017. 10. 26.


* Chinua Achebe- An Image of Africa: Racism in Conrad's HD (Norton 3rd)


- 아체베의 이 논문은 콘래드 비평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글이다. 적어도 2006년에 나온 [노튼 4판]까지에서는 이 작품과 콘래드의 인종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포스트콜로리얼리즘]적인 접근이 비평의 주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콘래드는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으나, 인종주의의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중론으로 보인다. 아체베의 논문은 인종주의 문제를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지만, 콘래드의 인종주의를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는데, 앞으로 글을 더 읽어나가야 한다.


[180330 - 아체베의 글은 우리가 거기에 크게 공감을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콘래드 비평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일단 큰 의의를 지닌다. 아프리카 인으로서 말로가 보여주는 인종주의적 태도에 아체베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말로의 태도와 콘래드의 그것을 쉽게 동일시하는 것 또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체베의 분노는 이 두 관점의 차이를 너무 쉽게 간과한 것이 아닌가 한다.


The primary narrator is Marlow but his account is given to us through the filter of a second, shadowy person. But



if Conrad's intention is to draw a cordon sanitaire(방역선) between himself and the moral and psychological malaise of his narrator his care seems to me totally wasted because he neglects to hint however subtly or tentatively at an alternative frame of reference by which we may judge the actions and opinions of his characters. It would not have been beyond Conrad's power to make that provision if he had thought it necessary. Marlow seems to me to enjoy Conrad's complete confidence -- a feeling reinforced by the close similarities between their two careers.


[암흑]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말로가 사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을 펼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들 중 다수는 모순적으로 비친다는 점이다(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의 삶의 실제 모습과 더 가깝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이 작품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단적인 예로 말로는 거짓말을 무엇보다도 싫어 한다고 말해놓고는, 커츠의 약혼녀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만다. 이 작품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도 중요한데, 아체베는 말로의 인종주의적 표현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현재 시점에서 가장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중의 하나는 이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어둠'이 상징하는 바가 아프리카나 아프리카 인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인가, 혹은 문명이라는 것이 인위적이고 찰나적인 것인데 반해 자연적 상태, 문명이 미치지 않은 원시 상태가 기반이고 언제나 문명을 흡수해버리는 그런 힘을 지닌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말로는 자연을 '악'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또 당시 팽배해 있던 유럽인들이 비 유럽인, 혹은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타락한다는 생각과는 어떻게 다른가? (문명의 상태이든 자연의 상태이든 중요한 것은 '억제력'인가? 커츠에게는 그것이 부족하다는 것?))]


 



[인용]


(251) [서구의 아프리카 왜곡] it is the desire in Western psychology to set Africa up as a foil to Europe, as a place of negations at once remote and vaguely familiar, in comparison with which Europe's own state of spiritual grace will be manifest.

[서구의 욕망이나 필요와 연결. 부정적인 면을 담지하는 곳]

(252) one of the great stylists of modern fiction and a good story-teller into the bargain

(252) HD projects the image of Africa as "the other world" the antithesis of Europe and therefor of civilization.

아프리카를 "다른 세계로" 유럽 혹은 문명의 반명제로 제시. 인간의 지성과 세련됨이 의기양양한 야수성(triumphant bestialith)에 의해 조롱받게 된다.

(커츠는 애초에 왜 아프리카에 오게 되었는가? 돈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는가? 아체베는 커츠의 타락이 아프리카라는 지역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고 있지만, 콘래드의 작품 모두에서 주인공의 타락이나 죽음은 지속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콘래드의 비관적인 인생관, 혹은 당대의 19세기 말의 비관주의적 세계관과 더욱 밀접한 연관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53) 아프리카는 silence와 frenzy의 땅으로 묘사, inscrutalbe, unspeakable 등의 형용사의 남발 (F. R. Leavis의 지적 - 아체베는 여기에 문체의 문제 이상의 것이 있다고 이야기.)

(253) a black and incomprehensible frenzy. The prehistoric man

[콘래드의 아프리카나 아프리카 인의 묘사에는 당시 유럽인들이 지니고 있던 오해나 고정관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 분명 있긴 하다. 그런 점에 초점을 맞추어서 비판적으로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거기에는 또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254) 흑인들을 동물의 이미지로 묘사(화부 - a dog in a parody of breeches and a feather hat walking on his hind legs)

(255) 커츠의 정부와 약혼녀의 모습 비교. (아프리카 정부에게는 인간적인 표현을 주지 않고 약혼녀에게는 주었다는 점. 특히 언어를 주지 않았다는 점.) [이 부분은 별다른 공감대를 자아내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약혼녀는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런 존재인 반면에, 커츠의 정부는 생명력에 넘친다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Jeremy Hawthorn의 논문이 이 부분을 잘 다루고 있다.]

(256) 식인종들에게 언어를 준 것(말 못하는 짐승으로서의 이미지와 직접적이고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 중에서 후자를 택함.)

[아체베의 이 글에는 콘래드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어서 일방적인 해석이 되는 면이 있다. 콘래드의 인종주의가 도를 지나쳤는가? 아니면 당대의 흐름을 좇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 Weighing the necessity for consistency in the portrayal of the dumb brutes against the sensational advantages of securing their conviction by clear, unambiguous evidence issuing out of theri own mouth Conrad chose the later.

(256) 콘래드와 말로의 거리의 문제. (아체베는 "말로는 두 사람의 이력의 유사성으로 더욱 강화되는데, 콘래드의 완전한 신뢰를 얻고 있는 듯히 보인다고 적고 있음.) [이것은 이 작품의 형식을 생각해 볼 때에도 너무 쉽게 단정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또 한 명의 화자가 더 있으며, 거기다 콘래드가 분명 말로의 말이나 행동을 아이러니컬하게 제시하고 있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256) 슈바이처의 행적과 콘래드의 자유주의(liberalism)

(257) JC was a thoroughgoing racist. (bloody) 이 부분에서 아체베는 콘래드를 결정적으로 못 박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아체베의 지적이 나오기 전까지 콘래드의 "인종주의"에 대한 지적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그 점에서 아체베의 이 글은 콘래드 비평의 큰 전환점이 된다.

(257) 아프리카가 인간적 요소로서의 아프리카인을 제거한 배경으로 된다는 것. (이 이하 부분 잘 볼 것)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인의 비인간화(dehumanization)

- The real question is the dehumanization of Africa and Africans which this age-long attitude has fostered and continues to forster in the world. And the question is whether a novel which celebrates this dehumanization, which depersonalizes a portion of the human race, can be called a great work of art.

(258) 콘래드의 흑인에 대한 반감(antipathy)은 특이하고 지나친 면이 있다는 것. (이 부분은 앞의 말과 다소 모순된다. 아프리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유럽인들의 미신이라면 콘래드의 그러한 태도는 특이하다기 보다는 일반적인 것 아닌가?)

(258) A certain enormous buck nigger [이 부분은 Victory의 Author's Note에 나오는 것. Pedro의 이미지를 이 흑인의 이미지에서 따왔다고 함.]

(259) Bernard C. Meyer의 전기에도 흑인에 대한 콘래드의 태도에 대해서 한 마디도 없음.

(259) 여행을 직접 한 사람은 콘래드지만 콘래드처럼 황달이 걸린 눈으로 본 증거들은 믿을 수 없음. (아마도 내가 글을 쓸 부분은 여기인 듯하다. 왜 inner station으로 들어가면서 콘래드는 작품의 앞 부분에서 보여주었던 흑인의 참상에 대한 동정적인 시각에서 아프리카를 신비화하는 쪽으로 흐르고 말았는가? 그것이 콘래드의 무의식과 연결이 되는 지점인가?)

(261) 서구 문명의 불안정성은 아프리카와의 비교를 통해 지속적인 확인이 필요한가? (아프리카는 유럽에게 있어서 도리안 그레이에게 있어서 초상화와 같은 역할. 부정적인 면을 담는 창고?)

잘못된 생각들을 버리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

(262) 콘래드는 제국주의의 착취를 보고 비난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자신의 인종주의적 시각은 보지 못하고 있음. [이 부분은 콘래드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구인들의 공통적인 문제]



[Caryl Phillips와의 대화 :Out of Af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