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의 고속도로가 느닷없이 거대 주차장으로 탈바꿈한다. 목적지로 향하는 가쁜 마음이 내려앉는 눈꺼풀을 액셀러레이터로 밀어 올리는 시각. 이제 주차장의 차단기가 올라갈 때까지는 목적지도 브레이크에 밟혀 있어야만,
그래 정말로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어 맞아 바람은 불기 마련이니까** 몇 명이나 죽었을까 괜찮아 세상이 눈앞에서 차단기를 내린다 해도 괜찮아 모든 기억이 까무러친다 해도 아니 괜찮지 않아 정리는 언제 끝이 날까 감히 입 맞출 수 없는 저 얼음장 같은 유혹 얼마나 멋진 곳이길래 한 번 건너간 이는 한결같이 돌아올 줄을 모르는가 타나토스여 네 번득이는 칼날이 이번에도 용케 내 목을 비켜 가는구나 명부에 오르지 못한 유예된 시간
* 고갱의 그림 제목. 우리말로 옮기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영국 팝 그룹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의 마지막 구절을 약간 변형시켜서 인용했다. 원래 가사는 'Nothing really matters. Anyway the wind blows'(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어. 어쨌거나 바람은 부니까)이다.
(20000821)
(20000823)
D'où Venons-Nous? Que Sommes-Nous? Où Allons-Nous? *
새벽 두 시의 고속도로가 느닷없이 거대 주차장으로 탈바꿈한다. 목적지로 향하는 가쁜 마음이 내려앉는 눈꺼풀을 액셀러레이터로 밀어 올리는 시각. 이제 주차장의 차단기가 올라갈 때까지는 목적지도 브레이크에 밟혀 있어야만,
그래 정말로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어 맞아 바람은 불기 마련이니까** 몇 명이나 죽었을까 괜찮아 세상이 눈앞에서 차단기를 내린다 해도 괜찮아 모든 기억이 까무러친다 해도 아니 괜찮지 않아 정리는 언제 끝이 날까 감히 입 맞출 수 없는 저 얼음장 같은 유혹 얼마나 신나는 곳이길래 한 번 건너간 이는 한결같이 돌아올 줄을 모르는가 타나토스여 네 번득이는 칼날이 이번에도 용케 내 목을 비켜 가는구나 명부에 오르지 못한 유예된 시간
*고갱의 그림 제목. 우리말로 옮기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영국 팝 그룹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의 마지막 구절을 약간 변형시켜서 인용한 것임. 원래 가사는 ‘Nothing really matters. Anyway the wind blows’임
(2000년 8월 21일)
(2000년 9월 23일 수정)
해제 1. [큐브]의 첫 장면
의식이 불을 켜고 몇 번의 깜박임으로 눈이 초점을 잡는다. 청회색 죄수복을 입은, 백호 머리의, 비쩍 마른 사내가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그가 있는 공간은 정육면체이다. 은회빛의 여섯 면은 각각 가로 세로 1.5미터 가량의 아홉 개의 정육각형으로 되어 있고, 정육각형 안에는 또다시 각각 네 개의 정육각형, 이 작은 정육각형에는 컴퓨터 기판을 연상시키는 선과 도형이 그려져 있다. 각 면에 있는 아홉 개의 정육각형 중 중앙에 있는 것만은 강철로 된 해치이다. 이 해치에도 네 개의 작은 정사각형이 있는데, 선과 도형은 없다. 사내가 자신의 정면에 있는 손잡이를 왼쪽으로 한 바퀴 돌리자 해치가 덜컥하고 열린다. 해치는 옆방으로 이어지는 통로이다. 사내는 해치 옆의 사다리 같은 막대들을 딛고 올라서서 옆방을 들여다 본다. 그 방은 사내가 있는 방과 똑같은 정육면체인데 푸른빛이라는 점만 다르다. 사내가 다시 내려서자 해치는 자동으로 닫힌다. 바닥에 있는 해치를 열자 그 방도 똑같은 정육면체인데 이번에는 붉은 빛이다. 세 번째로 사내가 해치를 연 방은 금빛이다. 연결 통로를 지나 사내는 그 방으로 들어선다. 사내의 눈이 금빛의 방을 둘러 본다. 사내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몸이 크게 움찔한다. 사내의 놀란 얼굴, 왼쪽 가슴께에 ALDERSON이라고 적힌 청회빛 죄수복에 피가 비치고, 금 그어진 사내의 얼굴에서도 피가 흐른다. 흘러 내려 금빛 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린다. 그 다음 오른쪽 머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뇌가 보이고, 토막 토막난 손이 떨어진다. 온 몸이 세로로 정확하게 이등분 된 가운데 머리부터 떨어져 내린다. 토막난 몸통이며 다리도 무너져 내리는데, 채 떨어져 내리지 않은 내장과 뼈가 보인다. 떨어져 내릴 만큼 떨어져 내리자 틈새가 넓은 그물망 같은 칼날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한 칼날이 소리도 경쾌하게 착착 접혀 올라간다.
해제 2. [리얼리티 비디오]의 끝장면
일리노이 주 샴페인 역.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철로를 건너고 있다. 정거해 있는 기차 때문에 반대편에서 오는 기차는 보이지 않는다. 기차의 접근을 알리는 타종 소리가 높아가는 가운데 한 여인이 철로를 건너려다 다가오는 기차를 보았는지 몸을 돌린다. 기차가 토해내는 소리와 타종 소리가 점점 더 높아가는 가운데 남녀 한 쌍이 뛰다시피 철로를 건너려 한다. 왼쪽 편의 남자는 기차를 발견하고 가까스로 걸음을 멈추지만, 뒤늦게 기차를 발견한 오른 편의 여자는 달려나가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기차에 부딪혀 탄피처럼 날아가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