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명에 관한 이야기(십계 1)
<줄거리>
열 살 가량 된 꼬마 파벨(혹은 파웰, 이 소년은 매우 조숙하고 똑똑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은 수학 교수인 아버지 크르지스토프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확실치는 않으나 일 때문인지 다른 곳에 가 있는 상태이다. 이웃에 사는 고모가 부재중인 어머니를 대신하여 그를 보살피고 있다.
어느 날 파벨은 자신이 알고 있던 개가 죽은 것을 보고 “모든 것이 죽음으로 끝난다면 삶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하는 상당히 조숙하면서도, 또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삶의 문제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모든 것을 수학적인 계산으로 해결하려하는, 바꿔 말하자면 인간의 이성을 신봉하는 아버지의 답변이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한 파벨은 고모와의 이야기 끝에 성당에 나가기로 결심을 한다(고모는 전통적인 카톨릭 신앙을 지켜나가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직접 하지 못하고 고모가 전화로 아버지에게 알리는데, 아버지는 고모에게 그것이 파벨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파벨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연못에 나가 스케이트를 타는 것이었는데 때마침 한파가 몰아닥쳐 기온이 사흘 연속 영화 10도 이하로 내려간다. 수학 공식에 따르면 연못의 얼음은 파벨의 몸무게 몇 배를 지탱할 수 있는 그런 두께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 밤중에 연못으로 나가 연못이 얼마나 단단히 얼었는지를 확인한다. 이때 그는 영화 내내 인도의 명상자나 수련자처럼 연못가에 말없이 앉아 있던 젊은이와 맞닥뜨리게 된다(신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이 젊은이는 파벨이 죽고 난 뒤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영어 과외 선생님이 아파서 일찍 집에 오게 된 파벨은 스케이트를 타러 연못으로 가고 아버지의 예상과 달리 연못에 금이 가 익사하고 만다.
<촌평>
아들의 죽음을 다룬 이창동의 [밀양]이 내 마음 한켠을 울렸다면, 그보다 20년 전에 나온 폴란드 감독 키에슬로프스키의 이 영화 또한 비슷한 소재를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십계](혹은 [데칼로그]) 십부작 중 첫 째 편인(나는 이 중에 다섯 번 째 편인 [어느 사랑에 관한 이야기]와 여섯 번 째 편인 [어느 살인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보았다) 이 작품은 십계 명 중 제1계명인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를 부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이성을 신봉하고 신을 믿지 않는 파벨의 아버지 크르지스토프 교수를 신이 단죄하는 얼개를 띠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그러한 면보다는 신을 믿든 믿지 않든 간에 본질적으로 해명하기 힘든(혹은 불가능한) 우리의 삶을 ‘어린 아이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으로 설정된 비극으로 우리에게 부각시키고 있다고 생각된다. 반면에 약간 각도를 달리해 보면 파벨이 죽기 전까지 그의 삶은 여러 즐거움, 예를 들자면, 아버지가 낸 문제를 수학 공식에 대입하여 풀어낸 것, 이웃 여자 애에게 인사를 건네며 관심을 표시한 것, 고모와의 뜀박질, 또 컴퓨터를 이용하여 문을 여닫고 수도를 틀고 잠그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 등의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이러니컬한 점은 그가 가장 고대하고 누리고 싶었던 스케이트 타기의 이면에 그가 가장 두려워하던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가 제시하고 있는 이러한 면들은 꼭 일치한다고 하긴 힘들지만, 산타야나의 “자연의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서정적이고, 그 운명은 비극적이며, 그 존재는 희극적이다(Everything in nature is lyrical in its essence: tragic in its fate, comic in its existence)"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 짧은 영화는 파벨의 죽음에서 막을 내리지만, 이창동의 영화 [밀양]은 아들의 죽음과 그로 인한 절망, 그리고 희망의 모색을 좀 더 처절하게 물고 늘어진다. 이창동이 이청준의 소설 [벌레]를 바탕으로 하여 이 문제를 그토록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교통사고로 자신의 아들을 잃은 개인적인 체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이창동의 개인적인 체험과 그 아픔은 [불과 먼지]라는 그의 단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창동의 [밀양]이나, 이 작품은 공히,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까지도 상실할 수 있는 그러한 위태롭고 위험한 공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하지만, 막상 그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속수무책이라는 것,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상황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을 가슴 아프게 형상화해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내가 번역한 스티븐 킹의 소설 [고양이 윈스턴 처칠](Pet Sematary)도 거친 대로 이 죽음의 문제를 대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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