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430)
핵심어 : 정의, 욕망, 복수, 출생의 비밀, 무협, 사극
[해어화]나 이 영화에서 강한 오이디푸스를 느끼는 것은 박흥식의 내면 심리에 이 문제가 크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자신이 그렇게 보고 싶기 때문일까?
장준환의 [화이]가 명백하고 노골적으로 '아버지 살해'를 둘러싼 오이디푸스 이야기라면 박흥식의 이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일단 영화를 따라가보자.
박흥식의 영화가 일반 관객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관념 바깥으로 나가 버리고, 영화 전체가 일관성을 가지고 전개된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혼종성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몰입하기 어렵고 또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극적인 재미'가 떨어진다. (피곤한 가운데 이 영화를 보려하다가 얼마 보지 못하고 계속 잠이 들곤 하다가, 어제 아침에서야 제대로 영화를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이 영화는 요즈음엔 보기 드문 한국판 무협 사극 영화를 표방하고 있다(적어도 내 기억엔 그렇다). 사람들은 와이어 액션 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내가 보기엔 별로 그렇게 어색하지 않고 영상이 아름답다는 쪽이다. 특히 마지막에 설희(혹은 홍, 김고은)와 덕기(이병헌)가 눈 내리는 가운데 싸우는 장면은 굉장히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뛰어난 무협 영화라고 하기엔 주저되는 면이 많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선적으로는 주인공이 '악'의 쪽에 서 있어서 전통적인 권선징악의 구도를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굉장히 묘한 느낌을 안겨 주었던 무협 영화에 왕가위의 [동사서독]이 있다. 무협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연거푸 두 번이나 보았다. 첫 번째 볼 때에는 영상미는 뛰어난데 내용이 너무나도 혼란스러워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좀 난감했는데, 전후 관계가 파악이 된 다음의 생각은 무협의 형식을 빌긴 했지만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여러 사랑을 교묘하게 다룬 독특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고통 받는 백성의 편에서 싸운다는 뻔한 설정과는 달리 덕기의 배신 -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욕망을 쫓겠다는 - 은 너무나도 급작스럽고(물론 그 계기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쯤에서 고려 말 무신 정권 시대의 혼란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뒤로 물러 나고 정의와 사랑과 욕망과 복수의 문제가 영화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하게 된다. 박흥식의 영화가 여러 가지 껄끄러운 면에도 불구하고 힘이 있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안일하게 처리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길을 쫓고만 덕기, 그리고 덕기에 대한 사랑 때문에 불의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사형인 풍천을 죽이고 - 이 부분은 밀턴의 [실낙원]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이브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이브가 건네준(?) 선악과를 먹고 마는 것이 연상이 된다 - 그러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과 덕기 사이에서 난 아이로 하여금 자신과 덕기를 죽이도록 만드는 설랑(전도연), 마지막으로 풍천의 딸인 홍으로 길러졌지만 실제로는 덕기와 설랑 사이에 난 딸인 설희.
설희 혹은 홍이 덕기와 설랑이 자신의 부모라는 것을 알고서도, 자신이 길러진 대로 풍천의 딸로 자신의 원수들인 친부모를 죽이고 마는 것, 또 그러한 운명을 설랑과 덕기가 받아들이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서 생각은 더 나아가지 못한다. 아니 과감히 비약을 해야 하는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상징계의 법 사이의 갈등. 근친상간의 오이디푸스 욕망을 극복하고 아버지의 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트라우마. 지금 느낌에 그 과정은 그것은 부친(혹은 부모) 살해나 자기 파멸의 두 가지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한데, 이 영화와 [해어화]를 볼 때 박흥식은 전자를 따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의 이 다소 막연한 느낌들이 좀 더 구체적인 언어를 얻을 때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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