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의 초대
-- 길(La Strada)
길이 길을 본다
육십 년 전의 이탈리아로 흑백의 세계로 들어간다
길의 시작인 바닷가에 살던
한 어린 여자가 한 남자에게 팔려간다
머리가 나빠 요리도 못하는 데다 얼굴도 이상하게 생겨 집을 떠나는 것이 남은 가족들을 위하는 것인 여자
떠돌이 차력사인 남자와 함께 낡은 오토바이에 매어단 짐칸에 몸을 의지한 채 방방곡곡을 정처 없이 유랑한다
한 입 가득 울음을 머금은 듯한
그래서 길을 인정사정없이 울리는 여자
혹은 콩 먹은 비둘기 같은 표정과 몸짓으로
찰리 채플린 뺨치는 이상야릇한 걸음걸이로
길을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여자
한 마리 거친 짐승 같은 남자
쇠사슬을 끊는 자신의 가슴을 팔아 살아가는 남자
살아남기 위해 불법으로라도 살아남는 남자에게
조수이자 욕정의 출구인 여자
머리가 나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왜 태어났는지도
왜 살아가야 하는지도 몰라
차라리 죽고만 싶다고 외치는 여자
그래도 비오는 어느 날 들은
애잔한 한 가닥 선율을 마음에 품고 사는 여자
발부리에 채이는 돌멩이라도
하느님이 그냥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명 무슨 쓸모가 있을 거라는
애매모호한 말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가
죄짓지 않고 살아가려는 여자
대화하는 법을 몰라
짐승처럼 짖어대기만 하는 남자에게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마저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생각 좀 하고 살라고 오히려 다그치는 여자
자신이 떠나면 아무도 남자 곁에 있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남자 곁을 떠나면 사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여자
삶의 무서움 앞에 그만 길을 잃고
안 그래도 약하던 정신마저 놓치고
한 가닥 애잔한 선율 속으로 들어가 버린 여자
살아남기 위해 홀로 살아남은 남자
선율 속으로 들어간 여자를 우연히 만나지만
자신의 쓰라린 가슴을
말로 풀어내는 법을 여전히 몰라
사람들과 치고 박고 싸우다가
길의 끝인 바다에 이르러
한 마리 짐승처럼 울부짖는 남자
젤소미나잠파노
길이 길을 벗어나 자신의 길로 돌아온다
길 속의 남자와 여자처럼
정처 없이 길 위를 떠도는 길
(1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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