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어젯밤의 과음으로 만사가 귀찮고 어지러운 머리를 가라앉힐 심산으로 선택한 영화.)
따뜻한 동화같은 영화이다. 이 말에는 분명 우리의 코끝을 찡하게 하는 감동과, 그것의 비현실성을 비난하는 눈초리가 짬짜면처럼 반반씩 섞여 든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영화일 지라도 이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그런 류의 따뜻함은 잘 믿지 않으리라. 이 영화는 할머니와 손주 간의 사랑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2002년에 나온 [집으로](이정향)를 떠올리게 한다. 그 때도 그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다소 버거웠던 느낌이 있다. (실제 나의 경험 속의 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도 무척이나 나를 귀여워하셨지만, 늘 외할아버지와 싸우고 또 술이라도 마시면 나를 쥐어박기도 했던 듯하다 -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리고 죽음이라는 이별을 다룬 이 진부한 영화에 독특한 점이 있다면, 계춘 할망(윤여정)이 손녀인 줄 알고 정을 준 혜지(김고은)가 사실은 친 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손녀로 끌어안는다는 것. 이 점이 다른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소재라고 할 수 있는데, 혜지가 실제로는 죽은 혜지를 대신에 혜지의 삶을 살아 온 남은주이고, 혜지의 어머니가 재혼을 한 남편의 딸이라는 점에서 완전 남은 아니다.
청상과부로 아들마저 저세상으로 보내버린 다음, 손녀 혜지마저 잃어버리고 십 년이 넘는 세월을 외로움 속에서 보낸 계춘 할망은, 혜지가 진짜 혜지가 아니더라도 그냥 진짜 혜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외로웠음에 틀림이 없다고 해야 할까?
(세상이 그렇게 각박하지만은 않을지 몰라도, 유산을 상속받을 위치에 있는 계춘 할망의 조카와 조카 며느리는 돈 욕심은 하나도 없는 너무나도 순진한 사람처럼 그려져 있어서 이 영화는 정말 동화같다는 생각이 글을 적다보니 더 강해진다.)
하늘을 품은, 그래서 하늘보다 넓은 바다같은 무한한 사랑이, 또 그만한 사랑을 낳는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주려 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허남웅을 말처럼 영화는 너무나도 많은 클리셰로 차 있고, 제주도는 여전히 아름다운 빛깔로 유혹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증오 없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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