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421) 지난 일요일 이 감독이 만든 [해어화]를 보고 나서 글을 쓰다가, 글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되고, 또 이 감독에 뭔가 나름대로의 독특한 세계관이 있는 듯해서, 우선 이 감독의 다른 영화를 좀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이 감독이 데뷔한 지 15년이 되었고 그 사이에 열 편 이상의 영화를 찍었음에도, 흥미롭게도 혹은 놀랍게도 이 감독의 영화는 한 편도 본 것이 없다). 그래서 그의 데뷔작을 다운받아 봤는데, 피곤한 밤에 보려고 해서 그랬는지 두 번, 세 번 10분 정도 이상을 넘기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가, 오늘 낮잠을 좀 길게 자고 나서 머리가 좀 맑은 김에 끝까지 다 보았다.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두 배우, 설경구와 전도연을 투 톱으로 내세울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영화판에서는 인정을 받는 그런 감독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는 대중성을 얻기에는 영화가 너무 잔잔하고 또 밋밋하다는 느낌을 준다. 비유적으로 말해보자면 잔잔한 호수에 잔잔한 바람이 불어 미묘한 물결이 번져나가는 모습과 비슷하다고나 할까?(다운된 파일의 소리가 너무 적었던 것도 그러한 느낌을 가중시키는데 한 몫을 했다. 볼륨을 끝까지 올려도 일반 텔레비전 방송의 좀 작은 소리 정도밖에 들리지 않았으니까?) 또 반면에 이 영화가 예술성을 진진하게 추구했는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물론 감독은 장면 장면에 웃음코드(예를 들면 봉수(설경구)가 친구(서태화)와 함께 마사지를 받으러 갔을 때 '스페셜'이라고 외치는 장면이나, 자동차 사고가 났음에도 술이 취해 그것이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 친구 결혼식에서 신랑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 등등), 원주(전도연) - 이 영화에서 원주는 성적으로 그다지 매력적인 여자는 아닌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한 여자아이가 '선생님을 닮았다'라는 말을 듣고 우는 장면, 그리고 봉수가 그녀를 '소년' 같다고 한 것 - 의 썰렁한 개그들, 봉수와 원주의 마지막 장면의 대사 등은 (봉수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이 여자다, 아니다를, 원주가 이 남자다, 이 사람이다, 라고 전폭적인 수용과 긍정으로 바꿔버리는 발상의 전환) 인상적이긴 하다. (또 봉수가 경복궁에 가 있다가 졸지에 사극의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쉽지는 않으면서도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 우연한 기회에 우연한 일에 휩쓸리는 우리의 인생? - 같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이 감독의 영화는 일관성 있는 코드로 뽑아내기에는 어려운 다양한 요소들이 혼종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이 영화 [해어화]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고, 그것이 작품을 자칫 지리멸렬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기질적으로 코드가 좀 맞다는 쪽이다. 각자 어머니와 아버지를 어린 시절(중학교 1학년 때와 13살 때)에 잃은 상흔 - 원주의 상흔 혹은 불안은 그녀가 종이를 자꾸 찢는 것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 을 안고 있는 두 남녀가, 은행원과 학원의 수학 선생으로 바로 이웃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사랑을 키워나간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인데, 흥미로운 것은 봉수가 동창인 이혼녀 태란과의 사랑의 아픔을 겪지만, 그래서 원주의 데이트 신청을 장난으로 치부해 그녀에게 큰 아픔을 주었음에도 그로 향하는 마음을 지속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원주 역시도 비오는 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지 않음으로써 봉수의 마음을 시험하기도 한다.)
(봉수의 여성으로 향하는 마음과, 결혼의 꿈(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은 비디오 녹화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연마하는 마술로 잘 나타난다.)
글을 적어나가면서 좀 더 구체화되는 생각은 초반부를 몰입해서 보지 못했고, 그래서 미묘한 설정들이 자칫 밋밋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왔지만,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남녀 관계를 우리 삶의 일상성 가운데 - 좀 더 극단적인 장면들은 배제한 절제된 시각으로 - 긍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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