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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조지프/어둠의 심연

박상기. [콘래드의 독특한 아프리카 재현]. 동인

by 길철현 2017. 10. 29.


* 박상기. [콘래드의 독특한 아프리카 재현]. 동인


- 아체베의 주장이 "아프리카의 민족주의를 주장하기 위하여 제국주의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전제하고 답습"하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콘래드에게 보다 문제 되었던 것은 당시의 '허무주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 '허무주의'를 표현하기 위해 콘래드는 '인상주의' 내지는 '상징주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논지인데,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이 많다.


(160) 세기말적 허무주의

세기말적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유럽인이 매우 낯선 아프라카에 왔을 때 겪은 일종의 "문화 충격"

(160) 아체베의 주장 - 아프리카의 민족주의를 주장하기 위하여 제국주의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전제하고 답습.

(160) [콘래드]는 산업화된 유럽과 대조하여 아프리카를 '장구한 시간'과 '광활한 대지'로 표현.


1. "이중의 의미 상실"

(161) 프레드릭 제임슨: (유럽 도시에서의 경험이)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하여 유럽인이 물화되는 과정에서 겪는 의미 상실. 이 물화 과정에서 모든 인간적 의미는 추상적 양화로 전화된 경제적 가치에 의해 대체되어 의미의 상실을 겪음. 유럽의 도시 문명에 기여한 경제적 배경인 식민지의 경험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무엇인가 설명되지 않은 미완의 상태로 끝남. (산업화와 식민화)

(162) 기존 가치관의 붕괴로 인한 의미 상실.


2. "지연된 해독"과 "역사적 인상주의"

(163) 와트 : 콘래드는 지연된 해독의 표현 방식을 통하여 감각적 경험의 이해에 선행하는 "사건과의 강렬한 감각적 접촉"을 보여주려 함.

콘래드의 작품에서 감각적 지각의 이해보다 그 원인인 감각적 인상 자체를 중시하는 "문학적 인상주의"를 발견.

(164) Bruce Johnson : "역사적 인상주의"

경험과 이해의 가변성과 상대성. 감각 인지의 원초적 상태를 후설의 "판단 중지"와 연결.

(164) 상징주의. 아이데거적.

(165) 와트: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의 관계를 "공생적 관계"로 규정.

인상주의를 표현 방법의 "감각적" 요소로, 상징주의를 표현 내용의 "추상적" 요소로 설명.

(166) 콘래드가 소설에서 보여준 것은 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구체적 삶에 대한 인상주의적 표현과 그것의 숨겨진 의미에 관한 추상적 성찰을 위한 상징주의적 표현의 절묘한 결합.

(166) 콘래드는 인생을 철저히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설명. 자신의 문학이 인생의 변화에 적합하도록 주제나 표현 방식에서 계속 변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

(167)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인상에 따른 감각 인식 자체보다 "살아있고 고통 받는 인간의 세계", 즉 인간의 감각을 통해 "보이고 만져지는 세계"에 관한 구체성. 경직된 사고가 변하는 세계를 설명할 수 없듯이 추상적 사고는 구체적 세계를 설명하는 데 한계를 가짐.

(169) 콘래드는 "명시성"이 예술 작품의 매력을 창조하는 "암시성"과 "환상"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치명적.

(169) 콘래드에 의하면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가 변하고 그 결과 그것에 의존한 사고와 사실이 변한다. 반면에 인간의 존재에 근거한 예술은 심오한 감동을 통해 더 지속적인 것이 된다.

(169) 이해할 수 없는 허무주의적 의미 상실의 상황을 재현하려 할 때 합리성에 바탕을 둔 리얼리즘보다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의 표현 방식이 더 적절.


 3. 역설적 상황의 심미적 표현

(170) 합리성을 강조하는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많은 비평가들은 "설명이 불가능한", "이해라 수 없는", "신비로운" 같은 불분명하고 감성적인 단어들이 콘래드의 소설에 만연해 있음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런 단어들이야말로 유럽의 세기말적 허무주의를 경험하고 매우 이질적인 아프리카에 온 유럽의 지성인이 겪는 가중된 인식의 혼란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171) Patrick Brantlinger :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콘래드가 "허무주의"에 대해 너무 집요하게 성찰함으로써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라는 중요한 문제를 간과.

(171) 대부분의 유럽인이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오는 것과 대조적으로 말로우는 유럽의 아프리카 진출이 가진 근본적 의미를 밝히려 한다. (과연 그런가? 말로가 아프리카로 간 것에 원래부터 그런 의미가 있었던가? 직장을 구하는 일환이 아니었는가?)

(173) 전통적 모험담에서 모험을 통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것을 통해 성숙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모험담은 합리적 이해를 바탕으로 점진적 발전을 추구하는 계몽주의 전통을 따른다.

(175) [조이스와 달리] 콘래드는 잘 알지 못하는 식민지 아프리카를 인상적이거나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데 주력. 결정적 순간에 전체의 부정적 정서를 깨닫게 하는 것. (이것도 받아들이기 힘듬.)

콘래드의 독특한 역설적 표현 방식은 세기말적 허무주의와 식민화에서 발생한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이중적 의미 상실의 상황에 매우 적절.


4. 장구한 시간

(176) 원초적 시간으로의 회귀는 후에 모더니즘에서 발전의 폐혜에서 도피하려는 욕망의 표현인 원시주의나 합리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무의식적 욕망의 표현인 초현실주의의 형태로 나타남.

콘래드는 아프리카의 시간을 너무 멀리 떨어져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없는 인류의 무의식에 오랫동안 잠재된 원초적 과거의 시간으로 표현.

(178) 순환론적 시간관 - 직선적 시간관

(178) 문명발전론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인간의 삶은 오랜 지구의 지속적이고 순환적인 운동 속에서 단지 순간에 불과하다. 또한 반복된 순간으로서 영국이 한 때 로마의 식민지였듯이 아프리카는 지금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79) 아프리카가 보여주는 극도의 이질성은 유럽인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서 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전제하는 제국주의가 주장하는 문명과 야만 같은 상대적 우월성을 불가능하게 한다.


5. 광활한 대지

(182) 침략자인 유럽인의 궁극적인 적은 그들에게 저항하는 아프리카인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그들이 죽거나 물러가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의인화된 아프리카의 광활한 대지

(183) 콘래드는 허무주의와 식민주의에 의해 가중된 혼란의 상황에서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오직 순간적인 깨달음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런 특수한 시대 상황을 간과한 채 아체베는 단지 제국주의의 전제인 문명과 야만의 대조에 근거하여 콘래드의 소설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