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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진혼곡

by 길철현 2016. 4. 14.

무서움이 폭포수처럼 그대 위로 쏟아져 내릴 때
그대, 그제서야 홀로 세상의 변경에 서서
삶의 심연과 마주하게 되리라
별들은 뜻 모를 말을 쉴 새 없이 주절거리고
어디선가 나직이 그대를 부르는 소리
그대의 귀를 뚫고 온몸을 타고 돌지만
정작 그대를 부르는 이는 아무리 둘러 보아도
보이지 않지 보이지 않게 그대를 뒤쫓는 것들을 피해
세상의 변경에서 변경으로 달아나 보지만
그대, 언제나 제자리임을 깨닫게 되지
그대, 사슬에 묶인 몸임을 뒤늦게 알게 되지
 
* * *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에 슬쩍 구멍 안에 손을 넣어 보았지요 그 다음엔 다른 손도 아예 온몸을 밀어 넣었어요 무서운 속도로 미끌어져 내려가는 가운데 구멍이 점점 더 커져가는 걸 보았지요 구멍이 그렇게 검을 줄 구멍이 그렇게 깊을 줄 상상이나 했겠어오 내가 구멍일 줄 
 
 
* '처음에는' 이후 구절은 주디스 게스트(Judith Guest)의 소설 "보통 사람들"에서 주인공 콘래드의 말에 많이 빚지고 있다.. 형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 그는 자살을 기도하는데 그때  상황을 여자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건 구멍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는데 계속해서 점점 더 커지지, 벗어날 수가 없어. 그런데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게 너 안에 있고, 그게 너야, 그러니까 넌 올가미에 걸린 거야, 그럼 끝이지. (필자 번역)
(It was like falling into a hole and it keeps getting bigger and bigger, you can't get out. And then all of a sudden it's inside you, it is you, and you're trapped, and it's all over.) 
 
(20000719)
(20230901)
 
 
 
                       
진 혼 곡
 
 
무서움이 폭포수처럼 그대 위로 쏟아져 내릴 때
그대, 그제서야 홀로 세상의 변경에 서서
삶의 심연과 마주하게 되리라
별들은 뜻 없는 말을 쉴 새 없이 주절거리고
어디선가 나직이 그대를 부르는 소리
그대의 귀를 뚫고 온몸을 타고 돌지만
정작 그대를 부르는 이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지 보이지 않게 그대를 뒤쫓는 것들 피해
세상의 변경에서 변경으로 달아나 보지만
그대, 언제나 제자리임을 깨닫게 되지
그대, 사슬에 묶인 몸임을 뒤늦게 알게 되지
 
* * *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에 슬쩍 구멍 안에 손을 넣어 보았지요 그 다음엔 다른 손도 아예 온몸을 밀어 넣었어요 무서운 속도로 미끌어져 내려가는 가운데 구멍이 점점 더 커져가는 걸 보았지요 구멍이 그렇게 검을 줄 구멍이 그렇게 깊을 줄 상상이나 했겠어요 내가 구멍일 줄
                        
(2000년 7월 19일)
 
* '처음에는' 이후의 구절은 영화 [보통 사람들]에서 주인공의 대사를 전체적으로 이용했다.
https://youtu.be/yOpsJ8dh5L4?list=PLZbXA4lyCtqr9ydN6UfilbWH72miiW1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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