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천만 관객이 없는 올해의 영화계에 이 영화는 곧 천만을 넘을 듯하다(어린 아이들이나 영화를 보지 않는 고령층을 제외한다면 천만이라는 숫자는 3명 중에 한 명은 보았다는 말이 된다. 영화로 몰리는 사람들, 특히 헐리우드 영화가 점령하고있는 전세계의 영화판에서, 우리나라 영화로 몰리는 우리 관객들의 이 무서운 숫자는 우리나라 영화와 영화 관련 산업이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관객이 많이 몰리는 영화는 대체로 흥미롭게 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좋은 영화라는 보장은 없다.
얼마 전에 본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흥행은 물론 작품성에도 생각거리를 던져준 영화였으나, 이 [부산행]은 흥행코드에 초점을 맞춘 철저한 상업 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영화가 이렇게 성공을 거둔 데에는 일단 영화 자체가 끝까지 죽느냐, 사느냐라는 원초적인 감정을 물고 늘어져 관객에게 긴장감을 부여한 것과, 좀비라는 진부한 소재가 한국으로 옮겨오면서 새롭게 태어나고, 거기다 그 공간이 KTX라는 역시 새로운 곳이라는 점 등일 것이다(기차라는 공간을 잘 활용한 영화는 가깝게는 [설국열차]가, 그리고 좀 멀게는 [라이터를 켜라]가 있다. 그럼에도 좀비의 습격을 받는 기차라는 점은 새롭다. 여기서 생각을 조금 밀고나가 보면 여행이 주는 설레임 이면에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죽음의 공포가 항상 깔려 있다. 비행기의 폭파나 실종, 배의 전복, 그리고 안전한 여행으로 정평이 나 있는 기차 역시도 사고의 위험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몇 년전 스페인에서 일어났던 기차의 전복 사고. KTX가 지금까지 큰 사고는 다행이 피했으나,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KTX 속에서 우리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덧붙여 시리아 내전이나 특히 이슬람 국가와 서방의 전쟁, 그리고 그에 따라 곳곳에서 연일 일어나는 테러 등은, 우리의 내면에 자리잡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 영화가 좀비라는 익숙하면서도 또 우리에게는 낯선 장르를 채택하여 형상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상호 감독은 이력을 보니까, 미대 출신으로 애니메이션 쪽에서 작업을 많이 한 30대 후반의 젊은 감독인데, 어쨌거나 꽤 긴 장편 영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이 긴장감을 놓치지 않도록 끌고나간 연출력은 일단 높이 사고 싶다. 그러나, 이 영화는 논리적으로 뭔가 아귀가 잘 맞지 않고 - 영화를 보는 중에 그런 걸 별로 따지지 않지만 -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뭔가 제대로 해결이 된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 (모든 승객이 다 죽었지만 - 아니 좀비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 그래도 두 명의 여자만이도 살아서 부산으로 들어가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좀비가 발생하게 된 원인도 그 해결책도 모두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마지막에 시체로 널부러져 있거나 물에 빠져 죽어있는 좀비들은 총에 맞아 죽은 것인가? 십 분 후 시작이라는 원칙을 깨고 이 극장에서는 영화를 빨리 시작해서 나는 영화의 앞부분 2,3 분 정도를 놓쳤는데,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보니, 무슨 바이오 연구소에서 화학 물질인지 뭔가가 유출된 것으로 설명이 되긴 하지만, 어쨌거나 영화는 브래드 피트가 쿨한 사나이로 나온 [월드워 z]처럼 좀비의 발생 원인이나 그것의 해결책보다는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부산까지 가느냐에 거의 모든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그 부분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장면, 장면들이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가는 가운데, 몇몇 주요 인물들은 몇 분 더 생명을 유지한다. 그리고 정형화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의리와 힘을 갖춘 사나이 마동석, 남을 희생해서라도 악착같이 살아 남으려는 김의성, 작품 초반의 자기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타인과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공유,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할 임산부(정유미)와 아동, 그러면서 부각되는 가족애.
다시 한 번 이 영화는 한국형? 좀비들을 형상화해내고, 극적 긴장도를 유지해, 한여름의 더위를 잠시나마 시원하게 해주었다. (목이 꺾여지고, 또 비틀거리고, 팔도 뒤로 돌아가고 하지만 그들은 대상을 향한 일편단심의 공격성에서는 어느 누구하나 뒤지지 않는다. 다만 할머니 한 분만은 공격성을 비치는 장면이 없었다. 그 밖에 마동석이나 공유는 좀비로 바뀐 뒤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오락 영화 이상의 뭔가를 기대한다면?
좀비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본다. 이 쪽 방면으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한 친구가 귀신은 "신체 없는 영혼"이고, 좀비는 "영혼 없는 신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정의 내릴 때, 좀비의 무차별적인 공격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또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긴 하지만, 때로는 정말 더욱 무차별적으로 가혹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좀비에 대한 인간의 공격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은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공격성의 표출과 분명 연결이 된다.
우리 안에 억압(repression)되어 있는 공격성을 대상에 투사(projection)하여, 우리와 분리시킨 것이 좀비 영화들이라면, 그것을 통해 우리는 대리만족을 얻고, 또 현실이 그렇게까지 참담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분명 해결책이 있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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