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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중경삼림(Chungching Express) 1994 - 왕가위 (160722 감상 VOD, 23 적음)

by 길철현 2016. 7. 23.

 

왕가위 감독에게 좀 매료된 듯하다. [화양연화]에 이어, 그의 영화를 한 편 더 선택했다. (무엇보다 VOD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서 좋다. [해피 투게더]도 보기 시작했는데, 남자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 그리고 배경이 아르헨티나라는 점이 시선을 끈다. 무엇보다 영화 도입부에 보이는 이구아수 폭포의 모습이 인상적인데, 중간에 물고기처럼, 정자처럼 떠다니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예전에 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걸로 봐서는 보지 않았던 듯하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하나 알게된 사실은, 그와 양조위의 찰떡 궁합이다. [동사서독],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이 모든 영화에서, 그는 주연(급)으로 출연을 한다. 그의 어떤 이미지가 왕가위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일까?

 

영화를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 영화는 실연당한 두 명의 경찰관이 새로운 사랑을 키워나가는 이야기인데, 감각적이고, 누군가의 말처럼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킨다. 실연당한 경찰 223(금성무)은 우연히 마약 밀매상이자, 살인을 저지른 여자(임청하)로부터 위로를 받고 - 현실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 애인과 헤어진 663(양조위)은 자신이 즐겨 찾는 식당의 여종업원 페이(왕비)의 호감을 사게 된다 - 페이가 663의 집을 몰래 찾아가 그의 집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 것도 현실성은 없지만 깜찍하다.

 

별다른 내용이 없는 듯한 영화인데도 강한 흡인력이 있는데, 그것은 영화 속의 이미지들(기억에 남는 것 중의 하나는 임청하의 모습이 어딘가에 비쳐져서, 하나는 온전하고 또 다른 하나는 흐리고 일그러진 모습이 동시에 보이는 장면이다)과 그리고 줄기차게 반복되는 Mamas and Papas의 [California Dreaming]이 주는 울림이다 - 좀 지겨울 수도 있다고 해야할까? (California Dreaming은 그냥 스쳐가며 들으면 정말 좋다. 하지만 그것을 찾아서 정신을 집중하고 듣는 순간에는 이 노래가 주는 흥이 깨져버린다). ([화양연화]에 대해 적을 때 빠트린 것이 있다면, 왕가위 감독의 영화의 특징 중의 하나가, 거기에 삽입된 음악이리라. 영화에서 음악이 갖는 중요성은 말로 표현은 잘 안 되지만 빠트릴 수 없는 것인데, 왕가위는 그 부분에서도 굉장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것은 감독 혼자만의 역량이라기보다는 그와 그 주변의 인물, 우리가 흔히 사단이라고 일컫는 그 인물들의 역량이겠지만.)

 

이 영화에서의 젊은 시절의 사랑은 아픔이면서 또 기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찰과 살인범의 조합은 환타지를 벗어나기 힘들고, 노래와 춤과 몽유에 젖어 있는 페이는 너무 몽환적이다. 갑자기 승무원이 되어 나타난 것은 좀 뜬금이 없다. 대신에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다른 요소 중의 하나는 663이 보여주는 시적 서사이다.  물을 틀어 놓고 나가서 실내가 온통 물에 잠긴 것을 두고 '방이 울면 뒤처리가 곤란하다'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시적 서사이다 - 이런 대사를 만들어 내는 힘이 왕가위를 돋보이게 한다.

 

아무리 '영화가 이미지'라고 한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전체적인 서사에서는 좀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 현재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