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어 : 제목. 레즈비언. 변태적. 영상미. 반전. 높은 수위의 동성애 성애 장면. 일제 말기]
(여러 가지 생각할 것이 많지만 일단 영화를 한 번 보고 난 느낌을 적어보려 한다. 많은 생각들에 조리를 가하고, 일관성 읽게 적으려다가는 아마도 아무 글도 쓰지 못할 확률이 높으니까.)
[롯데 시네마 월드 타워점. 혼자]
일단 내 생각은 제목에서 잠시 머문다. 아가씨, 라는 말은 시집을 안 간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우리 말이지만, 처녀나 처자 등의 한자와는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낭자라는 말과는 뭔가 통하는 면이 있는 듯하면서도, 아가씨라는 말에는 이상하게도 성적인 냄새가 흠씬 풍긴다(이 영화 자체가 성적인 것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인가?). 이 제목이 히데코(김민희)와 연결되는 것은 맞으면서도 뭔가 약간 사이가 뜬다(숙희(김태리)가 상전인 히데코를 어떻게 불렀던가? 우리말로 다소 어색하지만 아가씨라고 불렀던가? 이 부분을 좀 분명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사사키 부인(김해숙)은 그녀를 '마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다소 고풍스런 '하녀'(The Handmaiden)이라고 되어 있어 초점이 숙희에게로 이동한다. 이렇든 저렇든 이 영화는 그 내용만을 놓고 볼 때는 여성을 성적도구로, 혹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남성들을 '여성 동맹'을 통해 물먹이는 그런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일단 박찬욱 감독이 공언했다시피 영화는 아름답다. 온갖 추악한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인 저택(서양식 건축양식과 동양식 건축양식을 교묘하게 결합시킨 이 저택을 지은 것은 아가씨의 후견인인 코우즈키(조진웅)이 아니었던가)은 그런 일들과는 상관없이 정갈하기 짝이 없고 아름답다(언어가 부족하다. 아니 한편으로 그것은 촬영술일 것이다. 우리를 매혹하는 색상으로 살려낸 기술). 저택의 출입문을 지나고서도 '차를 타고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한다'는 외국 영화에서나 들은 적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그런 대저택. 히데코와 하녀인 숙희가 저택을 탈출한 뒤 조그만 나룻배를 노를 저어 도망가던 그 호수의 장면도 참 아름답다. 기모노를 입고 곱게 분장을 한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사드적인, 아니면 세미 포르노적인 책을 전문 성우 혹은 낭독가 뺨치게 매혹적으로 읽어나가는 히데코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긴 하다. (이 영상미의 부분을 글로 제대로 적어내기에는 내 역량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아니면 좀 더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고심해야 할 것이다.)
영화는 순진한 아가씨를 사기꾼(하정우)과 범죄 소굴 출신의 가짜 하녀가 속여넘기는 것에서, 오히려 그 하녀가 희생양이 되고 만다는 한 번의 반전이 아니라, 다시 아가씨와 하녀가 공모하여 사기꾼을 속이는 - 속는 사기꾼이라 - 겹반전으로 진행이 되어 단선적인 진행이 아니라 사건들이 얽히고설키는 요즈음의 추세를 - 이것을 포스트모던적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 영화의 진행은 셰헤라자드의 이야기를 꼬아서 만든 존 바스(John Barth)의 "던야자드 이야기"(Dunyazadiad)를 떠올리게도 한다 -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다음에서 일반 관객들의 평점이 낮아 우리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동성애 장면이 사람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주어서인가 했더니, 네이버를 보니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소 혼란스럽다. 요즈음 우리나라 감독들이 영화를 잘 만든다는 생각은 있는데, 이 영화 역시도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적 감각과 성적인 흥분, 그것의 끝에 남는 것은 공허감 혹은 씁쓸함은 아닌가 하는 것.
(몇 줄 더 필요한 것도 같은데, 일단은 대충 이 정도로 마무리를 짓자.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 이후로 계속 파격적인 영화를 선사하고 있는데. 내 생각을 좀 더 가다듬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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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할 말이 있어서 다시 펜을 든다. 일본인 행세를 하는 코우즈키는 식민지 백성으로 철저히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려는 인물인데, 희귀 서책을 수집하는 고상한 취미는 알고보면 성애소설을 탐닉하는 변태스러운 것이고, 그것을 자신의 아내와, 아내가 탈출하려 하자 그녀를 살해하고 대신에 자신의 처조카인 히데코를 가짜 희귀서적 판매를 위한 낭독회에 끌어들이는 잔혹성도 갖춘 인물이다. 여기서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히데코 자신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 결국에는 숙희와 함께 이모부가 애지중지하는 서적들을 파손시켜 버리지만 - 그녀의 낭독이 남자들 사이에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환타지이다. 가짜 백작이자 사기꾼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파멸에 이르고 마는 것은 그 '강렬한 환타지'에 매혹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이 성적 환타지로 충만한 부분이 여성의 성적인 종속과 불가분이라는 것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으나, 좀 더 생각을 끌어나가야 하는데 - 또한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영화는 또 욕망이 충돌하는 장이다. 그 욕망이 서로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데, 서로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질 경우 한 배를 타는 것이다. 히데코와 숙희는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배를 탔고, 가짜 백작인 사기꾼과 코우즈키는 죽음이라는 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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